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2> 영화 포스터

▲ <무서운 이야기 2> 영화 포스터 ⓒ 수필름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여고괴담>과 <고사>의 몰락

한국 영화사엔 위대한 완성도를 지닌 영화가 많다. 완성도와 별개로 영화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들, 쉽게 말하면 '흥행작'이라 일컬어지는 영화들도 공존했다. 산업적인 파급력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질 영화는 단연코 <쉬리>(1998)다. 한국 영화계는 <쉬리> 이전과 이후로 구별할 정도로 산업과 사회에 끼친 <쉬리>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렇다면 한국 공포 영화에 중요한 영화는 무엇일까? 한을 품어 잠들 수 없는 여인상을 다룬 <월하의 공동묘지>(1967)와 <여곡성>(1986) 같은 고전적인 스타일, 이런 여인상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꾼 <깊은 밤 갑자기>(1981) 등의 영화가 떠오르지만, 이들 영화를 극복하며 '학원'과 '10대 소녀'로 무게 중심을 이동했던 <여고괴담>(1998)을 먼저 기억하고 싶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1편의 대성공 이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메멘토 모리)(1999) <여고괴담 3-여우계단>(2003) <여고괴담 4-목소리>(2005)등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감독과 배우의 산실이자, 한국 공포 영화의 중심축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여고괴담 5-동반자살>(2009)은 어처구니없는 완성도로 시리즈를 박살 냈다. <여고괴담>의 빈자리를 <고사:피의 중간고사>(2008)가 한때 대체했으나, 자신도 <고사 두 번째 이야기:교생실습>(2010)으로 '고사'하고 말았다.

<여고괴담>과 <고사>가 굴곡의 역사를 쓰는 동안 다른 공포 영화들의 명암도 함께 했다. <요가학원>(2009) <폐가>(2010) <기생령>(2011) <수목장>(2012) 같은 함량 미달의 공포 영화들이 매년 나타나 쓰라린 아픔을 남겼지만, 반대로 <불신지옥>(2009) <귀>(2010) <환상극장>(2011) <무서운 이야기>(2012) 등은 극장가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서운 이야기 2> 영화 스틸

▲ <무서운 이야기 2> 영화 스틸 ⓒ 수필름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무서운 이야기>의 성과가 낳은 <무서운 이야기 2>

<무서운 이야기> 1편은 야심이 컸던 프로젝트다. 4개의 에피소드와 그들을 이어지는 에피소드를 합쳐 총 5편으로 구성되었을 정도로 그 부피부터 크다.

1편에서의 <해와 달>과 <콩쥐, 팥쥐>는 고전 동화에서 모티브를 가져다가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 홀로 집을 지키며 가지는 공포감, 성형과 뱀파이어 코드 등으로 각기 재해석을 시도했다. <공포 비행기>는 도망갈 곳이 없는 공간과 연쇄살인마라는 할리우드의 장르적인 관습을 충실히 따랐다.

<무서운 이야기> 1편에서 특히 관심을 끈 에피소드는 김곡, 김선 형제가 연출한 <앰뷸런스>. 좀비를 소재로 다루었지만, 이것은 명백히 이명박 정권과 광우병을 연상케 하는 전개다. 정치, 사회적인 현안과 좀비를 과감하게 연결했던 김곡, 김선 형제의 시도는 한국 공포 영화의 성취였다.

<무서운 이야기 2>는 이어주는 에피소드까지 모두 4개로 1편보다 체중을 감량했다. 다른 이야기들을 여닫는 에피소드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민규동 감독이 맡았고,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감독, <이웃사람>의 김휘 감독, <기담>의 정범식 감독 등이 <무서운 이야기 2>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담당했다.

<무서운 이야기 2> 영화 스틸

▲ <무서운 이야기 2> 영화 스틸 ⓒ 수필름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무서운 이야기 2> 더욱 진일보한 내용 담았네

김성호 감독의 <절벽>은 웹툰 <절벽귀>를 원작으로 한다. 아찔한 절벽에 조난당한 동욱(성준 분)과 성균(이수혁 분). 남겨진 식량이라곤 초코바 하나뿐인 극한의 상황에 몰린 두 남자의 상황과 절벽이 조성하는 긴장감은 꽤 근사하다. 그러나 이런 개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다른 공포 영화에서 익숙히 보았던 깜짝 효과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김휘 감독의 <사고>는 임용고시에 탈락한 울적한 기분을 잊고자 여행을 떠난 세 친구, 지은(백진희 분), 미라(김슬기 분), 선주(정인선 분)가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가장 평범하며, 그다지 무섭지는 않다.

정범식 감독의 <탈출>은 교생 부임 첫날에 학교에서 큰 망신을 당한 병신(고경표 분)이 흑마술에 사로잡힌 여고생 탄희(김지원 분)이 알려준 다른 세상에 가는 방법을 장난스레 따라 했다가 진짜로 가게 되는 내용이다. 감독 스스로 '개병맛 코믹호러판타지'를 언급했을 정도로 <탈출>은 기상천외하다. 정범식 감독의 기존 영화들과 아주 다른 색채로, 마치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데드 2>를 흠모한 연애편지란 느낌마저 든다.

<무서운 이야기>의 브릿지 에피소드가 단순히 '천일야화'를 떠올리게 하는 정도였다면, <무서운 이야기 2>에서 브릿지 에피소드인 <444>는 에피소드 간의 징검다리 역할은 물론, 에피소드에 대한 주석으로 작용한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민규동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훨씬 진일보한 인상이다.

<절벽> <사고> <탈출>의 공포는 모두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내포한다. <절벽>은 주식 등의 소재를 건드리며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경쟁 사회의 심리를 은유하고, <사고>는 임용고시에 떨어진 자들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하게 되는 계급적인 운명을 반추한다.

<탈출>의 주인공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와 비슷한, 무력한 현실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는 욕망을 표현한다. 이들 이야기를 묶어준 <444>는 보험 회사를 배경으로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의 시각이 아닌, 자본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고 비판한다.

<무서운 이야기 2> 영화 스틸

▲ <무서운 이야기 2> 영화 스틸 ⓒ 수필름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옴니버스 공포 영화의 세계적인 유행과 <무서운 이야기>

근래 외국에선 옴니버스로 구성된 흥미로운 공포 영화들이 다수 선보이고 있다. TV 시리즈로 등장한 <마스터즈 오브 호러>는 인기리에 시즌 2까지 제작되었으며, 태국에서 제작된 옴니버스 공포 영화인<포비아> 시리즈 중 2편은 <사색공포 2>라는 제목으로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6명의 신예 감독들로 무장한 <V/H/S : 죽음을 부르는 비디오>는 부천 영화제를 거쳐 국내에 수입되기도 했다. 전 세계의 공포 영화감독 26명이 뭉친 '그들 각자의 공포 영화관'인 <ABCs 오브 데스>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옴니버스의 시도는 다양하다.

<여고괴담>과 <고사>가 사라진 지금, <무서운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전주 영화제에서 제작한 <환상극장>이나 케이블 TV가 제작한 <코마>처럼 옴니버스로 구성된 공포 영화가 간혹 시도되었으나, 연속적으로 이어지진 못하는 현실이 아닌가. 재능 있는 감독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이자,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자리인 <무서운 이야기>가 앞으로 계속 나오길 희망한다.

무서운 이야기 민규동 김성호 김휘 정범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