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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박스오피스 흥행 1-10위를 자치한 영화 및 관객수

올해 박스오피스 흥행 1-10위를 자치한 영화 및 관객수 ⓒ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화면 갈무리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013년 박스오피스 1~10위 영화에는 <7번방의 선물> <설국열차> <관상>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숨바꼭질> <더 테러 라이브> <감시자들> 총 8편의 한국 영화가 들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 영화가 대중의 기호와 부합, 흥행이라는 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가 좋다 한들 대중의 선호도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평론가들이 좋아할 작품성 높은 영화로 남거나 흥행에 실패하는 비운의 영화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흥행한 영화 속에는 대중이 목말라하는 것, 대중의 기호와 맞는 것이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올 한 해 흥행한 한국 영화 속에 담긴 '대중의 열망'은 어떤 것일까.

억울한 자의 목소리에 당신은 귀 기울여 주었는가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스틸컷

영화 <더 테러 라이브> 스틸컷 ⓒ (주)씨네2000


9위의 <감시자들>은 CCTV나 도청을 통해 제임스(정우성 분)를 쫓는 '감시반' 경찰들의 활약상을 그렸다. 그런데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명제에 이 영화를 빗대 보면, <감시자들>을 CCTV로 대표되는 '빅 브라더'에 대한 영화로만 이야기하는 데엔 부족함이 있다. 지난해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던 민간인 불법 사찰의 흔적이, <감시자들>에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2위를 차지한 <설국열차>는 8위 <더 테러 라이브> 및 7위 <숨바꼭질>과 여러 모로 닮았다.

먼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건설 노무자의 2세가 벌이는 복수극인 <더 테러 라이브>에서 중요한 건 '건설 노무자의 목소리에 그 어느 누구라도 귀를 기울여 주었는가'다. 부당한 처사를 당했음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던, 소외된 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한을 이어받아 개발지상주의를 획책한 정부에게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한다는 설정은 <설국열차>에서 끝 칸에 탑승한 하층민들의 하소연을 앞 칸 상류층이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다.

특히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에서 중요한 건 하층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기득권자의 교만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극단적인 테러로, <설국열차>에서는 엔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쿠데타로 하층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설국열차 8월 1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 ⓒ (주)모호필름, 오퍼스픽쳐스


그런가 하면 <숨바꼭질>은 한 개인이 무력으로 타인의 가정에 무단으로 침입해 자신의 집으로 만드는 우울한 보금자리 담론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사는 보금자리가 언제든지 불안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불안감을 폭력적인 대안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설국열차>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 역시 객차 안의 부당한 지배층-피지배층의 도식을 폭력으로 타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숨바꼭질>과 <설국열차> 모두, 불공평한 현실에 몸부림을 쳐도 최종적인 승자는 없다는 우울함을 남기기도 한다.

무단 가택 침입자가 집을 빼앗는데 성공하면 집을 빼앗긴 원래의 집 주인은 다시 집을 되찾기 위해 무단 가택 침입자와 싸워야 한다. <설국열차> 속 엔진칸에 도달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가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의 자리를 물려받았다면 열차의 또 다른 누군가는 하층민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이는 '영원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자본주의의 우울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부당한 권력 앞에 촛불 같은 개인

5위 <베를린>과 6위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올 한 해 위세를 떨친 '북한 출신 공작원(간첩)'을 소재로 했다. 현재 상영 중인 <용의자> 역시 비슷한 소재로 흥행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그런데 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 발(發) 인간병기는 권력 다툼 속에서 결국 희생되는 개인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때로는 남한 사람보다 더욱 인간적인 이로 묘사되기도 하고, 동시에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북한 내부의 변화로 인한 체제의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또한 1위 <7번방의 선물>과 3위 <관상>은 거대한 힘 앞에서 개인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7번방의 선물>은 억울한 누명을 쓴 지적장애인이 개인적인 복수심에 물든 부당한 공권력 앞에서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가를 피맺히게 묘사한다. 결정론적 세계관을 보여 주는 <관상>은 앞으로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아는 선각자가 역사를 바꾸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에는 역사를 바꾸지도 못하고 아들마저 최고 권력자에게 잃고 마는 내경(송강호 분)의 비애를 그려냈다.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 (주)화인웍스, (주)CL엔터테인먼트


마땅히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 권력이 잘못 작동해 개인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는 이 같은 영화 속 설정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인 '한'을 건드리면서 동시에 국가 권력이 오작동하지 않게끔 개개인이 얼마만큼 각성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듯 이들 흥행 영화의 주된 코드는 '현실 비판'이었다. 현실에 각을 세웠던 이들 영화들이 대중의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이 작품들이 전세 대란이나 민간인 불법 사찰처럼 현실의 가려운 곳을 은유적으로나마 긁어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세상의 불공평함이나 공권력의 부당함을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승승장구했다는 건 지금 대중이 몸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팍팍한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는 것이다.

7번방의 선물 더 테러 라이브 관상 설국열차 감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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