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 에서 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정동환

▲ <메피스토> 에서 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정동환 ⓒ 예술의 전당


영화나 드라마로 유명세를 타면 영영 연극 무대를 떠나는 배우가 있는 반면에 아무리 유명해지고 바빠도 연어가 고향을 찾듯 무대로 다시 돌아오는 배우도 있다. 정동환은 후자에 속하는 배우다. 작년에는 드라마 <상속자들>로 눈코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그와 동시에 연극 <단테의 신곡>으로 호평을 받은 괴물 같은 배우다.

물질주의가 만연한 요즘 같은 시대에, 정동환은 "연극이 주는 힘은 물질이 제공하는 힘 이상의 저력을 갖는다"며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연극의 참 가치는 무엇일까.

- 최근 연극 필모그래피를 보면 <벛꽃동산> 같은 근현대물도 있지만 주로 <오이디푸스>처럼 고전에 많이 출연한다.
"고전은 '영원한 힘'이다. 고전은 옛날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관, 어느 시대에도 들어맞는 가치관을 제공하는 게 고전의 힘이다. 어제의 것이면서 오늘의 것, 내일의 것이 고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음을 꿰뚫을 수 있는 게 고전이다. 그래서 고전은 언제든 (연출가와 관객에게) 소환되고 저 역시 고전으로 소환된다."

- 물질만능주의가 사람들을 현혹하는 시대다. 그 점에 있어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라는 설정은 충분히 시의성을 가질 듯하다.
"(요즘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적절하다. 굳이 배금주의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물질이 거래되면서부터 소유의 중요성은 커지게 되었다. 이에 비해 존재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당장 가지지 못하면 바보'라는 생각을 갖기 쉽지만 절대로 아니다. 존재가 더욱 귀하고 가치 있는 거라는 걸 보여주려면 <메피스토> 같은 작품이 올라와야 한다. 물질적인 이익 외에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메피스토>에 참여했다."

- 그렇다면 파우스트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고 싶은가.
"이번 <메피스토>에서는 복잡한 걸 단순화하고자 한다. 복잡한 걸 줄인다는 뜻이 아니라 함축시킨다는 의미다. 너 안에 있는 나, 나 안에 있는 너, 내 안에 있는 갈등 속의 무엇 등으로 메피스토를 설정했다.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고 무언가를 요구할 때 찾아오는 대가에 대해 이번 <메피스토>가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것이다."

왜 연극하냐고? "연극이 바로 내 삶의 이유였다"
<메피스토> 에서 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정동환

▲ <메피스토> 에서 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정동환 ⓒ 예술의 전당


- 고등학생 때부터 극단에 입문했다. 다른 배우보다 일찍 연기에 눈을 떴다.
"가수가 된 사람에게 왜 가수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노래가 좋아서라고 대답할 거다. 제가 어릴 적에는 연극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연극을 무대로 올릴 만한 곳은 지금의 명동예술극장 딱 한 곳밖에 없었다. 한 극단이 극을 올릴 수 있는 가장 긴 기간이 일주일이던 시절이다. 당시엔 연극을 올리던 기간이 대개 하루, 이틀이고 연극이 올라가지 않을 때에는 아동극을 2~3일 올렸다.

당시에 아동극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귀한 경험이다. 발품을 팔아 아동극을 봤던 걸 보면 제 안에 연극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어려서부터 있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연기를 잘 가르치는 학교를 알아봤다. 그 학교가 중동고였고 기회가 맞아서 입학했다. 연극반에 들어가서 첫 해에 최우수연기상을 받고 연극 생활을 시작했다."

- 작년만 해도 드라마 <상속자들>을 촬영하면서 연극 <단테의 신곡>에 참여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일 년에 한 편 이상은 무대에 오르는 연기자다.
"여러 가지 이유로 무대에 오른다. 좋아서 무대로 돌아오는 게 첫 번째다. 세상이 달라서 돌아오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보통의 세상에서는 시간이면 시간, 노력이면 노력과 같은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연극은 조건이 붙지 않는다.

연극은 몇 달 동안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도 출연료가 드라마 한 편 출연료도 되지 않는다. 연극은 세상과 달리 노력에 비례하는 조건이 붙지 않는 다른 세상이다. 그래서 보통 세상과는 다른 사람들이 무대로 오간다. 또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무대에 있다.

무대에 오르면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산에 오르면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과 낯선 풍경을 볼 수 있다. 그곳 사람들은 도시 사람보다 잘 살지는 못하지만 맑은 눈동자와 미소를 갖는다. 이들을 보면 다른 종류의 힐링이 찾아온다. 낯선 이들을 통해 받는 힐링처럼 무대 안에도 힐링이 있는 게다.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무대에 있다.

금전적인 이익 이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무대다.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가 연극 안에 있다고 믿는다. 저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니 연극을 하는 건 당연하다. 연극에서 가르침을 받고 연극으로 자란 사람이다. 연극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도 연극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다."

- 배우의 고통은 연기를 성숙시키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일까.
"고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배우도 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고통이 아닌 '결핍'이다. <메피스토>를 연습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결핍을 느낀다.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일부러 어려움을 만들거나 결핍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편안을 느끼면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연기는 나올 수 있겠지만 참된 연기를 만들기 쉽지 않다. 결핍이 있어야 좋은 연기적 표현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정동환 상속자들 메피스토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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