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이방인' 공식 포스터

▲ '닥터 이방인' 공식 포스터 ⓒ SBS


사실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던 북한에서의 주인공들의 모습, 영화를 방불케 했던 헝가리 도심에서의 추격전, SBS 월화드라마 <닥터 이방인>의 시작은 그렇게 창대했다. 매우 동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전개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한 번에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주인공 박훈(이종석 분)이 남한에 정착하게 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드라마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고 전개는 지지부진해진 것. 게다가 현재 <닥터 이방인>에는 정치, 의학, 멜로, 가족애와 동지애 등 모든 것이 뒤섞여 있어 그 장르조차 쉽게 짐작할 수 없다. 이 미스터리한 상황, <닥터 이방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은 멜로, 드라마의 중요한 축이 흔들리다

박훈이 과연 북한에서 만난 첫사랑 송재희(진세연 분)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와 그가 남한에서 의사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 <닥터 이방인>을 관통하는 두개의 주요 키워드다.
  
위의 두 가지 중 시청자들은 어떤 것을 더욱 궁금해 하고 있을까? 현재까지 진행 상황을 보건대,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궁금증과는 별 상관없이 전자를 훨씬 더 중요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박훈은 입만 열면 송재희를 부르짖고, 눈만 뜨면 그를 찾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막 6회를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송재희'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이 아니라 이름 석 자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의 이름은 박훈 외에도 모든 등장인물들의 대사에서도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어,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어릴 때 본의 아니게 북한에서 살게 됐던 박훈의 절박했던 지난날, 큰 위로였으며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송재희. 그가 박훈의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감, 의미 등이 엄청나다는 것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가 그것을 강조, 또 강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할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의 감정선을 곧이곧대로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

물론 박훈의 절절한 사랑에 무작정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를 지금의 송재희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 돌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 조금 더 미스터리한 상황으로 그려냈다면 반응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우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건대, <닥터 이방인>의 멜로로서의 가치는 그리 높게 쳐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박훈과 송재희의 관계 뿐 아니라, 박훈과 오수현(강소라 분). 오수현과 한재준(박해진 분)의 관계 또한 그리 애절하게 느껴지거나 시쳇말로 '케미'가 돋보이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어떻게 그려 나가느냐, 가장 큰 과제
 
'닥터 이방인' '이방인' 박훈이 불합리한 세상을 향해 휘두를 채찍이 좀 더 날카로운 것이 되기를 바란다.

▲ '닥터 이방인' '이방인' 박훈이 불합리한 세상을 향해 휘두를 채찍이 좀 더 날카로운 것이 되기를 바란다. ⓒ SBS


멜로는 그렇다 치면, 의학드라마로서의 가치는 어떨까? 수술 장면 등은 꽤나 사실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긴장감 넘치는 연출까지 보태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수술 전후의 상황 설정이 허술하기 짝이 없고, 주인공들 이외의 인물들이 어처구니없이 무능해 보이는 등, 구멍이 너무나 많다.

또한 이 드라마에는 대통령, 총리 등의 높은 직책의 인물들까지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심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가족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것은 그저 이 드라마가 채택한 무수한 소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거다.

의학, 정치, 가족드라마 등등 그 어떤 것이라고도 정확히 지칭할 수 없다면, <닥터 이방인>의 최대 이슈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열쇠는 바로 이 드라마의 제목에 숨겨져 있다. '이방인'을 어떻게 그려 내는가에 이 드라마의 성패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박훈은 평양의대를 졸업하고 수많은 수술 경험이 있는 천재 의사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멸시 당하는 처지다. 반기는 사람은 드물고, 질시와 견제의 눈길은 가득하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세속의 잣대로만 무참히 재단해버리는 천박한 인물들 속에 우뚝 섰다.

뼛속까지 철저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박훈, 많은 이들은 그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 그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는 박훈의 당당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보다 못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깔아뭉개는 습성을 가진 인물들, 혹은 세상에 대한 응징의 성격을 지닌다. 그의 활약상이 커질수록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 또한 커질 것임이 분명하다.

요즘 들어 볼만한 드라마가 없다는 원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운데, <닥터 이방인>도 지금의 전개라면 그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전개는 허술하고 내용 또한 조금 부실하더라도, 불합리한 세상에 휘두를 '이방인' 박훈의 채찍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은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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