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기로운 해법> 포스터

영화 <슬기로운 해법> 포스터 ⓒ 시네마달


세월호 참사로 불신 당하고 있는 한국 언론은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사회적 목탁이라는 공기(公器)보다는 약자들을 향한 흉기로 돌변한 상태다. 사실보도는 차치하고라도 조작과 왜곡을 서슴없이 하는 행태 앞에 언론은 양치기 소년이란 비아냥이 익숙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만큼 신뢰감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언론을 비웃어주겠다는 듯 특별한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태준식 감독이 연출한 <슬기로운 해법>은 바로 이런 현실을 꼬집어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 한국사회에서 비이성적 언론들을 향해 감독이 던지는 돌직구가 묵직하게 느껴질 정도다.

영화는 수구언론의 조폭적인 행태가 이미 전부터 일상화된 모습이며, 그리 새삼스럽지 않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서슴없이 조작하고 드러나면 시간 끌고, 반성은커녕 발뺌하는 모습은 참 뻔뻔하게 다가온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이 권력자본과의 유착관계를 이용해 어떻게 스스로를 권력화하고 있는지는 보여주는 부분도 그렇다. 

<슬기로운 해법>은 조중동이 언론이란 이름으로 자행한 술수와 거짓, 왜곡의 행태를 고발한다. 강자에게는 얼마나 고분고분하고 약자는 사정없이 짓밟는 이중성 역시 고발의 대상이다. 언론의 역할을 외면한 채 권력과 자본과의 유착 속에 사실도 멋대로 바꿔 버리는 조중동과 권력의 홍보에 앞장서는 방송은 또 하나의 권력일 뿐이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슬기로운 해법은 없을까?'가 바로 이 영화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힌국의 언론현실은 아프리카 수준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한국 언론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연주 전 KBS 사장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한국 언론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연주 전 KBS 사장 ⓒ 시네마달


하나의 다큐멘터리는 보통 2~3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제작한다. 따라서 개봉이 됐을 때 영화 제작 당시와 이후 새롭게 전개된 과정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슬기로운 해법>처럼 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영화는 드물 것이다.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있을 미리 예견하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예컨대 이런 부분이다.

최근 MBC의 보도 책임자가 세월호 피해 유족들을 폄훼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그가 했다는 말 중에는 '누가 글을 올린 것처럼 국민 수준이 그 정도'라며 '국가가 아프리카 수준'이란 표현도 등장한다. 물론 당사자는 발언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에버트 재단의 <아시아 언론 지표: 2013년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현실은 아프리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나 국민이 아닌 바로 언론의 수준이 아프리카에 비교될 만큼 형편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보다는 심기만을 살피고 진실을 가리는 방송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최근 KBS 보도책임자의 실언 논란이 사장 퇴진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은 권력에 장악돼 망가진 방송의 실체를 보여 준다.

<슬기로운 해법>에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나와 임명 당시 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했던 대통령의 사례를 소개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총장과 KBS 사장에게는 전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켜냈다. 덕분에 공영방송의 역할이 보장됐으나 이후 바뀐 권력이 방송을 장악하면서 지금은 불신의 방송으로 전락하고 만다.

조중동과 방송권력에 의해 후퇴된 민주주의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언론 개혁을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로 여겼던 노무현 대통령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언론 개혁을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로 여겼던 노무현 대통령 ⓒ 시네마달


<슬기로운 해법>의 영화의 큰 줄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존재한다. "군사독재가 무너진 뒤 언론이 권력으로 군림하려 하고 있다"며 "특권과 반칙을 해소하겠다"고 다짐했던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그 언론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어떤 면에서 우리 시대는 한 사람의 훌륭한 언론운동가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을 잃은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상습적인 왜곡을 일삼던 언론, 특히 조중동은 노무현의 죽음에 일정한 책임이 있는 존재들이다. <슬기로운 해법>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짚어 준다.

익히 알고 있는,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을 공격하며 조중동이 신조어로 만들어낸 '세금폭탄'은 마치 대다수 국민이 포함된 것처럼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상위 3%만 해당될 뿐이었다. 부동산 건설회사로부터 쏠쏠한 광고수입을 올리는 탓에 그들은 사실 왜곡에 앞장섰다.

단순한 혐의를 마치 확정된 사실인양 앞서가던 태도는 이미 언론의 본분을 포기한 처사였다. 권력과 협잡해 확인 안 된 사실을 보도하고 나중에 가서 '아니면 말고'라고 해 버리는 태도는 흉기로 변한 언론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약자를 보듬기 보다는 강자의 심기에만 신경 쓰는 언론의 태도는 끝내 현장에서 외면받는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제 역할 못하는 언론은 양치기 소년이 된 언론의 단면을 보여준다.

영화 속 노무현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에 충실하고 공정하고 책임있는 언론이 돼야 합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론의 수준만큼 발전할 것입니다." 언론을 마지막 남은 개혁과제로 생각했던 노 대통령의 말은 마치 지금 언론의 현실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될 만큼 무겁게 다가온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신문을 읽는 방식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영화 <슬기로운 해법>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슬기로운 해법>은 '거짓말의 이유' '펜은 총보다 강하다', '위기는 위험하다', '언론 앞의 절대자' 등 모두 5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오보를 일삼으며 여론을 조작하는 행태와 제4의 권력으로서 오만함, 권력과 유착과정에서 얻어낸 종편 특혜, 언론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 삼성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5장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슬기로운 해법'은 퇴임한 노무현을 향해 카인의 형벌을 내리는 게 슬기로운 해법이라고 공격했던 <중앙일보> 기획 내용에서 따왔다. 이를 역으로 활용해 거짓을 일삼는 언론에게 속지 않기 위한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영화는 권력과 자본의 지시에 순응하는 언론과 광고를 활용해 언론을 지배하려는 자본을 향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삼성 자본이 수여하는 언론상 시상식에 참여해 웃음 짓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과 대한문에서 기자회견을 열려다 강제로 연행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놓은 장면은 깊은 한숨을 내쉬게 할 만큼 언론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슬기로운 해법>은 현직 언론인들과 해직 언론인, 언론학자,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기사와 자료를 꼼꼼히 취재했다. 그래서 내용이 더욱 돋보인다. 조중동과 종편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을 제대로 비꼬는 영화는 잠시 잊고 있던 그들의 과거 행적을 상기시키면서 '슬기로운 해법'에 대한 고민을 안겨 준다. 양치기 소년이 많아진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개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해법>에서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신문을 읽는지 전해주는 부분이다. 기사 하나가 회장님의 손에 읽혀지기 위해 여러 번 복사 과정을 거치며 공들여 다듬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웃음이 나올 정도다.

덧붙이는 글 5월 15일 개봉.
슬기로운 해법 조중동 노무현 언론
댓글1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