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공식 포스터

▲ '밀회' 공식 포스터 ⓒ jtbc


JTBC 월화드라마 <밀회>가 시작되자 이곳저곳의 사이트들에서 전에 없는 논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때로 심한 언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관련 글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고, 드라마의 감상평 또한 무조건적 찬양의 내용이 많다는 이유도 있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것이 드라마 제작진 쪽의 은근한 홍보가 아니냐는 것에서부터(사실 이것은 그 진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소모적이긴 하지만, 논란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다.), 그래봤자 '지저분한' 불륜에 관한 내용일 뿐인데 미사여구를 동원한 찬양조의 글들이 마뜩치 않다는 소리도 컸다.

어찌 되었든 <밀회>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뜨거운 편이다. 김희애의 팜므파탈 역할과 스무 살 청년의 유약함과 열정을 연기하는 유아인에 대한 평가, 불륜과 부유층의 비리를 건드리는 내용 등에 대한 비난과 찬양이 끊이지 않고 충돌하고 있으니 화제성은 이미 담보된 셈이다.

묘한 역학관계, 멜로임에도 스릴러적 요소 부여

<밀회>는 멜로드라마임에도 때로 스릴러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많은 부분 오혜원(김희애 분)과 그의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 그리고 이선재(유아인 분), 세 사람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만일 모진 사람이라면 오혜원과 이선재의 사랑을 맘 놓고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비록 허당이어도 충분한 선의를 갖춘 강준형의 존재는 마음 한 구석을 쓰라리게 만든다. 악역을 만들어 불륜을 정당화하기 바쁜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 세 사람의 역학관계는 꽤나 새로운데, 그것이 주는 긴장감은 때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스무 살 차이의 남녀, 그것도 여자 쪽이 연상인 오혜원과 이선재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열정적으로 서로에게 집착하는 두 주인공의 사랑은 많은 이들을 몰입하게 하고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가슴을 울리는 피아노의 선율에 실린 두 사람의 실루엣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만일 두 사람이 연상연하의 커플이 아니었더라도 <밀회> 속의 사랑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설렐 수 있는 일이다.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낭만적 클래식 음악이 매개가 된데다 스무 살 차이의 나이 설정이 가중치를 더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아름답다 여기고 꿈꾸듯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젊음이 삶의 최대 가치라 믿고 그것을 무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른 부분들에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오혜원과 이선재의 사랑은 그저 물불 안 가리고 한 순간의 열정에 빠진 남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하남과의 사랑이 나이깨나 먹은 여성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대리만족의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오만일 수 있다. 그것은 남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어린 상대와의 결혼이라면 무작정 축하하고 보는(도대체 왜?) 사회적 분위기의 일환이라 볼 수도 있겠다.

비극의 전초전, 욕망의 희생자는 누가 될까

'밀회' 잠재해 있던 오혜원의 욕망은 순수한 영혼 이선재를 만나 불이 붙었다.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 '밀회' 잠재해 있던 오혜원의 욕망은 순수한 영혼 이선재를 만나 불이 붙었다.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 jtbc


오혜원과 이선재의 치명적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했지만, <밀회>의 초점을 그것에만 맞추는 일은 여러 모로 온당치 않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경직되고 위선적이며 부패한 뒤안길, 부와 명예의 유무로 고착화되는 사회 계층의 모순에 던지는 문제의식 등이 심도 깊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민으로 포장된 흑심을 한껏 드러내고, 그 대상을 '품어 주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서필원(김용건 분)의 행태, 그의 부인 한성숙(심혜진 분)과 딸 서영우(김혜은 분)의 말초적 신경전도 큰 구경거리이며, 비리 월드의 구심점이라는 음대 학장 민용기(김창완 분),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짜 악기를 팔아먹는 일도 서슴지 않는 김인주(양민영 분)의 활약(?)도 기대되는 바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역시 오혜원의 행보다. 멜로의 중심에 서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그 또한 위의 사람들 못지않은 속물 중의 속물이기 때문이다. 출세를 위해 철저히 자신을 억누르고, 서필원이 간택한 여성들을 조용히 섭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의뭉스런 인물, 비록 현재 사랑에 빠져 앞뒤 못 가리고 있다지만, 한 차례 욕망이 휩쓸고 난 후에 그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미지수다.

사실은 위선과 탐욕 덩어리인 오혜원이 모든 것을 버리고 순수한 사랑을 좇는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성정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가슴 속엔 일렁이는 야심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야비하고 비굴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에게 찾아온 비련의 사랑? 인지부조화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런가.

하지만 그 사이에서 보이는 묘한 줄타기, 그것이 오혜원이라는 인물을 복합적이며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이유다. 순수한 스무 살 청년으로 인해 드디어 분출구를 만난, 걷잡을 수 없게 타오르는 그의 욕망은 그간 한껏 억압되어 있었기에 더욱 인화성이 강하다. 여러 면에서 이선재에게 '갑'일 수밖에 없는 오혜원, 그는 과연 계속하여 일편단심일 수 있을까?

그러나 이선재는 오혜원과 시작점부터 다르다. 높은 이상과 재능을 지녔지만 스스로를 지켜낼 힘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결국 스탕달의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 르네 클레망의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알랭 들롱 분), 혹은 금기에 도전했던 소설과 영화 속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욕망의 잔재를 뒤로한 채 고스란히 산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은 아프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선택해야 한다. <밀회>를 일찌감치 놔버리든지, 아니면 단순한 멜로드라마로 여기고 애닳아 하든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밥맛 없는' 등장인물들의 위선과 악행에 비판의 날을 세우며 또 다른 시각을 즐기든지. 하긴, 그 어떤 쪽이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파국은 이미 예정된 것일 지도 모르므로.

불구덩이 위를 걷고 있는 오혜원과 이선재, 두 사람의 욕망은 제거당할 것인가? 무시무시하며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 인간의 감정이란 때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변해버리고 마는 순간의 감정들,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는 허탈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숙명, 한계에 봉착했을 때의 절망감. <밀회>가 단순히 불륜에 관한 드라마라면 참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밀회 유아인 김희애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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