5일의 마중 국내 포스터

▲ 5일의 마중 국내 포스터 ⓒ 찬란

장예모 감독이 돌아왔다. 지난 1988년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한 이래 <국두> <홍등> <귀주 이야기> <인생> <집으로 가는 길> 등 수많은 명작들을 내놓으며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잡은 장예모다. 그가 자신의 페르소나 공리와 7년 만에 재회한 <5일의 마중>은 2011년작 <진링의 13소녀> 이후 3년 만의 복귀작으로 영화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다.

전작 <진링의 13소녀>에 이어 엄가령의 소설을 두 번째로 영화화 한 이 작품은 10여 년에 이르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파괴되어버린 한 가정의 비극을 통해 사회가 개인의 삶과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여과없이 보여준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전개된 문화대혁명은 모택동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실각시켰을 뿐 아니라 중국의 문화, 사회, 사상, 정치를 경직시키고 후퇴시켜 오늘날에는 중국공산당에 의해서까지 '극좌적 오류'로 평가받고 있다.

격동하는 현대사 속 무너지는 인간상

영화의 주인공은 상하이에서 대학교수로 일했던 루옌스(진도명 분)와 그의 아내 펑완위(공리 분)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반혁명분자로 몰린 루옌스는 유배지에서 도망쳐 10여 년 만에 집으로 숨어들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딸 단단이 그를 고발하고 결국 당직자들에 체포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루옌스가 집으로 찾아와 딸을 만나고 기차역에서 검거되기까지를 초반 30분 동안 담아내는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섣불리 문을 열지 못하는 아내와 남편의 모습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과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자라난 딸 단단은 맹목적으로 당에 충성하는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그녀는 발레공연에서 주연을 맡기 위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당에 고발한다. 가족보다 당과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의 비극이 단단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초반부의 전개를 통해 영화의 전면에 드러난다.

남편을 만나고자 기차역으로 나간 펑완위가 당직자들에 의해 루옌스를 만나지 못하게 되기까지의 30분은 이 영화가 문제삼고 있는 이 시대의 비극을 장예모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 아래 여지없이 보여준다.

섬세한 표현력으로 품격있는 멜로를 그리다

5일의 마중 매달 5일, 남편 루옌스(진도명 분)을 기다리는 펑완위(공리)

▲ 5일의 마중 매달 5일, 남편 루옌스(진도명 분)을 기다리는 펑완위(공리) ⓒ 찬란


이후의 시간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 무죄가 인정되어 풀려난 루옌스가 집으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과 함께 할 생각에 한 달음에 집으로 온 루옌스를 맞이하는 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다. 다른 이들을 모두 기억하면서도 자신의 얼굴만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에 루옌스는 커다란 충격을 받지만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매달 5일이면 자신을 마중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나서는 아내를 위해 기차역으로 가고 자신의 오래된 피아노를 고쳐 연주하기도 하며 유배지에서 자신이 쓴 편지를 가져와 읽어주기도 한다. 이 지점부터 영화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그녀의 기억을 되돌리려는 남편의 멜로드라마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초반부에 그려진 문 하나를 사이에 둔 남녀의 모습, 남편을 만나기 위해 육교를 달리고 피아노 소리를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층계를 오르던 아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울음을 삼키는 남편.

장예모 감독은 기억보다 큰 그리움을 간직한 아내와 그런 아내의 곁에서 함께 하는 남편의 모습을 진도명과 공리라는 걸출한 두 배우를 앞세워 감성적으로 그려낸다. 진도명과 공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슬퍼지는 표정으로 두 인물을 연기하고 영화는 이들의 존재를 통해 한 뼘쯤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인생>, <집으로 가는 길>, 그리고 <5일의 마중>

5일의 마중 아내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피아노를 치는 남편(진도명 분)과 그 아내(공리 분)

▲ 5일의 마중 아내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피아노를 치는 남편(진도명 분)과 그 아내(공리 분) ⓒ 찬란


영화는 얼핏 기억상실증과 알츠하이머 등 비슷한 소재를 다룬 멜로물 <어웨이 프롬 허> <첫키스만 50번째>를 떠올리게 하는데, 장예모는 여기에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다림과 격동의 현대사 속 허물어지는 인간의 모습까지 적절히 녹여내 한 편의 품격 높은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자신의 두 역작 <인생>과 <집으로 가는 길>에서 다룬 바 있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물어지는 개인의 삶,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연인의 마음이라는 주제를 한 편의 영화 속에 담아낸 것이다.

아내는 매달 5일이면 찾지 못할 남편을 찾아 마중을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오래도록 그녀의 옆에 함께 할 테다. 이 영화를 통해 장예모 감독은 어떤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화대혁명이라는 일대 사건이 한 가정에 이토록 깊은 상처를 남겼으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은 아내 곁에 남아 있듯, 중국 역시 그들의 지난 상처를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를 그리면서도 당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충실히 녹여내고 있는 영화, <5일의 마중>은 지난 8일 개봉해 첫날 1천 948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goldstarsky)에 게재하였습니다
5일의 마중 엄가령 장예모 진도명 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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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적어봐야 알아듣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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