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국내 메인 포스터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국내 메인 포스터 ⓒ Paramount Pictures

<트랜스포머>는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팬들은 물론이고 <다간>이나 <K-cops>와 같이 로봇이 주인공인 만화영화의 팬이었다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그런 시리즈였다.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등 어마어마한 규모의 혁신적인 액션씬이 런닝타임 내내 이어졌고 샤이아 라보프와 메간 폭스는 물론이고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 메가트론까지 수많은 로봇캐릭터들을 엄청난 스타덤에 올린 멋진 시리즈였다.

이는 시리즈 전체의 연출을 책임진 마이클 베이 감독의 능력과 신선하고 유효했던 소재, 오랜기간 쌓여온 할리우드의 역량이 만들어낸 대단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지금까지 4편에 걸쳐 이어져온 시리즈의 미래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제까지도 그리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연속된 상업적 성공의 이면에는 자기복제된 이야기로 말초적 재미를 추구할 뿐이라는 비아냥이 끊임없이 따라붙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3편까지 출연한 배우들을 과감히 갈아치운 것이 혹시 지난 성취에 안주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지속가능하면서도 재미있는 새 판을 짜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고 기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뚜껑을 연 이야기는 여전히 과거의 문제들을 더욱 큰 규모로 답습하고 있었다. 온갖 장르를 아우르고 온갖 캐릭터를 삽입하며 그들끼리의 균형감마저 잃어버린 거대한 광고물, 감독인 마이클 베이조차 이 영화를 온전히 제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장황한 영화였다.

주지하다시피 3편까지의 세계관은 지구와 인간을 수호하려는 오토봇과 지구를 점령하여 자신들의 행성으로 삼으려는 디셉티콘의 대립구도였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오토봇의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이 디셉티콘의 리더 메가트론을 제압했던 시카고 사건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로부터 시작한다.

디셉티콘의 절멸 이후 오토봇은 인간과 함께 지구방위의 역할을 맡아왔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하나씩 인간들에게 제거당하기 시작하고 인간의 사냥으로부터 벗어난 몇몇 오토봇이 도망쳐 옵티머스 프라임의 지시를 기다리지만 그의 생사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차를 수리 중인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차를 수리 중인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 ⓒ Paramount Pictures


영화는 외딴 집에서 잡동사니 발명품을 만들며 살아가던 기술자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고물을 수리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생활하던 그는 우연히 트럭 한 대를 사서 부품을 분해하던 중 그 트럭이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들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 옵티머스 프라임이 낡은 트럭으로 변신해 숨어있었던 것이다. 오토봇의 첨단 기술을 익히고자 옵티머스 프라임의 회복을 돕던 케이드는 갑자기 들이닥친 요원들의 추적을 뚫고 그와 함께 도망치게 되고 그로부터 거대 로봇형 외계인들과 인간들이 얽힌 엄청난 음모에 맞닥뜨리게 된다.

3부작을 한 영화에 우겨넣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케이드 예거와 그 일행이 옵티머스 프라임과 함께 도망치는 이야기이고 둘째는 오토봇들과 락다운이라 불리는 새로운 로봇집단의 대결이며 마지막은 부활한 디셉티콘과 오토봇, 떠나가다 돌아온 락다운, 심지어는 고대의 공룡로봇까지 개입된 거대한 대결전이 그것이다.

이 세 부분은 모두 각자의 기승전결의 흐름을 지니고 있고 여러 캐릭터들과 많은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규모에 압도당하게끔 하지만 동시에 너무 난잡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게도 만든다.

이토록 큰 규모의 영화를 찍을 때는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영화는 삽입된 모든 요소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영화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악수가 되었다. 주인공인 케이드 예거의 일행들과 그를 쫒는 인간 집단, 오토봇과 디셉티콘, 락다운에 이르는 무려 다섯개의 집단이 등장하고 그들 모두에게 일정 분량을 할애하여 묘사하는 영화의 선택 속에서 이 장대한 이야기는 곧 장황한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장황한 이야기란 기억되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쯤되면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한 편의 길고 긴 광고영화라 할 만하다. 시종일관 규모로 승부하는 블록버스터가 끝난 뒤 기억에 남는 거라곤 이야기나 캐릭터가 아닌 스쳐지나간 수많은 간접광고, 그리고 아시아마케팅의 흔적들 뿐이었으니 말이다. 절제를 모르고 수위를 넘는 광고들의 삽입은 사고의 틈새를 철저히 파괴하는 과도한 액션씬과 어우러져 바야흐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그림록 위에 올라 탄 옵티머스 프라임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그림록 위에 올라 탄 옵티머스 프라임 ⓒ Paramount Pictures


간접 광고와 아시아 마케팅의 향연 속 소외되는 관객들

쉐보레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자동차들과 아르마니의 입간판 앞에서 벌어지는 격투씬, 구치의 로고가 선명한 선글라스의 노출 정도는 기존에도 볼 수 있던 수준의 광고였다. 이 정도는 이만한 규모의 블록버스터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광고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빅토리아 시크릿이라 적힌 가판대 앞에서 "나는 싸구려 짝퉁이 정말 싫어"라고 말하는 로봇 캐릭터나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도로에 추락하는 우주선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음료광고, 스탠리 투치가 중국의 어느 아파트 위에서 팩우유를 쪽쪽 빨아먹는 장면까지 줄지어 나오는 온갖 상품의 간접광고는 기존 영화들의 수위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전개와는 상관없이 광고를 삽입하기 위한 장면들이 이어졌고 이런 것들이 영화의 흐름을 지나치게 자주 끊어먹었다. 영화를 위한 광고가 아니라 거의 광고를 위한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시아 마케팅을 의식해 중국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은 물론 급작스레 배경을 홍콩으로 옮겨 이야기를 풀어간 것 역시 일종의 광고처럼 느껴진 것이다. 물론 중국 배우들을 적극 기용하는 건 최근 나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일관된 흐름이지만 그렇더라도 정도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본래 존재했을 캐릭터를 중국인이 맡는 것과 중국인을 기용하기 위해 필요없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완전한 후자였고 영화 속에서 리빙빙이 맡은 캐릭터는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홍콩을 배경으로 한 액션장면 역시도 대부분 쓸데없었으며 실망스러웠고 이러한 선택이 영화를 더 낫게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이쿠를 읆는 사무라이 오토봇과 롱코트 자락을 늘어뜰이고 쌍권총을 쏘는 오토봇, 발칸포를 메고 시가를 입에 문 오토봇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쯤되면 영화는 영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광고가 목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영화가 상업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상업성에 충실한 영화를 만드는 것과 3시간 짜리 광고영화를 찍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최소한 제 돈을 내고 3시간 짜리 간접광고물을 봐야하는 관객들의 기분을 제작자는 반드시 고려했어야 하는 것이다.

시리즈에 대한, 로봇영화에 대한 의리로 이 영화를 선택했던 관객들 중 상당수가 이 시리즈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화 그 자체보다 광고에 집중했던 제작자의 선택이 관객들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뒤 승자로 남는 건 제작자나 관객들,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케이드 예거가 아니라 광고주들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좋은 영화가 아닌 이유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마이클 베이 오토봇 락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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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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