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 연합뉴스


"축구를 엄청 좋아하시네요."

월드컵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하는 말은 "부럽네요!" "시간이 되세요?" "돈이 많으신가 봐요?" "가족들은 어떻게 하고요?"입니다.

저는 평범한, 그렇지만 평범하지 않게 직장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마흔여섯의 대부분 남성들이 살아가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축구를 엄청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포항 스틸러스팀의 경기는 대부분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고, 타이틀이 걸린 중요한 경기나 놓치기 싫은 경기 아니면 우연찮게 제가 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나 장소가 걸릴 때는 최대한 시간을 내서 경기장을 찾는 편입니다. 때때로 열리는 대표팀 경기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가서 보는 편이고요.

사실 저와 같이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만만찮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축구에 투자하는 편입니다. 물론 저보다 더 많은 열정과 시간과 돈을 축구에 쓰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축구장을 찾고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팀의 경기나 보고 싶은 경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모두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 그런 친구들과 함께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보기 위해 떠났습니다. 길게는 15년 전에 축구팬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있고 짧게는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서로의 관심사를 확인하고 함께하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4년마다 반복되는 여행

 4년간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격려하고, 각자의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면서 말만 들어도 설레는 월드컵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4년간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격려하고, 각자의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면서 말만 들어도 설레는 월드컵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 오마이뉴스


어떤 사람은 축구가 인연이 돼 수시로 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지난 월드컵 때 만난 뒤 4년 만에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30년 넘게 소식조차 모르고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을 월드컵을 통해 다시 만나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축구 그리고 월드컵이라는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됐고, SNS를 통해 서로를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4년간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격려하고, 각자의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면서 말만 들어도 설레는 월드컵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모두가 처한 상황과 직업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함께 움직이는 단체 여행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단 5일 동안만 월드컵을 즐길 수 있고 저처럼 운이 따르는 사람은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한국 경기만을 보고, 어떤 이는 굳이 한국 경기만 고집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팀과 경기를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사람, 혼자 즐기는 사람, 호텔에서 묵는 사람, 축구만 따라 다니는 사람, 축구보다는 여행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 최대한 돈을 적게 쓰는 사람, 최대한 돈을 쓰면서 즐기는 사람, 안타깝게도 함께 준비했지만 개인 사정상 월드컵 여행을 포기하는 사람까지...

하여튼! 우리는 그렇게 각자 처한 상황을 뚫고 또 한 번의 월드컵을 즐기게 됐습니다. 우리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월드컵의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각자 요령껏 자기들의 시간과 비용, 자기들만의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서 기어이 브라질까지 가게 됐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때로는 만나고 때로는 헤어지면서 각자 자기만의 월드컵을 즐기겠지요.

우리는 축구를 무척 좋아하지만 축구에 미친 사람들은 아닙니다. 축구에 많은 시간을 쓰지만 축구로 인해 자신의 생업과 주변인과의 관계가 망가질 정도는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고요. 축구에 많은 돈을 쓰지만,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에 비해 축구와 월드컵의 우선순위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마냥 즐겁게 월드컵을 즐기기에는 사회적으로 불편하고 슬픈 일들도 있습니다. 월드컵이란 것이, 또 축구란 것이 극도로 상업화됐고 월드컵에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겠지요. 브라질 국민들의 기본적인 행복이 월드컵 때문에 뒤로 미뤄지는 현실도 사실이고요.

또한 현장에서 월드컵을 편하게 즐기기에는 여러 가지 정황상 많은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정말 신나게 즐기기에는 우리 대표팀의 상황이 그리 만만찮은 것도 걱정되고, 잠시 접어두고 온 직장의 일과 동료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럼에도 이렇게 월드컵을 즐기고 싶은 열정이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걸 보면 월드컵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경기장에서의 열정과 환호, 아련한 뒷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장에서 어울리는 여러 축구팬들과의 유쾌한 만남, 월드컵을 계기로 돌아보는 개최국의 아름다운 모습과 음식·문화·역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4년간의 일상에서 가슴속에 묵혀둔 것들을 토해내는 기쁨도 큽니다.

무엇보다도 4년간 틈틈이 준비하면서 느끼는 그 설렘과 궁금증,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 사이의 격한 공감이 우리를 월드컵의 나라 브라질로 부른 것 같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치열한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웃어주는 모습에 월드컵의 재미가 있는 듯합니다. 이겼을 때 한없이 기쁘고 졌을 때는 땅속으로 기어 들어갈 듯이 절망하지만, 우리 팀이 월드컵에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구라는 공통분모 하나면 밤을 새우도록 즐겁게 놀 수 있는 축구팬이기 때문입니다. 축구를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모든 장벽을 허물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우리가 좋아하는 축구를 즐기는 과정에서 브라질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월드컵에는 경기에서의 경쟁과 승패, 최종순위가 아닌 무엇이 있습니다.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 월드컵에 참가하는 나라에서 온 팬들과 직접 만나고 교감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서로 소통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재미있는 일입니다. 한국 경기만 재밌는 게 아니고 경기장에서만 재밌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팀들의 경기를 함께 보면서 만나고 웃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지요.

한국 16강 진출보다 중요한 건...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가나의 평가전에서 네 골을 허용한 뒤 힘든 경기를 이어가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홍 감독 뒤로 교체 후 벤치로 나온 박주영과 구자철, 곽태휘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은 지난 10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가나의 평가전 당시 모습. ⓒ 연합뉴스


2006년 월드컵 당시 제가 본 독일은 무자비한 히틀러의 나라나 딱딱한 사람들만 사는 재미없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2010년 월드컵 때 본 남아공은 범죄 공화국이 아니라 조화와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나라였습니다. 2014년의 브라질은 어떨까요?

분명히 위험 요소가 많고 우리가 걱정하는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시되는 여러 가지 자료를 보더라도 월드컵을 편하게 즐기기에는 여러 가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브라질과 브라질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그리고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안다면 불미스러운 사고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준비하고 주의하는 만큼 더 안전하게 더 재미있게 월드컵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축구를 통해 전 세계인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축제를 직접 현장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일 겁니다.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과 돈과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받아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브라질 월드컵은 이미 개막했고, 한국팀의 첫 경기가 하루씩 당겨질 때마다 많이 설레고 많이 기대됩니다. 펠레의 나라 브라질이 궁금하고 앞으로 만날 모든 사람, 벌어질 모든 일들이 궁금합니다.

월드컵을 이야기 할 때 16강이냐 8강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팀의 전술이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을 즐기기 위해 4년을 기다렸습니다. 그곳에 가야만 즐길 수 있는 월드컵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4년을 기다리고, 준비해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겠지요.

4년을 기다린 끝에, 저와 친구들은 지금 월드컵의 나라 브라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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