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매년 시청자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막장 드라마'는 탄생하기 마련이지만 그 중에서도 2013년은 유난히 막장 드라마 논란이 많았던 해였다. 올초 SBS <야왕>을 시작으로 불붙기 시작한 막장 논란은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오로라 공주><루비반지><왕가네 식구들>로 이어지며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쯤 되면 방송사의 막장 드라마 장사가 도를 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KBS 2TV 일일드라마 <루비반지> 포스터

KBS 2TV 일일드라마 <루비반지> 포스터 ⓒ KBS


시청률 잘 나오는 '막장 드라마'의 유혹

막장 드라마는 고부갈등,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 소재 차용과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전개로 시청률 사냥에만 열을 올리는 드라마를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 2008년 <아내의 유혹>이 황당한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이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이 후, 방송사는 거의 매년 이른바 '막장 논란'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껏 방송된 막장 드라마 대부분은 일각의 거센 혹평과 상관없이 준수한 흥행 성적을 거둬왔다. 방송사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막장 드라마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회사 경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광고 수익을 보장하는데 막장 드라마는 일종의 '필수요소'가 되어 버렸다. 작품성과 시청률이 반비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과감히 작품성을 저버리고 만 것이다.

올해 초, 가장 먼저 막장 드라마 논란을 일으킨 SBS <야왕>은 주다해(수애 분) 캐릭터의 앞뒤 가리지 않는 악랄한 행동과 살인·복수·불륜 등의 막장 소재로 최악의 드라마라는 말까지 들은 작품이지만 시청률은 믿기 힘들 정도로 높았다. <야왕>의 최고 시청률 25.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동일)은 올해 방송된 SBS 드라마 중 가장 높은 기록이다. 어찌됐던 방송사로선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3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한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과 <금 나와라 뚝딱> 또한 마찬가지다. 한동안 주말 드라마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MBC는 고부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백년의 유산>과 각종 음모와 모략이 횡행하는 <금 나와라 뚝딱> 단 두 편으로 동시간대 최강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MBC의 전략은 최근 방송하고 있는 <황금 무지개>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 포스터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 포스터 ⓒ MBC


방송사의 막장 드라마 장사는 명확한 성과를 내야 하는 후반기에 들어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는 최근 막장 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11명의 등장인물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줄줄이 하차한데 이어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상식 이하의 대사까지 등장한 이 드라마는 최근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 분)가 두 명의 남편과 함께 사는 상황에 처하며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은 연신 상승세를 타며 매회 최고시청률을 갈아치우는 상황이다.

KBS 역시 만만치 않다. 기존 시트콤 시간대였던 주중 저녁 8시대에 드라마를 편성한 KBS 2TV는 자매간의 복수와 삼각관계를 주 스토리로 내세우고 있는 일일드라마 <루비반지>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욕망의 화신'으로 분한 이소연의 물불 가리지 않는 악행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이 드라마는 한 자릿수 시청률로 시작해 지금은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로 KBS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또한 마찬가지다. 막장 드라마의 대모격인 문영남 작가의 컴백작인 <왕가네 식구들>은 장서 갈등을 기본으로 불륜, 사기, 납치 등이 난무하는 스토리로 가족극이라는 말이 무색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가네 식구들>의 시청률은 가뿐히 30%대를 넘어 40%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야말로 '막장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가

이렇듯 막장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막장 논란'을 두고 일각에서는 가장 큰 책임자로 시청자를 지목한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시청자 스스로 막장 드라마를 꾸준히 시청함으로써 오히려 막장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유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말 자체야말로 시청자들의 이중 잣대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는 말이란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다. 사실 예수나 석가 같은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막장 드라마처럼 말초 신경을 건드는 이야기에 채널을 고정하기는 쉽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거나 책임을 돌릴 순 없단 이야기다.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포스터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포스터 ⓒ KBS


그렇다면 근본적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에게 막장 논란의 책임을 묻고 '돌'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 그 대상은 의외로 단순 명확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막장 논란의 중심에는 막장 드라마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고, 이를 지속적으로 반복 재생산하고 있는 방송사가 있다. 방송사야말로 막장 논란의 최고 책임자이자 1차 가해자인 것이다. 

공공재인 방송을 다루고 있는 방송사는 최소한의 도덕률과 공익적인 윤리선에서 프로그램을 제작, 편성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무를 시청률과 광고 수익에 눈이 멀어 등한시 하면서 탄생한 것이 막장 드라마다. 그렇다면 막장 논란이야말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방송사에 우선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일종의 공급자라면, 이를 받아 방송으로 송출하는 방송사는 수요자다. 시장원리로 따지면 방송사의 수요가 있기에 막장 드라마 공급이 존재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공급과 수요의 관계 속에서 자극에 익숙해지며 정신이 피폐해지는 스토리를 보게 되는 시청자는 사실상 막장 드라마의 최대 피해자에 불과하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려면 그 무엇보다 방송사의 변화가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오로라 공주>를 집필하고 있는 임성한 작가의 퇴출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임 작가 한 명이 퇴출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막장 드라마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오히려 이를 장려하는 듯 한 방송사의 경영방침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제 2의 임성한, 제 2의 <오로라 공주>는 계속 탄생하고 말 것이다. 시청률 만능주의, 물질주의에 물든 방송사의 근본적 자기반성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 모든 공은 방송사에게로 넘어갔다. 2013년 역병처럼 창궐한 '막장 논란'을 올바르게 수습하는 길은 방송사가 작품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을만한 좋은 작품을 골라내고 제작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언제쯤 시청자들은 <오로라 공주><루비 반지> 같은 막장 드라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막장 오로라 공주 왕가네 식구들 루비반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