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포스터

공식 포스터 ⓒ (주)에코필름


<방황하는 칼날>은 국내에서도 2008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그 소설을 원작으로 일본에서 2009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으며(마시코 소이치 감독), 2014년 한국에서도 리메이크한 작품이 개봉된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에 대부분의 관객이 영화의 내용은 대강 알고 있으리라. 아빠와 둘이 사는 딸이 불량 청소년들에게 납치당하고, 살해된 채 발견된다. 성폭행과 약물 투여 흔적이 발견되고 홀로 남은 아빠는 딸의 복수를 위해 살인자들을 단죄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정의를 법의 테두리 밖에서 해결하려는 소시민의 분노와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경찰의 본분을 다하고자 하는 두 경찰의 이야기가 교차돼서 진행된다.

어린 딸이 무참하게 강간, 살해당했다면 세상 그 어느 아버지가 온전히 버틸 수 있단 말인가? 자신에게 정보를 준 제공자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범인의 집에 간 상현(정재영 분)은 우연히 맞닥뜨린 범인을 살해하게 되고, 나머지 범인을 찾아 강원도로 떠나게 된다. 범인의 얼굴도 모른 채, 가끔 날아오는 문자 메시지에만 의존한 채, 외로운 싸움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딸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험난한 싸움이 시작된다.

딸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험난한 싸움이 시작된다. ⓒ (주)에코필름


일본 원작에 비해 이야기 층 두껍고 인물 다양해

일본 원작과 내용은 흡사하지만 이야기의 층은 더 두꺼워지고 인물은 다양해졌다. 일단 억관(이성민 분)이 상현의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명확하다. 과거 청소년 범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느끼는 분노와 책임감, 그리고 상현에 대한 동정심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리로 수진을 죽인 범인 두 명뿐 아니라 다른 성범죄자를 등장시키고 그를 살해하는 상현을 통해, 이야기의 다양함과 상현의 외로움, 극한에 몰린 처절함을 더 부각했다. 강원도 경찰들과 범인들의 학교 친구들이나 범인의 부모 등, 일본 원작에 비해 훨씬 많은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나열된다.

원작이 일본 영화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느낌이 있다면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은 좀 더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인물 간의 극적인 갈등을 부각한 느낌이다. 원작이 담담하게 사건을 추적해 나가면서도 감정의 강요를 하지 않으며 청소년 문제에 대해 관조하는 듯하면서도 화두를 던지는 느낌이라면, 이번 작품은 국내 청소년 범죄와 법체계에 대해, 한국 사람이라면 가슴 먹먹해지는 느낌과 울컥함을 느끼며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느낌이다.

다만 원작이 아버지가 느끼는 감정을 절제된 연기와 설득력 있는 인물의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판단을 맡긴 반면, 이번 국내 작품은 정재영의 쥐어짜는 듯한 울음과 절규를 통해 그가 느낀 분노와 슬픔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그가 두식(범인 중 한 명)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 허술하고 어리석은 방법이라 공감이 되지 않고, 중간에 몰입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서준영과 이성민은 정의감에 불타는 신참형사와 가슴뜨거운 투박한 고참형사역을 맡아 열연했다.

서준영과 이성민은 정의감에 불타는 신참형사와 가슴뜨거운 투박한 고참형사역을 맡아 열연했다. ⓒ (주)에코필름


원작에서 젊은 형사 역의 타케노우치 유타카가 사건의 관찰자로서 갈등하고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지만 국내 작품에서는 원작에서 이토 시로가 맡았던 고참 형사의 역을 이성민이 맡아 좀 더 감정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을 소화해냈다. 아쉬운 점은 오히려 정재영보다 이성민의 분량이 더 많고 그의 역할이 더 돋보인다는 점이다. 영화 중간 정재영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그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추격 때문인지 그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기 힘들다.

물론 고군분투하는 소시민적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할 말 없지만, 오히려 안쓰럽기만 하고 영화적으로는 몰입을 떨어뜨리는 비현실적 요소다. 원작에서 테라오 아키라가 어린 딸을 잃은 슬픔을 감정의 과잉 없이 훌륭히 소화해 냈다면, 정재영은 매 순간순간 감정을 폭발시켜 '그래, 나 딸 잃고 정신이 나갔다' 라고 소리치듯이 좀 산만하고 과잉된 연기를 펼친다.

이 영화는 100% 모든 장면을 핸드 헬드로 촬영했다.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지만 굳이 모든 장면을 그렇게까지 찍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상현과 억관의 감정을 따라가며 사건을 현장감 있게 표현하고 극적 긴장감을 배가하려는 의도인 것은 알겠지만,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다. 전반적으로 심도가 얕은 화면이나 그로 인해 포커스의 잦은 이동 등은 오히려 영화를 관람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형사의 입장이지만 둘의 슬픔만은 같다. 화면의 초점은 정재영에게 맞춰져 있지만 이성민의 존재감이 크다.

아버지와 형사의 입장이지만 둘의 슬픔만은 같다. 화면의 초점은 정재영에게 맞춰져 있지만 이성민의 존재감이 크다. ⓒ (주)에코필름


이성민은 극단 차이무 출신으로 필자는 <돼지 사냥>에서 그의 연기를 처음 봤다. 이후 <늙은 도둑 이야기>, <거기> 등에 출연했으며, 요새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당거래>, <해결사>, <체포왕> 등 수십 편의 영화에서 조연을 맡아 존재감을 드러내 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메이저급 상업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훌륭히 역할을 다했다. 오히려 정재영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선보이며 명실공히 이제는 주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놨다.

다만 역량에 비해 좀 아쉬운 점은 역할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아닐까 한다. 비슷한 예로 <용의자 X>의 조진웅을 들 수 있겠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수많은 영화에서 항상 조연을 맡았던 조진웅이 처음으로 주인공 형사역을 맡아 열연했지만 캐릭터가 지닌 모순과 한계점으로 인해 안타까움을 남겼던 것처럼 말이다.

 상현(정재형 분)은 무작정 범인을 쫓아간다. 그가 누군지도 모른 채

상현(정재형 분)은 무작정 범인을 쫓아간다. 그가 누군지도 모른 채 ⓒ (주)에코필름


영화 <파수꾼>과 <회오리 바람> 등 독립영화로 영화팬들의 뇌리에 각인됐던 배우 서준영은 최근 <드라마 스페셜-곡비>,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2> 등의 드라마에서 모습을 드러내 잘생기고 연기가 나쁘지 않은 배우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원작과 달리 제 3자의 입장에서 분량이 줄어든 아쉬움이 있고, 주연 배우들에 비해 존재감이 작고, 연기의 톤이 좀 안 맞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배우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주연이자 영화 제목인 '방황하는 칼날'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배우 정재영은 늘 그래왔듯이 보통 이상의 수준급의 연기를 펼쳤다. 물론 정재영스러운 성조와 발음은 있지만 주어진 캐릭터를 최대한 분석하고 자신의 것을 만든 노력이 보인다.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딸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아빠의 모습을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 냈다. 그러나 우직하고 조금은 어리석게까지 보이는 행동은 시나리오의 문제이리라. 오히려 이성민에 묻히는 그의 존재감이 아쉽기만 하다.

 이성민(좌)과 정재영(우)은 각자 훌륭한 연기를 펼쳤으나 앙상블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성민(좌)과 정재영(우)은 각자 훌륭한 연기를 펼쳤으나 앙상블이 부족한 느낌이다. ⓒ (주)에코필름


이정호 감독은 2010년 엄정화 주연의 영화 <베스트셀러>로 데뷔했다. 두 번째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들고 왔지만 독특한 문제작이라는 호평과 애매한 실패작이라는 혹평으로 관객의 반응은 양분될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의 감정 몰입을 위해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을 하는 수고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배우들의 연기가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제목인 '방황하는 칼날'이란 복수심이나 단죄의 칼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딸을 잃은 아버지든 경찰이든, 혹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 날로 심각해지는 청소년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4월 10일 개봉.

덧붙이는 글 본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blog.naver.com/mmpictures
방황하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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