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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이 슬슬 짜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극 중 이앙금(김해숙 분)의 자식에 대한 차별이 도를 넘어서 보이는 듯해서다. 첫째 딸 수박(오현경 분)은 무조건 어여쁘고, 둘째 딸 호박(이태란 분)에게는 천대와 꾸짖음 밖에는 없다. 마치 '콩쥐팥쥐'에 나오는 엄마의 모습과도 같다.

이앙금의 편애는 자식들이 얼마나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느냐에 따라 달린 듯했다. 수박은 사업을 하는 남자와 결혼해 으리으리한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면서 때마다 친정 식구들을 챙기고 엄마에게 많은 용돈을 손에 쥐어준다. 반면 호박은 빈둥빈둥 놀고만 있는 남자와 애부터 덜컥 갖게 되어 고생스러운 삶 탓에 제대로 친정을 돌아볼 수가 없다. 이앙금은 언제나 이런 딸들의 형편을 들며 한 자식을 추켜 세워주고, 또 다른 자식을 깔아뭉개기만 한다.

그러다 수박의 집안이 쫄딱 망해버린다. 남편 고민중(조성하 분)의 사업이 부도처리가 되어 회사가 날아가고 공장이 처분되며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에 빨간 딱지가 붙여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앙금의 마음에는 여전히 수박이가 최고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호박이는 그저 수박이를 끊임없이 도와주어야 하는 천덕꾸러기로만 여겨질 뿐이다.

세상에 이런 엄마가 어디 있을까. 잘 사는 것이 예뻐 보여서, 못 사는 것이 속상해서 칭찬과 구박을 했다 치지만, 형편이 바뀌고 나서도 오로지 한쪽 자식만 편애를 한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에 맞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부모의 기본적인 자식사랑을 뒤틀고 매도하는 것 같아 영 기분이 편치가 않다.

<왕가네 식구들>의 대표적 커플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박과 고민중은 매일매일 울고불고 난리다. 사업이 망해서이기도 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도, 신뢰도, 위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부관계의 허망함 때문이 가장 큰 이유다. 금이 쩍쩍 갈라지는 그들의 부부관계는 호감은커녕 바라보고 있는 것마저도 힘들어지는 듯하다.

호박이네도 그리 흐뭇한 커플은 아니다. 아내가 주는 하루 3천 원 용돈으로 한량처럼 살아가는 남편 허세달(오만석 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밉상 캐릭터다. 그들에게서 그나마 느낄 수 있는 훈훈함은 억척같이 살아가는 호박의 생활력이며, 이혼 생각 없이 미우나 고우나 제 남편과 살아보려는 그녀의 무던한 노력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모습 역시 답답함이 먼저 앞서게 된다.

복장 터지는 이야기 속 유일하게 희망이 느껴지는 커플


홈드라마를 표방했지만 극의 흐름은 홈드라마답지 않게 점점 극단적으로 가고 있는 듯하고, 하루하루가 요란하게 우당탕 거리기만 한다. 그런데 여기에 드라마 전체의 분위기를 확 뒤집는 커플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라 시청자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왕가네의 셋째 딸 광박(이윤지 분)이와 그녀의 눈에 들어온 상남자 최상남(한주완 분) 사이에 점점 톡톡 튀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광박은 <왕가네 식구들>에서 가장 밝은 캐릭터다. 그 자체만으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상대 배우가 나타났다. 최상남은 이름 그대로 '상남자' 스타일이며, 남자로서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훈남'이다. 이들의 첫 만남은 무척이나 어설펐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어설픔이 잊힐 정도로 어울리는 모습들을 줄줄이 보여주고 있다.

광박은 일을 빌미로 상남을 만나는 것이 좋다. 상남 역시 광박이 싫지 않은 눈치다. 이들은 아직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마음을 전할 만큼은 아니다.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사귄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며, 호감을 뒤로 숨겨 놓고 조심스럽게 알아가고 있는 상황일 뿐이다. 그들이 그려내는 풋풋함은 이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신선함이다.

이윤지의 연기는 뛰어나다.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호평으로 반전을 일으킨 이력이 있는 그는 <왕가네 식구들>에서도 한주완과 호흡을 맞추며 숙련된 연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순진하면서도 앙큼하고, 어수룩하면서도 발끈하는 매력이 이윤지의 이미지와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진다.

<왕가네 식구들>에서 의외의 복병은 이윤지의 상대역을 맡고 있는 드라마계의 뉴페이스 한주완이다. 그런데 그의 연기가 다른 연기자들보다도 더 눈에 들어온다. 몇 년을 연기한 어중간한 연기자들보다 표정이 살아있다.

신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마스크는 신선하다. 보통 이런 배우들은 연기력이 무르익질 못했기 때문에 표정이나 행동이 다소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주완에게서는 그런 면이 보이질 않는다. 신선한 외모만큼이나 연기력도 신선하고 깔끔하다. 표정 연기를 다양하게 선보일 줄을 알며, 대사 역시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드라마계의 커다란 수확이라고 부를 만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회를 거듭하면서 광박과 상남은 점점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것이다. 왕가네는 셋째 사위를 보게 될 것이며, 또 왕가네와 어울려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그려낼 테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광박-상남 커플이 드라마를 따뜻하게 이끌 희망이다. 징징대고 복장 터지는 그림이 아닌,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훈훈함을 전달하는 그림들로 채울 희망 말이다. 완소커플이 따로 없다. 바로 이들이 홈드라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왕가네 식구들>의 베스트커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