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 최민식 주연의 <명량>이 태풍의 기세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올 상반기, 침체를 맞았던 한국 영화계는 100억 이상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이른바 두 글자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 <군도>와 <명량>이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여기에 <해적>과 <해무>까지 올 여름 영화계는 한국형 대작들의 난전을 맞이하고 있다. 

<군도>의 윤종빈(36)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2011)으로, <명량>의 김한민(46) 역시 <최종병기 활>(2011)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감독이다. 윤종빈은 중앙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김한민은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동국대 대학원에서 연극영화 석사과정을 밟았다. 의욕적인 젊은 감독들의 한 판 승부라 할 수 있다.

윤종빈의 <군도>는 사극이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을 뿐 사실은 오락용 액션 활극이라 할 수 있다. 실감나는 액션 뒤에는 물론 정두홍 무술감독의 연출이 뒷받침하고 있지만 그것을 거칠게 때론 섬세하게 드러내는 것은 주로 하정우와 강동원의 몫이다. 여기에 대호 역의 이성민, 천보 역의 마동석, 마향 역의 윤지혜 등이 가세하여 마치 서부영화를 떠올리듯 현란한 활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으로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세도가의 자제 조윤 역을 맡은 강동원이다. 상투적인 공식이지만 조윤은 서얼 출신으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는 악의 화신이 되어간다는 설정이다. 감독은 조윤의 캐릭터를 설득하기 위해 다소 지루한 설명을 하는데 칼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멋진 무예의 고수로 등장시켜 도치 역을 맡은 하정우와 대결하게 한다. 무협영화처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악당, 그래서 많은 희생의 끝에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악랄한 세도가 조윤 역을 맡은 강동원 칼을 높이든 채 등 뒤의 적을 매섭게 노려보는 '조윤'

▲ 악랄한 세도가 조윤 역을 맡은 강동원 칼을 높이든 채 등 뒤의 적을 매섭게 노려보는 '조윤' ⓒ 쇼박스


'민란의 시대'를 부제로 단 <군도>는 쇠백정 출신의 도치가 왜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었느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외연을 넓히면 탐관오리와 세도가의 결탁으로 신음하다 일어서는 백성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허균의 <호민론>에 보면 백성을 힘들게 하면 항민(恒民)이 원민(怨民)이 되고 가렴주구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난리를 일으키는 호민(豪民)이 된다는 논리를 편다. 백성을 호민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위정자들이 정치를 올바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렇다고 <군도>가 그런 정치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악랄한 세도가 조윤의 죽음을 끝으로 화면 가득 황혼을 배경으로 석양의 무법자처럼 말을 달린다. 굳이 메시지를 요약하라면 '백성을 화나게 하지 말라' 정도가 될 것 같다.

이에 비해 <명량>은 정통사극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관객들은 호흡조절을 잘해야 한다. 감독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통해 무얼 말하고자 했을까. 물론 허구적인 재구성이야 있지만 기본틀은 바뀔 수 없는 승전스토리이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란 답은 이미 알고 들어가는 영화, 그러기에 <명량>은 부담이 컸을 것이다. 최민식의 부담 또한 성웅으로 추앙되는 인물로 어떻게 빙의될 것인가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씻김굿을 하고 <난중일기>만 붙들었을 것이다.

<명량>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온갖 절망의 나락에서 한 인간이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에 대한 탐구보고서라 할 만하다. 불과 12척으로 왜의 대군과 맞선다니 중과부적임을 알기에 부하장수들은 도망을 갔고 전투에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난중일기> 기록을 보자.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게는 감히 곧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일체 마음을 동요치 말고 힘을 다하여 적선에게 쏴라"고 하고서,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 바다에 있었다. 나는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자니 적들이 더 대어들 것 같아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어서 중군에게 명령하는 깃발을 내리고 또 초요기를 돛대에 올리니, 김응함의 배가 차차로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몸소 안위를 불러 이르되, "안위야, 너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해서 어디 가서 살것 같으냐?고 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을 불러 이르되,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 <명량>에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이순신 장군

▲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 <명량>에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이순신 장군 ⓒ CJ엔터테인먼트


한마디로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상태인 것이다. 출정하기 전에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며 독려했지만 부하들은 실제 전장에 나가서 장군을 혼자 사지에 밀어넣은 것이다. 나중에 군법으로 다스린다 하니 그제서야 싸우러 가는 부하들을 둔 장군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가 아는 명량해전의 진실은 이런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명량>에 의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나선 것은 장군 혼자였고 위기에 빠진 장군을 구한 이들은 백성들이었다.

<명량>은 불안과 두려움에 전의를 잃어 버린 나약한 군사들을 데리고 장군이 그 두려움과 맞서 그 회오리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고 나왔는지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무능한 임금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신념이었을 것이다.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고 나라가 없으면 임금도 없다는 신념, 장군을 그 두려움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전란에 고통받는 가엾은 백성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독버섯처럼 퍼져버린 부하들의 패배의식도 장군이 다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요약하자면 두 영화의 화두는 '백성'이다. <군도>가 백성을 괴롭게 하면 난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코믹한 서부영화의 문법에 화려한 검술로 포장하여 내놓은 신세대 작품이라면 <명량>은 명장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만든 것은 어떤 두려움에도 물러서지 않는 한 인간의 위민, 애민의 신념이라는 것이다. 남명 조식 선생은 말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을 으뜸으로 여기라'. 정도전의 오직 백성을 위한 정치철학처럼 위정자가 으뜸으로 섬겨야 할 대상은 권력자가 아니라 백성인 것이다.

윤종빈 감독이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화두를 던지는 편이라면 김한민 감독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어법을 쓴다. <군도>처럼 가볍게 즐기다 보면 문제 의식을 놓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본다. 우리에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액션영화도 필요하고 때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두 감독이 한국영화의 여름 시장을 달구면서 각자 자신의 영화적 지평을 넓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족이지만 하정우는 윤종빈 감독의 낙점을 받은 것 같고, 류승룡은 김한민 감독의 낙점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최민식은 윤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노회한 속물로 등장했는데 이번엔 김한민 감독의 낙점을 받아 이순신 장군으로 대결하고 있으니 윤감독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좀 얄미워질까? 거친 카리스마 두목 하정우에 나쁜 미남 강동원 투톱과 비밀병기 류승룡을 낀 최민식 장군과의 대결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군도 명량 하정우 강동원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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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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