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의 여왕>에서 마성의 매력을 지닌 희주 역을 맡은 김민정.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밤의 여왕>에서 마성의 매력을 지닌 희주 역을 맡은 김민정.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영화사 하늘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이제 갓 서른을 넘긴 한 여배우가 연예계에 입문해 대중 앞에 선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인생의 팔할, 그러니까 3분의 2를 배우로 살아온 김민정의 이야기다. 큰 두 눈에 가냘픈 어깨를 바라보며 그녀가 몸을 불살랐던 작품의 면면을 상상해봤다. 진폭이 참 큰 배우였다. 소녀에서 여자로, 혹은 엉뚱한 매력 넘치는 며느리까지 김민정은 스크린과 TV 화면에서 변신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올해 역시 그녀의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변신이라기보다는, 그간 김민정이 보이지 못했던 모습의 총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영화 <밤의 여왕>에서 남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과거(?)가 있는 여자 희주로 분하면서 김민정은 춤과 노래 및 개그, 심지어 거친 욕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첫 로맨틱 코미디였다. 인터뷰 직전까지도 영화에 대한 각종 리뷰를 챙겨보고 있을 정도로 김민정은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막중한 책임감이 있겠다고 물으니 "책임감만 있었다면 부담이 돼 못했겠지만 재미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고 답했다. 밋밋하지 않은 다채로운 캐릭터가 김민정을 반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밤의 여왕>, 어떤 작품보다 실제 내 모습 많이 넣어"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진짜 느낌 가는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머리를 많이 안 쓰려 했죠. 특히 희주가 신혼집을 꾸리고 남편과 아기자기하게 지내는 부분은 일상의 내 모습을 보인 거예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진짜 느낌 가는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머리를 많이 안 쓰려 했죠. 특히 희주가 신혼집을 꾸리고 남편과 아기자기하게 지내는 부분은 일상의 내 모습을 보인 거예요." ⓒ 영화사 하늘


<밤의 여왕>에 들어가기 직전, 김민정은 다소의 오기를 품었던 거 같다. 보통 김민정 하면 떠오르는 대중의 이미지가 사실 로맨틱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그녀 역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김민정을 마냥 감수성 짙은 소녀로 보았고, 누군가는 섹시하면서 다가가기 어려운 배우로 인식하기도 했다.

"저에 대한 평가가 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게 들어왔던 시나리오가 저라는 사람을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로맨틱 코미디물이 잘 안 들어오긴 했죠. 제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굳이 그 장르에 저를 떠올리지 않는 상황이었죠."

밝고 긍정적인 작품에 시선이 끌린다는 걸 느끼던 찰나 <밤의 여왕>을 접했다. 직감적으로 김민정은 꼭 참여해야겠다고 느꼈다. "솔직히 제가 하면 딱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한 마디로 작품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함께 출연한 천정명과도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고, 함께 톤을 조절하기 위해 이리저리 합을 맞추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패션 70s>로 이미 호흡을 맞춰봤다지만, 8년 전 얘기다. 혹시나 자신을 어렵게 느낄까 김민정은 천정명에게 선을 넘어도 좋다며 적극적으로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진짜 '느낌 가는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머리를 많이 안 쓰려 했죠. 특히 희주가 신혼집을 꾸리고 남편과 아기자기하게 지내는 부분은 일상의 내 모습을 보인 거예요. 그 어떤 작품보다 자연의 제 모습을 가장 많이 넣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실제 연애요? 그렇게 알콩달콩 지내는 게 좋아요(웃음)."

믿어주는 게 가장 기본이죠. 언젠가 친구가 만약에 남친이 클럽을 갔는데 사실대로 말해주고 가는 걸 원하는지 묻더라고요. 전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답했어요. 친구가 남자였거든요. 믿어야죠. 여자 친구가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걸 느낀다면 다른 짓은 못하지 않겠어요?(웃음) 혹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더라도 믿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과거에 잡히기보다, 앞으로 내 가능성을 믿고 싶다"

 "그간 제가 해온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지만 앞으로 선택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간 제가 해온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지만 앞으로 선택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 영화사 하늘


다소 가벼울 수 있는 실제 연애 이야기를 나눌 때도 김민정에겐 진지함이 엿보였다. 나이답지 않은 이 진중함이 종종 그녀를 더 성숙하게 보이게도 했고, 깊어보이게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숱한 부침을 겪기 쉬운 연예계라지만 김민정이 자신의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어쩌면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작품을 두드리며 건너갔던 덕분일 수도 있었다.

단순히 두드리는 게 아니다. 김민정은 어쩌면 튼튼한 돌다리보단 다소 불안해 보이는 징검다리를 건너기 일쑤였고, 간혹 아찔해 보이는 줄다리도 있었다. 영화 <버스 정류장>에서 <가문의 영광5>까지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이미지 변신에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대목이었다.

"사실 전 제가 출연했던 작품을 이후에 잘 보진 않아요. 내 예전 모습이 각인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는 거 같아요.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보기보다는 앞으로 펼치겠다는 생각이 강했죠. 물론 아쉬움을 보완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믿고 그 시간에 다른 작품을 더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미지 변신에 대한 압박이요? 결국은 모든 게 제 선택이니까요. 뭔가 특별히 변신을 고민하진 않았는데, 그동안 택한 것을 보면 변신 쪽에 눈이 간 건 맞거든요. 그간 제가 해온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지만 앞으로 선택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제가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는데 보통 앞서서 가거든요. 갈림길이 나오면 꼭 전 굽이굽이 어려운 길을 가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따라오던 제 친구가 '거긴 길이 아니잖아!'라고 몇 번을 말하더라고요.

물론 어려운 길을 갈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언제부턴가 쉬운 길을 갈 줄 아는 것도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큰 배우가 되기 위해선 이 모든 걸 아우를 필요가 있겠구나' 그래서 조금 더 가볍게 선택해도 되지 않을까, 이러고 있어요(웃음)."  

*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밤의 여왕 패션 70S 김민정 천정명 가문의 영광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