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흘러간 역사의 한 자락을 끄집어내 현대의 시청자에게 펼쳐 보이는 사극은 한국에서 방송이 제작된 이래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1990년대까지의 사극이 정통 사극으로서 주로 정사를 바탕으로 걸출했던 인물들과 굵직한 사건들을 조명해 왔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다른 장르를 섞은 퓨전 사극이나 허구를 첨가한 팩션 사극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2014년 상반기를 장식할 두 편의 사극, MBC <기황후>와 KBS 1TV <정도전>은 각각 양 갈래 길에 놓인 사극을 대표한다. 시각차가 있는 두 작품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VS. "드라마는 드라마 이상의 가치가 있다"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 포스터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포스터 ⓒ MBC


 KBS 1TV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KBS 1TV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 KBS


먼저 <기황후>는 주인공을 두고 제작진이 역사와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아 방송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타이틀 롤 기황후(하지원 분)는 고려시대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가 원 황제(지창욱 분)의 사랑을 받고, 결국 황후가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

그러나 그가 황후가 된 뒤 오빠 기철을 이용해 고려를 통치하려 들고,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고려를 침략하게 한 사실 또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주인공 충혜왕 또한 고려시대 정사에 해당하는 <고려사절요>에서 아버지의 후처와 내관의 아내 등을 강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논란이 커지자 <기황후> 제작진은 충혜왕을 가상의 인물인 왕유(주진모 분)로 변경했고, "고려 28대 충혜왕이 저지른 악행과 패륜이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만큼 역사왜곡 문제를 피할 수 없어 배역과 관련해 새롭게 극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황후를 두고는 "기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을 따왔지만, 허구의 인물을 섞어서 팩션으로 만들었다"며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 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도전>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제작발표회 하이라이트 영상에 등장시켰다. 또 '정도전을 아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시민이 '모른다'고 답하는 장면이나 고등학교 필수과목에 국사가 제외되면서 심각한 폐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 영상을 함께 보여주며 드라마를 통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직 첫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지만, <정도전>이 이 같은 역할을 할 것임을 다짐한 셈이다.

이와 함께 KBS 측은 공개적으로 "허구가 사실을 왜곡하는 픽션 사극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며 "공영방송의 대하드라마는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로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기황후>를 의식한 발언을 내놓았다.

출연진 역시 '정통 사극'에 출연하는 배우로서의 소명 의식을 강조했다. 타이틀 롤 정도전을 맡은 배우 조재현은 "중국에서 동북공정 시도가 있었음에도 한국에 조용했던 건 역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적 재미가 먼저" VS. "되도록 고증에 충실"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황후 대례식 장면.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황후 대례식 장면. ⓒ MBC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 KBS


세세한 고증에 있어서도 <기황후>는 아쉬운 점을 드러내고 있다. 기황후의 황후 책봉식에서 원 황제 타환과 기황후가 입은 복식은 원나라의 통치세력인 만주족의 것이라기보다는 한족의 것에 가깝다. 그 당시 쓰이지 않은 용어가 남발되거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고려 관료들의 이름이 대부분 해당 시대에 존재한 인물들과는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에선 기황후의 어머니가 철퇴에 맞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지만, 실제로는 오래오래 살아 고려 국왕의 문안인사를 받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나 방송 직전 '원나라의 인물들이 변발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고증 문제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두고 <기황후> 측은 "의상이나 분장에 있어서 100% 사실적으로 가는 사극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며 "드라마인데 굳이 그런 것 때문에 감정선 같은 것들이 흐트러져야 하나 생각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황후>가 원 황제와 기황후, 그리고 충혜왕에서 변경된 왕유라는 인물 간의 삼각관계에 집중하는 드라마인 만큼, 원 황제 등이 변발을 한다면 로맨스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정도전>은 되도록 고증에 충실하되, 어쩔 수 없이 고증이 부족한 부분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겠다는 입장이다. 제작진은 "고증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역사적) 자료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며 "있는 것들은 최대한 그 고증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 드라마들과는 의상이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료를 통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대기를 모두 읽고 드라마에 최대한 반영토록 했다. 북쪽 변방을 떠돌았던 이성계가 함경도 사투리를 쓴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제작비 문제도 있거니와 국내에서 사극을 촬영할 수 있는 세트장이 몇 군데 안 되기 때문. 이래서 비교적 고증에 충실하게 당대의 생활상을 재현한 NHK의 사극들과는 달리, 한국 사극의 경우 시대를 거스른 건축물이나 갑옷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정도전> 측은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상이 가미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의견 분분한 가운데 논란은 끊이지 않을 듯

다른 길을 가는 두 장르의 사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의견은 분분하다. 기본적인 고증이나 사실 관계조차 명확하지 않은 사극을 부정하는 입장도, 드라마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 존재한다. 굳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경구를 들먹이지 않아도, 역사가 100% 완벽한 기록이 아닌 만큼 '새로운 해석'을 할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결국 '장르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는 "두 가지 장르의 사극이 모두 필요하다. 장르적 다양성이나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며 "그 안에서 어떤 작품이 나오는가에 대해서는 시청자가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사극이 해외에도 수출되어 방영되는 현실에, 여전히 드라마를 통해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한동안 이와 같은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정도전 기황후 사극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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