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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주)위더스필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 <변호인>은 개봉 전부터 여러모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정치적 이념 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영화에 대한 반응은 특정 집단에 의한 '별점 테러'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간의 '기대'로 양분되었다. 거기다 <설국열차> <관상>으로 연속 흥행에 성공한 송강호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 송우석 역을 맡았다고 알려지면서 관객들은 연일 극장으로 모이고 있다.

먼저 밝혀두건대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발자취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 안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입장, 주장 등은 담기지 않았다. 단지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납득하기 힘든 특정 사건에 분개하는 인간 노무현, 시민 노무현, 변호인 노무현이 있을 뿐이다. 19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기에 그 시대의 뒤틀린 권력 세계, 흉흉했던 사회 배경을 다루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일 뿐, 영화는 송우석이라는 인물이 격동의 시대를 통해 얻은 성찰에 집중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언급했던 '상식'이란 단어. 그 단어의 의미를 2013년의 송우석이 되새기고 있다.

가난하게 자란 고졸 출신의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은 대전에서 판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부산으로 돌아와 등기, 세법 전문 변호사가 된다. 남들은 "변호사가 그런 일을 하느냐"면서 비웃음을 흘리지만, 송우석에게 변호사란 직업은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사회적 지위는 중요치 않다. 그래서 그는 나이트클럽 앞에서도 명함 수십 장을 뿌린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가정의 가장과 다르지 않다.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고객 몰이에 성공한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아파트로 이사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부동련 사건(부림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 사건에는 가난했던 고시생 송우석에게 뜨끈한 국밥을 내주었던 국밥집 아주머니(김영애 분)의 아들 박진우(임시완 분)가 연루되어 있다. 주변에서 만류한 사건을 맡은 송우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로 살아가게 된다.

<변호인>은 체감온도가 뜨거운 영화다. 특히 법정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후반부는 송강호의 열연으로 더 뜨겁게 달아오른다. 영화가 발산하는 뜨거운 기운은 소재로 쓰인 부림사건이 부상하며 시작된다. 부림사건이란 1981년 제5공화국 당시, 공안 당국이 부산에서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불법 감금하고 잔혹하게 고문했던 용공조작사건을 말한다. 공안 당국이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웠던 이유는 당시 불온서적으로 규정한 <역사란 무엇인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의 이적 표현물을 학습하고 토론했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부림사건'을 통해 장르를 휴먼 드라마에서 법정 드라마로 본격 전환하고 넉넉한 미소와 유머를 겸비했던 송우석을 올바르지 못한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일갈하는 변호인 송우석으로 변화시킨다. 영화를 가득 메우던 온기와 사람 냄새도 이 지점을 지나면서 비상식에 대한 공분과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열망으로 바뀐다. 공분이 최고조에 달할 때 송우석의 입에서 우리가 내지르고 싶었던 한 마디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영화는 송우석 혹은 송강호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의 변화를 조명한다. <남영동 1985>보다는 <포레스트 검프>에 가깝다. 공안 당국의 서늘하고 섬뜩한 공기보다 사람 냄새, 뜨거운 국밥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더욱 인상 깊은 영화다. 따뜻하다가 울컥하고, 화를 내다가도 끝내 안타까운 것이 <변호인>이 담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다.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주)위더스필름


<변호인>은 전반적으로 훌륭한 구성의 휴먼 드라마지만, 곳곳에 아쉬운 점을 담고 있다. 물론 지금부터 이야기할 세 가지 단점은 감독의 의도에 따라 이 영화의 장점을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에 따른 결과다.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의 전개 속도다. 초반에 영화는 송우석이라는 인물이 세법 전문 변호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빠르게 보여준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그 속도가 점차 느려진다. 이는 아마도 송우석의 감정선을 관객이 같은 속도로 공감했으면 하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감독의 이러한 선택은 관객이 송우석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끔 충분한 시간을 벌어 줬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영화가 다소 지루해졌다.

두 번째 단점은 송우석을 제외한 모든 주변 인물의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송우석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감독의 선택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해 몇몇 인물의 존재감이 상실됐다. 특히 조민기가 분한 강 검사는 송우석의 카리스마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이성민이 연기한 기자 이윤택 역시 직업적 성격 외에 인간적인 매력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중 가장 돋보인 인물이라면 송우석과는 다른 방식으로 '애국'하는 형사 차동영 경감(곽도원 분)이다. 사실 차동영 경감이 빨갱이 타도에 몰두하는 명분은 그의 한 줄짜리 역사가 설명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곽도원의 호연이 차동영 경감의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냈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장면은 차동영이 송우석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진우를 변호하고, 국가에 대해 설파하는 송우석 앞에서 차동영은 흔들림 없이 당당한 태도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세 번째 단점은 사건의 조사 과정을 진우의 고문 장면으로 반복하는 부분이다. 고문 장면은 <남영동 1985>에서 질리게 봤던 것이라 기시감이 드는데다, 매우 직접적이어서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는 송우석이 사건에 대해 더 분노하도록 하고 관객을 동요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결과적으로 따뜻한 느낌의 영화를 무겁고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변호인>은 송강호의 연기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대사 연습을 했다는 송강호는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연기는 장르적으로 스펙트럼이 넓고, 완급조절이 탁월하다는 것이 장점인데, 이 영화에서도 그만의 연기력이 고스란히 발휘됐다. 가난, 학벌 등의 콤플렉스 때문에 대학생의 데모를 객기로 치부하던 송우석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송강호의 달라진 눈빛이 증명한다.

국밥집 아주머니의 손을 마주 잡던 송우석과 사회악의 악수 제의를 재치 있게 뿌리치는 송우석은 송강호의 연기로 차별화되기도 하고 동일시되기도 한다. 힘을 뺄 곳에서는 가볍게, 힘을 줄 곳에서는 폭발시키는 완급 조절은 이 영화의 가치를 드높이는 핵심 요소다. 3분에 달하는 롱테이크 장면에서 그의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와 더불어 김영애, 곽도원, 오달수, 임시완 등이 무난한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의 완성도를 채우고 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26년>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그 사람'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다뤘다. 그리고 1년 후, <변호인>은 <26년> 속 '그 사람'의 시대에서 세상을 직시하며 상식이 통용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 아니 변호사 노무현, 인간 노무현을 그려내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변호인>은 굳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아도, 상업 영화로서 적당한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영화다. 이 영화의 선의는 어느 시대에나 불의에 대항하는 정의가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데 있다. 수상한 시국에 관객들이 <변호인>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변호인 노무현 송강호 임시완 곽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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