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3-2014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창원 LG와 울산 모비스 6차전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10일 오후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3-2014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창원 LG와 울산 모비스 6차전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4회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한 번 KBL 최고 명장의 위상을 입증했다.

10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창원 LG와의 챔피언 결정 6차전에서 79-76으로 이긴 모비스. 모비스는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2006-2007 시즌을 시작으로 2009-2010, 2012-2013 시즌에 이어 네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모두 유재학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따낸 성과들이다.

모비스 왕조는 곧 '유재학 왕조'다. 지난해까지 전창진 부산 KT 감독, 신선우 전 KCC 감독과 함께 3회 우승으로 타이기록을 유지했던 유재학 감독은 KBL 역사상 두 번째로 2연패에 성공한 감독에 오르며 화려한 커리어를 추가했다. 모비스는 전신인 부산 기아 시절까지 포함하면 5회 우승으로 전주 KCC와 함께 역대 최다우승 타이기록도 세웠다.

35세부터 감독 시작... 유재학표 '벌떼농구' KBL 흔들다

경복고와 연세대를 나와 실업 기아에서 선수 생활을 보내며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중 한 명으로 주목받았던 유 감독은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일찍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른 은퇴는 그에게 좀 더 일찍 준비된 지도자로서 제 2의 농구인생을 열어주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1991년 모교인 연세대 코치에 부임하며 지도자의 길에 입문한 유 감독은 1994년 신생 대우 농구단 창단 코치를 임명되어 프로 원년 출범까지 대우 제우스 코치로 활약했다. 1998년 5월에는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최종규 전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겨우 35세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식 감독에 임명된 1999-2000 시즌부터 감안해도 KBL 역대 최연소 감독 기록이다.

유재학 감독은 비록 프로무대에서는 선수로 뛰지 않았지만, 원년부터 코치 시절을 포함하여 17년간 단 한 시즌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개근한 유일무이한 지도자다. 1998~2004년  전자랜드(대우, 신세기 빅스 시절 포함), 2004년부터 현재까지 모비스의 지휘봉을 잡는 동안 지도자로서 한 번도 경질된 적이 없다. 한 팀에서만 현재 10년 이상 감독직을 지키고 있는 지도자도 유재학 감독이 유일하다.

천하의 유재학 감독도 부침을 겪던 시절이 있었다. 정식 감독 데뷔 첫 시즌이었던 1999-2000 시즌 15승에 그치며 최하위인 10위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팀이 전자랜드로 바뀐 2003-2004 시즌에 창단 처음으로 4강까지 올려놓으며 리그에 40대 지도자 열풍을 일으켰다.

지도력을 인정 받아 2004-2005 시즌부터는 모비스로 전격 이적하면서 유재학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전성기를 열었다. 유재학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모비스는 전신 기아 시절의 영광을 모두 상실하고 쇠락한 약팀에 불과했다.

유재학 감독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리빌딩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팀을 재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미완의 유망주들과 다른 팀에서 버려지거나 한물간 식스맨들을 조합하며, 장단점이 뚜렷하고 불완전한 선수구성을 최상의 팀워크로 재구성하는 유재학표 '벌떼농구'가 KBL을 뒤흔들었다.

유재학 감독의 모비스는 첫해인 2004~2005시즌 7위에 그쳤으나 이듬해 2005~2006시즌 일약 정규시즌 1위로 부상하며 중흥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해 챔프전에서 서울 삼성에 4전 전패로 패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이듬해인 2006~2007시즌에는 유재학 감독의 커리어 첫 통합우승에 성공했다.

이후 주축 선수들이 거듭된 군입대와 이적 공백에도 불구하고 유재학 감독은 끊임없이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는 수완으로 2~3년 단위로 팀을 다시 정상권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2009-2010 시즌에는 그해 팀 샐러리캡 최하위를 기록하고도 두 번째 정규리그와 챔피언전 통합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유재학 감독은 지난 2012년 12월 18일에는 개인 통산 정규리그 400승 고지를 돌파했다.

선수의 재능과 장단점을 파악하는 데도 탁월한 안목을 지닌 유재학 감독은 수많은 선수들을 스타로 키워냈다. 김효범, 함지훈, 이지원, 박구영, 이대성, 김시래 등은 유재학 감독의 안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지원, 박종천, 우승연, 김현중, 이병석, 이창수 등 다른 팀에서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거나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던 베테랑들을 끌어모아 중요한 선수로 부활시킨 것도 유재학 감독의 작품이다.

특히 프로경력을 유재학 감독과 함께한 모비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양동근은 유 감독의 대표적인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데뷔 시절만 해도 운동 능력만 좋고 가드로서의 리딩과 시야, 슈팅 능력이 모두 어정쩡한 듀얼 가드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유 감독의 철저한 조련하에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신인왕, 정규시즌-챔피언전 MVP 각 2회 등 개인타이틀은 물론 총 4회의 정규시즌과 챔피언전 우승은 은퇴한 추승균(전주 KCC)를 제외하면 현역 최다기록이다.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 주희정 등 KBL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가드들을 뛰어넘는 '살아있는 전설'로 등극한 셈이다.

상대팀의 장단점을 철저히 해부하는 유재학 감독의 현미경식 전략분석과 맞춤형 전술은, 정규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서 더 위력을 발휘하며 모비스를 단기전의 끝판왕으로 끌어올렸다. 2012-2013 시즌 정규리그 챔피언이던 서울 SK에 상대전적 4승 2패에 뒤졌으나 챔프전에서는 SK의 자랑이던 변형 드롭존과 애런 헤인즈를 무력화 시키며 4전 전승으로 완승을 거뒀고, 올해 플레이오프 리턴매치에서도 3승 1패로 다시 제압했다.

올해 챔프전에서 만난 LG를 상대로는 초반 데이본 제퍼슨과 문태종의 원투펀치를 앞세운 화력에 고전했다. 그러나 4차전부터 함지훈과 문태영을 제퍼슨에게 붙이고, 이대성에게 문태종을 전담케하는 변형 스위치 디펜스로 LG의 공격력을 최소화하는 발빠른 대처능력이 흔들리던 시리즈의 흐름을 다시 바꿨다. 워낙 다양한 수싸움에 능하여 '만수'라는 닉네임이 붙은 유재학 감독의 노련한 전술운용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구시대적 리더십' 지적도... 더 큰 무대 도전

눈부신 업적을 쌓아온 유 감독이지만 여전히 그에 대하여 호불호가 갈리는 시각도 있다. 철저하게 분업화된 패턴 하에 선수들을 활용하는 유재학 감독의 조직농구는 KBL의 수비전술을 고도로 발전 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한편으로 성적만 의식하다 보니 선수 개개인의 창의성을 저하 시키고 재미없는 농구라는 평가도 존재했다.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엄격한 지도방식은 올해 정규시즌 작전타임 중에 벌어진 '함지훈 테이프 사건' 같은 해프닝에서 보듯, 강압적이고 구시대적인 리더십이라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유재학 감독이 현재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감독이며 가장 한국적인 농구의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현재 국가대표팀 사령탑도 겸임하고 있는 유재학 감독은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3년 필리핀 아시아선수권 대회 등에서 지휘봉을 잡아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는 약체라는 예상을 깨고 한국농구에 16년 만의 농구월드컵 출전권이라는 선물을 안기기도 했다. 유재학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강력한 전방위 압박을 통한 수비농구는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김민구와 이종현 같은 새로운 대학 스타들을 발굴하며 세대교체의 가능성까지 발견했다.

유재학 감독은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올시즌 2연패에 성공하며 두 팀을 겸임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유 감독은 올해 농구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일찌감치 지휘봉을 잡을 것이 확정되면서 4년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의 아쉬움을 떨쳐낼 기회를 잡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경력에도 유 감독의 나이는 이제 겨우 51세. 이미 KBL에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업적을 세운 유재학 감독은 아직도 이룬 것보다 앞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그의 도전은 이제 좀 더 큰 무대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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