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EBS '일요시네마'에서 영화 <태양은 가득히, 르네클레망 감독 1960년>을 방영했다. 주인공은 우리들의 영원한 미남 '알랭들롱'이다. 작열하는 태양, 바싹 마른 몸에 붙은 탄탄한 근육, 깊고 푸른 눈빛은 영화를 보는 내내 '20대 청춘의 빗나간 욕망과 그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조바심을 자아낸다. 25살의 알랭들롱이 일약 스타가 된 이 영화, 그 내용을 보자.

 로마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톰과 필립, 여기서 둘은 맹인의 지팡이를 빼앗고 여자를 희롱한다.

로마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톰과 필립, 여기서 둘은 맹인의 지팡이를 빼앗고 여자를 희롱한다. ⓒ 르네 클레망


톰(알랭들롱)은 필립과 고교동창이다. 그러나 둘은 학창시절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립이 나와 노는 것을 필립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으셨지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말이야..."

톰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고, 필립이 받는다.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런데 필립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그린다며 돈만 쓰고 흥청거리는 아들을 데려오라며 '톰'에게 5천 불의 거금을 약속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다.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돈이 많은 필립은 가난한 톰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그냥 사역(使役)을 시킬 뿐. 필립은 일탈한 부잣집 외아들 답게 기행을 일삼는다. 로마여행 중 맹인의 흰 지팡이가 멋지다며 2만 리라나 주고 산다. "그럼 난 집에 어떻게 가죠?"라고 맹인이 묻자, 필립은 5천 리라를 더 주며 "택시 타고 가세요"라고 말한다. 얼떨결에 받게 되는 큰 돈에도 맹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맹인에겐 돈보다 지팡이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립은 요트여행 중 톰이 보든 말든 애인인 '마르쥬'와 사랑도 나누고 싸움도 한다. 요트를 운전해라, 짐을 옮겨라, 밧줄을 잡아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필립은 시키고 톰은 군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한다.

"다 좋은데 여기에 원칙이 있어야 했다. 필립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망한 것이다. 노예 시대와 그 이후의 차이는 인권의 유무에 있다. 노예 시대에는 노동력과 인간적인 존엄성조차도 통으로 매매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감정적인 학대까지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대엔 도구가 세 가지였다고 하는데 '호미나 쟁기 같은 도구', '짐승처럼 움직이는 도구', 그리고 '말하면서 움직이는 도구인 노예'가 그것들이다."

필립이 톰의 노동력만 이용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필립은 친구인 아니 동창인 톰에게 진심으로 친구처럼 대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감정을 학대하는 적대적인 행위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톰은 자신을 요트나 운전하게 하고 '마르쥬'와 섹스를 나누는 필립을 골탕먹이기 위해 요트를 심하게 요동친다. 화가 난 필립은 톰을 요트에서 내리게 해 구명보트에 태워 반나절 동안이나 방치한다.

뜨거운 태양에 심하게 화상을 입은 톰은 마음에도 커다란 화상을 입고 만다. 요트에 둘만 남게 된 톰과 필립, 톰은 과도로 필립의 심장을 찌른다. 필립의 여권을 위조하고 프로젝트를 사다가 필립의 사인을 확대 조명한 뒤 맹렬하게 연습해서 필립이 된다. 연습한 서명으로 필립의 요트를 팔고, 돈을 인출하고, 유언장까지 만드는 등 톰의 치밀하고도 재빠른 일 처리가 스릴과 서스펜스를 만든다.

로마에서 만났던 필립의 친구까지 살해하는 톰, 결국 그 친구를 필립이 살해한 것으로 만드는 스토리까지 만드는 신기를 보이고. 필립의 연인 '마르쥬'까지 차지하면서 영화는 사람을 두 명이나 살해한 '어느 가난한 청년의 완전범죄'로 끝나는 듯 하다. 그런데도 톰에게 자꾸 연민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의 필립의 서명을 연습하는 장면, 프로젝터를 사다가 필립의 사인을 확대 조명한 후 맹렬히 연습한다. 필립이 되기 위해

문제의 필립의 서명을 연습하는 장면, 프로젝터를 사다가 필립의 사인을 확대 조명한 후 맹렬히 연습한다. 필립이 되기 위해 ⓒ 르네 클레망


매각하기로 결정된 필립의 요트(요트의 이름은 필립이 자신의 애인 이름을 따 '마르쥬'호로 지었다)의 검사(inspection)가 있던 날, 요트 스크류에 연결된 와이어에 '퉁퉁 불은 시체'가 회색 담요에 말린 채 딸려서 물 위로 올라온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위스키 한잔에 일광욕을 즐기며 필립의 애인이었던 그러나 이젠 자신의 연인인 마르쥬를 기다리던 톰은 아무것도 모른 체 식당 여인이 부르는 소리에 다가간다.

"그 직전 편안하게 비치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톰은 식당 여자의 "뭐 불편한 거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답한다. "저 뜨거운 태양 말고는 다 너무 좋아요." 그렇다. 톰이 밝게 빛나는 태양을 좋아할 수 없다. 뜨거운 이글거리는 태양은 톰의 일거수일투족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었으니까."

톰의 파멸이 안타깝지만, 수많은 '톰'의 동조자들이여 정신 차리자. 분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부자 감세가 이루어지지 않게, 그리고 복지예산이 줄어들지 않게,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정치를 감시하고 공무원을 감시하자! 좀 비약이 심했지만 틀린 소린 아니다.

 필립을 살해하고 필립의 모든 것을 빼앗는 톰은 필립의 애인, 마르쥬를 찾는다

필립을 살해하고 필립의 모든 것을 빼앗는 톰은 필립의 애인, 마르쥬를 찾는다 ⓒ 르네 클레망


프랑스에서 1957년경 청년 영화인 장뤼크 고다르와 그 친구들로부터 시작한 누벨바그(영어로는 뉴웨이브) 운동은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새로운 사조는 영화가 고전적 틀에서 탈피해 작가주의적 경향이 뚜렷해진 데에 기여했는데, 그들의 새로운 시도는 기존 영화인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도 있었다. 이에 당시 47세의 감독이자 필생의 역작<금지된 장난,1952년>의 감독이기도 한 르네 클레망이 이 영화 < Plein Soleil >로 젊은 영화인들에게 한 수 제대로 가르쳐 줬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뇌쇄적인 매력을 무한 발산한 마르쥬역의 '마리 라포네'라는 배우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효리신드롬'을 일으켰던 가수 '이효리'와 너무 닮았다. 톰의 계략으로 필립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마르쥬는 톰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이는데 돈보다는 사람 자체를 보는 그녀의  이런 캐릭터도 이전의 영화 여주인공과는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1999년엔 이 영화가 < The Talented Mr. Ripley, 재주꾼 리플리씨 >라는 제목으로 맷데이먼과 기네스펠트로를 주연으로 해서 리메이크되기도 했었는데, 우리 영화에서도 한번 해볼 만 할 것 같다. 톰역은 원빈, 마르쥬역은 이효리가 좋겠다. 필립역엔 권상우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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