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11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EDIF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따른 팔레스타인 양민 학살의 불똥이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EBS 다큐영화제)로 튀었다. <송환>의 김동원 감독, <어머니> 태준식 감독,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 <마이 플레이스> 박문칠 감독 등 국내 다큐멘터리 진영 인사들은 11일 성명을 통해 EBS 다큐영화제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영화제가 올해 '이스라엘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6일 개막하는 11회 EBS 다큐영화제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제다.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함께 다큐영화제의 양대산맥으로 통한다. 극장과 방송에서 동시에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국내 다큐멘터리 진흥에 도움을 줘 왔기에 다큐 감독들 입장에서는 매우 소중한 행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올해 주요 프로그램으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컬렉션' 섹션과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 '아비브 국제 다큐 영화제 DocAviv 예술감독 초청 강연 등, '이스라엘 특별전'을 준비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이들 행사들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공동주최하거나 후원자로 참여한다.

 지난 5일 열린 11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자회견

지난 5일 열린 11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자회견 ⓒ EDIF


국내 다큐진영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해 수많은 양민이 희생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이스라엘 특별전이 '국제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비판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다큐 감독들은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화, 인종차별, 그리고 주기적인 대량학살에 대항하여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요청해 왔고, 전 세계적으로 이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스라엘 브랜드 보이콧은 이런 운동의 일환으로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적극적 경제 제재일 뿐 아니라 화려한 브랜드로 치장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국가 이미지를 벗겨내고 전범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드러내는 일종의 문화적 보이콧이기도 하다"고 의의를 강조했다.

다큐 감독들은 "그런데 이 와중에 EBS 다큐영화제가 전범 국가 이스라엘을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탈정치화시키고, 문화 선진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행사를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자신이 학살자라는 사실은 애써 숨긴 채, 문화와 예술이 발달한 선진국,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들이 국제사회에서 자유롭게 문화를 나누고, 선진적인 다큐멘터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문화는커녕 하루하루 생존도 담보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특별전은 전범국가 문화 정책 동조하는 것

 지난 9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한 시민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한 시민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성하훈

다큐 진영은 이번 EBS 다큐영화제의 이스라엘 특별전이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 문화·예술 행사가 아닌 전범 국가의 문화정책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특별전 모든 행사의 취소 및 이스라엘 대사관과의 협력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이번 다큐 영화인들의 영화제 보이콧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화, 인종차별, 그리고 대량 학살에 대한 반대의 뜻을 밝히기 위한 이스라엘 제재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EBS 다큐영화제 측은 이번 특별전에 대해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기획됐고, 상영작은 물론 관계 행사들도 팔레스타인 침공을 정당화하는 시온주의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EBS 다큐영화제의 이번 기획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국내 다큐멘터리 카메라들이 부당 해고노동자,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나 힘없는 서민들 편에 서고 있음을 고려할 때 다큐 진영의 이번 성명 발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평가된다.

국내 영화제들이 다큐멘터리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 정책을 고발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다큐를 완성하도록 돕고 해외 영화제 출품을 지원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것과 비교할 때 EBS 다큐영화제의 이스라엘 특별전은 대비되는 모습이다.

다큐진영은 "EBS 다큐영화제가 지금까지 해 온 역할과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를 생각했을 때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큐 진영이 공식적인 참가 거부를 밝힘에 따라 올해 EBS 다큐영화제에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큐 진영의 성명서는 10일 주요 인사들의 공동 제안을 통해 알려진 후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감독 등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현재 <탐욕의 제국> 홍리경 감독, <경계도시> 홍형숙 감독을 비롯해 <깔깔깔 희망버스> 이수정 감독, <산다> 김미례 감독과 영화제의 상영관으로 선정된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이현희 프로그래머 등 국내 독립다큐 진영이 대부분 동참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EBS 다큐영화제에서 작품이 상영되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감독과 <아무도 모른다> 원해수 감독 등이 제안자로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성명을 준비한 다큐진영 관계자는 "EBS 다큐영화제의 입장이 나올 때까지 다큐 관계자들의 서명을 계속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이스라엘 특별전 독립영화 팔레스타인 EI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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