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대단하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대중의 관심도 대단히 높다. 국민 MC 유재석을 비롯해 여섯 멤버는 이미 리얼 버라이어티의 가장 큰 수혜자로 예능계의 심벌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홀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질타와 비판, 라이벌의 견제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며 성장해 온 프로그램이다.

이런 측면에서 2월 2일 14.8%(AGB 닐슨, 전국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14.6%의 <무한도전>을 누르고 토요 예능의 왕좌를 차지한 <스타킹>은 <무한도전>에게 가장 좋은, 가장 뛰어난 라이벌이다.

 2007년 방송 이래 300회 동안 시청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스타킹>

2007년 방송 이래 300회 동안 시청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스타킹> ⓒ SBS


중장년층을 포섭한 <스타킹>의 저력

사실 <스타킹>이 현재처럼 <무한도전>과 맞붙는 형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스타킹> 제작진의 선택이라기보다는 SBS의 '고육책'이었다. 당시 <무한도전>은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전성기 시절을 구가하고 있었고 <스타킹>은 <라인업>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시간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초반 <스타킹>이 6시 시간대로 자리를 옮길 때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무한도전> 열풍을 막아내기엔 <스타킹>의 포맷 자체가 그리 신선한 것이 아니었고, 대진운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전문가들은 백이면 백 <스타킹>이 <라인업>의 전철을 밟아 폐지 수순에 다다를 것이라는 평가를 하곤 했다.

그러나 <무한도전>과 <스타킹>의 맞대결은 뜻밖에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30%대 시청률을 기록하던 <무한도전>이 서서히 하향세를 걸으며 시청률 16%대에 하향 안착한 반면,  4%대 시청률로 시작한 <스타킹>은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하며 13~15%대 시청률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청률 5%라는 치욕스러운 점수를 얻으며 퇴장한 <라인업>의 '땜빵 프로그램'치고는 <스타킹>의 선전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스타킹>의 선전은 <무한도전>이 포섭하지 못했던 중장년 시청자층을 온전히 포용한 데 있었다. <무한도전>이 감각적인 영상과 편집, 색다른 주제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사이 <스타킹>은 상당히 '아날로그적' 인 방식으로 중장년층을 포섭했다. 실제로 <스타킹>의 포맷은 10여 년 전 <기인열전>이나 <진실게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소 특이한 사람들이 나와 자신들의 장기를 펼치고 자신들의 끼를 드러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 거리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 익숙해서 식상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스타킹>은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노골적으로 식상한 포맷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쪽을 선택했다. 21세기 방송에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방송으로 재창조했다는데 높은 점수를 받을만 하다.

 강호동 복귀 이 후, <스타킹>은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강호동 복귀 이 후, <스타킹>은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 SBS


<스타킹>, <무한도전>의 훌륭한 라이벌

이렇듯 <스타킹>의 낡은 포맷은 치명적인 약점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스타킹>은 최첨단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한 중장년층 시청자를 자신들의 베이스 팬층으로 긁어모았다. 이른바 틈새 공략이 주효하게 작용한 것이다. 웬만하면 채널을 돌리지 않는 중장년층이 프로그램에 충성을 바친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인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금 <스타킹>은 여러모로 <무한도전>의 '자극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스타킹>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인 현 예능 트렌드에서 스튜디오 녹화를 고수하고, 일반인 시청자들로 승부를 보는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젊고 새로운 것 대신 자주 봐서 익숙한 것을 끄집어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웃음과 희망을 발견하는 것 또한 <스타킹>이 보여주는 재주 중 하나다.

<무한도전>과 <스타킹>은 포맷부터 시청자층까지 극단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충분히 만족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의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무한도전>이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위상과 열기를 <스타킹>이 따라잡기에는 다소 무리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스타킹>이 <무한도전>을 충실히 견제하고 그들을 자극하는 맞수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스타킹>은 2011년 강호동이 잠정 은퇴를 결정하면서 시청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등 방송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강호동의 복귀와 함께 제 페이스를 되찾기 시작하면서 SBS 간판 예능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스타킹>이 300회 동안 쌓아온 나름의 저력인 셈이다.

이제는 어느 쪽이 낫다, 어느 쪽이 못하다는 평가는 별 의미가 없다. <무한도전>뿐 아니라 <스타킹>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갖추고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선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살려 대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선의의 라이벌 아닐까.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이 두 프로그램의 대결은 그래서 흥미롭고 재미있다.

스타킹 무한도전 강호동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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