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끝나지 않은 제주 4.3

▲ 지슬 끝나지 않은 제주 4.3 ⓒ 진진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마치 매캐한 냄새가 코로 들어오는 듯한, 기침과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무거운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했다.

1948년 미군정은 제주 산간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즉 해안선 5km 밖에 거주하는 주민은 모두 폭도로 간주하고 남김 없이 사살하라는 초토화 작전을 지시한다. 제주에 상륙한 군인들은 친일 앞잡이었다가 미군정에 빌붙은 토착민을 앞세워 주민 몰살 작전을 시작한다.

노근리 사건에서 처럼 잠시 피난을 가기 위해 빈 몸으로 또 만삭의 아내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동굴을 찾아 나선 한마을 주민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장터 구경이나 동네 나들이에 나선 것처럼 돼지 먹이 걱정, 노총각 장가 갈 걱정, 등 소소한 일상사를 걱정했고,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며 순덕네가 쪄서 이고 온 지슬(감자의 제주도 방언)을 나눠 먹는다.

보따리를 이고 밤길을 걷느라 딸 순덕을 챙기지 못한 순덕네가 딸 걱정을 하자 순덕을 짝사랑하는 만철이 순덕을 찾아 데려오겠노라고 자청한다. 달리기에 자신 있는 상표는 만철과 함께 길을 나선다. 동네에 채 이르기도 전에 군인들에게 한 여성이 잡힌 것을 보고 만철과 상표는 그들을 몰래 따라간다.

끌려 간 여성은 만철이 짝사랑하던 순덕이었고, 어린 소녀인 순덕은 무참하게 윤간을 당한다. 순덕이 총을 쏘며 저항을 하자, 군인들은 소녀를 무참하게 학살을 하고 만철은 자신의 짝사랑 순덕이 여물지 않은 젖가슴을 드러낸 채 총에 맞아 죽어 있는 것을 보고야 만다.

잠시 피난길에 나섰다 돌아가려고, 걸음이 불편한 어머니를 집에 남겨 놓은 채 만삭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동굴에 숨었던 무동은 군인들이 동네까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남은 어머니가 걱정되어 몰래 동네에 들어온다.

무동은 불에 탄 자신의 집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발견한다. 오열하던 무동은 어머니가 가져가라고 내밀었던 감자가 불에 구워진 채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감자를 싸가지고 동굴로 돌아와 동굴에 함께 숨은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군인들은 민간인을 처참하게 학살하고 돼지를 잡아먹고, 잡힌 사람마다 살육하는 야만의 초토화 작업을 이어간다. 추격을 따돌리려고 나섰던 상표는 잡혀갔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동굴 근처까지 온다. 상표가 동굴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을 알고 만철이 총을 쏘아 상표가 죽지만 군인들은 상표가 말한 것을 토대로 동굴을 찾아 내고, 동굴 속에 숨은 사람들은 마른 고추와 솔가지 등으로 불을 피워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며 저항을 한다.

살아남은 몇 명의 사람들은 한라산 중턱으로 이동하지만 만삭이었던 무동의 아내는 좁은 동굴을 빠져 나오지 못해 동굴 속에 혼자 남아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자지러지는듯한 울음 소리를 듣자, 강요배의 4·3 이야기 <동백꽃 지다> 속 '빈젖'이라는 작품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했다.

당시 피난을 떠났던 마을 주민은 120명 정도였고, 그 중 한라산 중턱으로 피했던 80여 명도 끝내 잡혀와 대부분 총살당해 정방폭포로 내던져졌다고 한다. 어머니의 죽음이 따끈하게 구워놓은 지슬을 나눠먹은 이들마저 대부분 생명을 보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암울했던 시대를 암시하듯 눈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나 연기가 화면을 가득 메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108분간 화면을 보는 내내 내 가슴 속에서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지슬>이 제주 4·3의 이야기는 <작은 연못>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서도, <화려한 외출>의 광주민주화운동에서도 <두 개의 문>이 보여준 용산참사에서도 <당신과 나의 전쟁>이 보여준 쌍용차 노동자들의 옥쇄파업에서도 계속된다. 한결같이 당하는 민중들은 자신들이 왜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가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과 경찰과 용역에게 죽어간다.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을 일제에게 팔고 권력의 주구 노릇을 했던 이들이 해방 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움켜쥐고 혹은 권력의 주구로 충성을 다하고 있기에 제주 4·3 과 노근리 학살과 광주 학살과 같은 끔직한 범죄가 계속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거대 자본을 앞장세운 독점 자본주의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적인 약소국을 짓밟는 일을 서슴지 않는 제국주의의 주구로 또 다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제주 4·3이 전한 뜨거운 감자 이야기는 오늘날 대한문 앞에서 혜화동 종탑 위에서 평택 철탑 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연대의 밥차가 지슬의 자리를 대신하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 셈이다. 지금은 지슬을 대신한 연대의 밥차나 사파기금으로 서로의 온기를 더하고 있지만 투쟁하는 이들은 여전히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마녀 사냥을 당하고 있다.

이 끝나지 않은 뜨거운 감자 이야기가 눈물과 가슴에 얹힌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이 아닌, 따뜻한 인간승리의 휴먼드라마가 되려면 학살자들이 진정한 용서를 구하고 철저한 과거 청산, 국가나 권력이 자행하는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고안되어야 한다.

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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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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