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메피스토>에서 악마 메피스토를 연기하는 전미도.

연극 <메피스토>에서 악마 메피스토를 연기하는 전미도. ⓒ 예술의전당


예술의 전당 벽에 걸린 연극 <메피스토> 현수막의 포스터 사진 속 배우가 누구인지 몰랐음을 고백한다. 알고 보니, 전미도란다. 포스트를 암만 뜯어보아도 전미도의 평소 귀여운 얼굴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파격적이라는 수식어가 맞을 듯하다.

프레스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냥하고 여린 전미도의 목소리가 아니라 허스키하고 괴기스러운 목소리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기존 전미도의 이미지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파격적인 배역이다. 메피스토에게 시달린 듯 전미도의 컨디션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준 호의에 지면을 빌려 박수를 보낸다.

- 귀엽고 사랑스러운 역할을 많이 많았는데 이번 메피스토 역할은 '전미도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학교 다닐 때에는 비슷한 역할을 해보지 않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여러 역할을 연기했다. 다른 역할을 해보고는 싶었지만 뮤지컬에서 멜로의 여주인공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러다 보니 연기 이미지가 한정적이라 메피스토 같은 역할이 찾아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배역에 탐이 나서 덥석 잡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하지만 '참 행복하다'는 감정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어떻게 배역을 소화하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시름시름 앓았다. 대본 외에도 파우스트에 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었는데, 제목을 보니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였다. 제 역할이 주인공이라 '정말로 큰일 났구나' 싶었다. 대본을 받고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

이 배역을 하면서 제가 메피스토가 된 것이 아니라 메피스토에게 걸린 것 같다. 메피스토가 아무것도 못하게 사람을 홀리는 것만 같았다. 연기할 때 관객이 힘들어 보일까 걱정되는 면이 있다. 첫 대사를 할 때부터 '이걸 어떻게 다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구부정하게 자세를 구부리고, 악마의 목소리를 내려다보니 제 목소리로 연기하지 못하는 것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무력한 악마, 왜소한 여자가 연기하는 게 맞다"

전미도 "신이 파우스트를 구하겠다고 작정해도 악마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악마의 무력함을 보면 힘 센 남자배우가 악마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왜소하고 여자인 제가 메피스토를 연기하는 게 맞다."

▲ 전미도 "신이 파우스트를 구하겠다고 작정해도 악마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악마의 무력함을 보면 힘 센 남자배우가 악마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왜소하고 여자인 제가 메피스토를 연기하는 게 맞다." ⓒ 예술의전당


- 평소 귀여운 전미도씨 얼굴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분장이 파격적이다.
"분장하는 데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린다. 분장 받는 동안 먹은 게 소화가 다 될 정도다. 공연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배가 고프다. 남편은 분장한 제 모습을 보고는 섬뜩하다고 표현했다. 콘셉트 촬영을 한 게 리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메피스토가 실감나지 않았는데 분장을 받아보니 캐릭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촬영할 때의 느낌은 말 그대로 음산함 그 자체였다. 제가 절 보아도 무섭더라."

- 백이면 백, 악마인 메피스토를 남자로 설정하는 공연이 많은데 여성으로 설정했다.
"작가와 연출가의 생각이 반영된 거지만 제 생각은 이렇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신과 악한 영이 있다고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악한 영은 사람에게 무서운 존재일 거 같지만 사실 악마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없다.

연극의 맨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안다. 어떻게든 사람을 유혹하려고 애를 쓰지만 무력한 존재다. 신이 파우스트를 구하겠다고 작정해도 악마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악마의 무력함을 보면 힘 센 남자배우가 악마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왜소하고 여자인 제가 메피스토를 연기하는 게 맞다.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과 게임을 하는 게 메피스토다. 결국은 신에게 지는 것 아니겠는가."

- 실제로 메피스토가 전미도씨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부분에서 가장 유혹을 받을 거 같은가.
"연기로 유혹당할 것 같다. 콘셉트 사진을 촬영하면서부터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배역에 대한 부담이 컸다. 그때부터 마음속에서 '할 수 있겠어?' '센 역할이고, 무대에서 경력이 많은 정동환 선생님과 호흡을 맞출 정도가 되어야 하고,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데 너같이 작은 몸의 여자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 역할을 못할 거 같아서 집에서 많이 울었다. '메피스토를 연기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이렇게까지 왔구나' 하며 가슴을 칠 정도였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은 '배우니까 이 배역에 욕심나는 건 당연하다. 욕심이 안 나면 배우로서 이상한 거다'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해주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할 정도였다."

전미도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전화한 게 두 번 있다. <신의 아그네스>와 이번 <메피스토>다. 어머니는 전화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목이 가든 말든 힘껏 소리질러가며 연습했다. 신기한 건 연습 초반 쉰 목 이상으로 목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 전미도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전화한 게 두 번 있다. <신의 아그네스>와 이번 <메피스토>다. 어머니는 전화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목이 가든 말든 힘껏 소리질러가며 연습했다. 신기한 건 연습 초반 쉰 목 이상으로 목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 예술의전당


-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연기해야 해서 목 관리가 각별해야 할 텐데.
"목이 가면서부터 살짝 스트레스를 받았다. 심적으로 힘들 때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작품이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전화한 게 두 번 있다. <신의 아그네스>와 이번 <메피스토>다. 어머니는 전화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목이 가든 말든 힘껏 소리질러가며 연습했다. 신기한 건 연습 초반 쉰 목 이상으로 목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제대로의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보다 목이 약간 쉰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도움이 된다."

- 최소한 일 년에 한 편은 고전 연극으로 관객과 만난다.
"저를 깨고 싶어서 연극으로 돌아오는 거다. 고전은 현대물보다 어렵다. 어려운 걸 만나야 기존의 틀이 깨진다. 그 재미로 연극을 매 년마다 택한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고전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관객을 설득할 만한 장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하지만 <메피스토> 다음 연극은 고전이 아닌 현대물을 하고 싶다. 연이어 두 작품을 고전을 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다.(웃음)"

전미도 정동환 메피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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