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휠체어, 혈압 체크, 약 복용, 깜빡 깜빡 졸기, 스스로 인슐린 주사 놓기, 손떨림, 운동기구 사용, 독서, 수놓기, 틀니 닦기, 라디오 듣기. 여기에 침대에 누워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거나 요양원 동료를 남편으로 알고 쫓아다니는 치매 노인까지. 요양원 노인들의 일상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재혼한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집을 비워줘야 하는 '꺼'할아버지, 친구 '져우'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요양원 방 한 켠에 억지로 침대를 들여놓고 몸을 의탁한다(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의 요양원은 자리만 있으면 다른 까다로운 조건 없이 언제든지 입소가 가능한 모양이다).

영화 <노인요양원>  포스터

▲ 영화 <노인요양원> 포스터 ⓒ 2013 중국영화제


져우할아버지는 TV의 <슈퍼 체인지> 경연대회에 출전하려고 요양원 친구들을 모아 팀을 만들어 연습에 들어간다. 80~90대는 빼고 70대로만 구성을 하지만 다들 동작은 느리고 허리는 삐걱거리고 순서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한다.

가족 초청 공연은 대성공이었지만, 대회 출전을 위해 먼길 떠나는 것은 가족 대부분이 반대해 좌절된다. 그러는 가운데 꺼할아버지는 져우할아버지가 방광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요양원 탈출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누군가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주위에서 힘을 합치고, 결국 먼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고, 모두에게 감동을 주면서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소원을 이룬 주인공은 행복하게 숨을 거두고…. 물론 이 영화 역시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요양원 노인들의 가족사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촘촘하게 노인의 삶과 가족관계를 짚어나간다. 화해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외아들과의 오랜 불화, 가난 탓에 요양원에 단 한 번도 와보지 못하는 5남매, 7년 넘게 연락이 끊긴 외동딸, 형식적으로 찾아오는 아들.

내몽고의 너른 들판을 달리는 고물 버스는 그 안에 타고 있는 여덟 명의 노인과 닮았다. 누가 봐도 추레한 겉모습에 당장이라도 서버릴 것 같이 덜컹거리고 중간에 타이어가 펑크나고. 그래도 버스가 달리듯 노인들도 몇 년 만에 보는 바깥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친구들과의 이런 일탈이 마냥 즐겁고 행복해 힘든 줄도 모르고 함께 달린다.

영화 <노인요양원>의 한 장면   대회 참가를 위해 요양원을 몰래 빠져나온 노인들...

▲ 영화 <노인요양원>의 한 장면 대회 참가를 위해 요양원을 몰래 빠져나온 노인들... ⓒ 2013 중국영화제


노인들의 뒤를 쫓아온 요양원 원장과 꺼할아버지의 손자가 합류하게 되고, 원하던 무대에서 공연을 마친다. 병세가 위중해진 져우할아버지를 위해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바다를 향해 버스는 달리고, 결국 소원대로 바다의 일출을 보며 져우할아버지는 숨을 거둔다.

영화를 보며 시종일관 노인들의 행동에 '비웃음'이 아닌 '유쾌한 웃음'이 나오고, 늙어 방 한 칸 침대 하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터뜨리는 통곡에 함께 눈물을 흘린다.

막무가내로 요양원에 몸을 의탁한 꺼할아버지를 위해 요양원 동료들은 힘을 모아 침대를 짜고, 이불과 베갯잇에 이름을 수놓아 준다. 어렵고 외로운 처지의 노인이 남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가진 것 많지 않아도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게 바로 늙음의 여유 아닐까.

안전을 걱정하며 공연을 포기하고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요양원장과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제발 한 번만 봐줘!"

늙고 병들어 누군가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그들이 자기 삶의 기본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주 잊는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아플 때 돌봐주고 세상 떠나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일상을 전부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마우면 고마운대로 미안하면 미안한대로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는 걸음 가볍게 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노인들의 공연은 거울 세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삼면경' 모형을 만들어 놓고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여러 노인들이 같은 동작을 보여주는 것인데, 마치 노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같기도 하고 노인,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삼대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노인들 없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없으며, 우리 아이들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노인도, 젊은 사람들도, 노인복지 관련 전문가들도 함께 보면 좋겠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높아진 관심, 거기다가 영화를 만드는 훌륭한 인력도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노인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속상했다.

덧붙이는 글 <노인요양원, 飛越老人院, Full Circle (중국, 2012)> (감독 : 장양 / 출연 : 허환산, 오천명, 이빈 등)
* <2013 중국영화제 (6/16~20)> 상영작
노인요양원 요양원 노인 노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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