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을 맡고 있는 배우 박영규.

KBS 1TV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을 맡고 있는 배우 박영규. ⓒ KBS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배우 박영규를 시트콤 속 유쾌한 이미지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KBS 1TV <정도전>은 강렬한 반전을 안겼다. '정치 9단'의 노련한 고려 권문세족 이인임 역을 맡은 박영규는 매회 명대사를 쏟아내며 시청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10일 경기도 수원시 KBS드라마센터에서 열린 KBS 1TV <정도전>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박영규는 "평생에 다시 맡아볼 수 있을까 하는 역할"이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간 고려 말 조선 초를 다룬 사극에서 정도전이나 정몽주, 이성계, 이방원과 같은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지만 '이인임'은 그렇지 않다. 처음 출연 제의를 받고 박영규 또한 몇 번이고 다시 "이름이 뭐라고?"라고 물어보았을 정도로, 이인임은 그에게나 대중에나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박영규는 "강병택 PD과 만나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시 만날 수 없고, 꿈속에서라도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역할'이라며 '다른 어떤 이해관계 없이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치판에서 10년가량을 생활해 온 정현민 작가의 '내공'이 대본에 드러났던 덕이다.

20회가 지난 지금, 박영규에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이인임이라는 캐릭터에 자신을 잘 녹여 준 정현민 작가에게도, 매번 촬영 때마다 생각을 공유해 주는 강병택 PD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박영규는 "배우가 이런 작가를 만나는 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할 정도로 고마운 일"이라며 "대본을 만나 고마움을 느끼는 건 배우로서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인임을 연기하며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도 많다. '내가 하루 먼저 죽는 것보다, 권력 없이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두렵다'는 이인임의 고백에서 박영규는 배우로서의 자화상을 발견했다. 박영규는 "이건 권력을 가진 정치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박영규라는 배우로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과연 하루 먼저 죽는 것이 더 두려울까, 아니면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하루는 더 사는 것이 두려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생각하는 이인임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절실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기준에 이인임은 악역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을 겨루는 사람일 뿐이다. 박영규는 "선은 악을 만들고, 악을 만든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 둘 다 세상을 유지하는 힘이라 생각한다"며 "이인임이 갖고 있는 보수의 가치, 그리고 정도전이 갖고 있는 진보의 가치 중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정도전> 시청자들의 말처럼, 고려의 정치가인 이인임은 곧 조선 건국 세력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된다. 워낙 임팩트가 큰 역할이었던 만큼, 정도전 역을 맡은 조재현은 간담회가 끝난 후 취재진에게 "배우들이 서로 이인임을 보내려고 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강병택 PD 또한 그의 몰락을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꼽았다.

이를 두고 박영규는 "배우들이 달콤한 역할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갖고 있었던 고통을 어느 순간, 어느 장면에서 내어 보일 줄도 알아야 한다"며 "그런 배우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막판 스퍼트를 앞둔 각오를 다졌다.

한편 <정도전>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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