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표종성(하정우)과 정진수(한석규)

<베를린>의 표종성(하정우)과 정진수(한석규) ⓒ CJ엔터테인먼트


'사나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한창 혈기가 왕성한 남자'다. 하지만 이 보다는 외강내유. 즉, 거칠어 보이지만 속정이 깊은 남자.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남자라는 정서적 의미가 더 와 닿는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 보다 사나이라는 말을 조금은 특별하게 쓸 수 있는 이유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사나이 픽쳐스' 한재덕 피디는 훨씬 살이 빠져 있었다.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해 영화 <범죄와의 전쟁> 이후 그는 사나이 픽쳐스를 설립해 제작 피디로서의 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었다. 그 포부에 대한 결과가 바로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였다.

두 영화 모두 올 상반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계의 기대가 크다. 액션블록버스터? 그리고 범죄 드라마?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묘사를 위해 제대로 판을 벌였다는 게 중요했다.

 한재덕 피디

한재덕 피디 ⓒ 사나이 픽쳐스


"좋은 작품엔 결국 좋은 배우가 모이기 마련"

류승완 감독은 영화 <베를린>에 대한 투자가 명확해졌을 때 '108 번뇌'를 끝낼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영화 제작에 들어간 비용이 108억 원이란 의미면서 동시에 투자를 받기가 그만큼 어려웠음을 담는 표현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한재덕 피디를 비롯해 자신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스태프들에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베를린>과 <신세계>라는 결과물을 내놓기 이전과 이후의 한재덕 피디는 한결같았다.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 직후 진행하려던 두 작품이 모두 한창 투자 부문에서 대화가 오가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때도 작품에 대한 믿음은 분명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흥행에 대한 확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고, 작품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돈이 아닌 신뢰로 인정받겠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결국 철저히 기획하고 확실히 만들어내는 수밖엔 없어요." 

제작사 외유내강과 함께 하며 실제적으로 힘을 보탠 <베를린>이나 사나이 픽쳐스의 창립 작품인 <신세계>는 모두 분명한 방향성과 철저한 기획력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같다. 오는 31일 개봉할 <베를린>은 꼭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와 장면이 있었기에 독일의 베를린이 아니면 의미가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장기간 베를린 촬영이 불가했고,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위해 한 피디와 스태프들이 찾아낸 곳이 바로 라트비아였다.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에 대한 투자가 확실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한석규·류승범·하정우·전지현·최민식·이정재·황정민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두 출연 의사를 보이고 기다렸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좋은 각본으로 짜인 작품엔 좋은 배우가 붙게 돼있다"던 그의 말은 사실로 입증된 셈이었다. <베를린>과 <신세계> 이후 이 배우들이 다시 뭉칠 날이 올 수 있을까.

 영화 <신세계> 속 배우 황정민

영화 <신세계> 속 배우 황정민 ⓒ (주)사나이픽처스


"영화? 촬영보다 중요한건 사전 기획과 후반작업!"

소위 '영화로 장난질을 한다'는 말이 있다. 한창 영화 산업 호황기에 제작사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고 가도 다 영화로 만들던 관행이 제작사들의 대거 몰락에 일조했다는 사실은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판에서 한재덕 피디는 진심으로 작품을 대하고 철저하게 진행한다는 점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신세계>가 창립 작품이니까. 앞으로 사무실에 저희 영화의 포스터가 하나씩 붙게 될 거 아니에요? 그걸 하나하나 돌아보았을 때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작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바람으로 현재의 영화를 기획하고 진행하죠. 공명심? 물론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장난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한재덕 피디는 그렇게 서서히 자신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중이다. 그 목표란 영화의 흥행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다 정직해지는 것이다. "피디는 현장에서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존재"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도, 한재덕 피디는 제작 피디로 인정받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결국 영화의 처음은 프리프로덕션(사전 기획)이고 끝은 후반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프리 때 영화를 찍고 포스트(후반 작업) 때 영화를 만드는 거죠. 이 두 단계에서 가장 공을 들입니다."

<베를린>과 <신세계> 두 영화 모두 개봉을 앞두고 있다. 모든 과정이 끝났고 관객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시기다. 동시에 한재덕 피디는 당당 올 봄에 들어갈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올 한 해도 정신없이 보낼 작정인 셈이다. 영화판에서 진짜 '사나이' 같은 존재가 되기를 기대해 봐도 좋겠다. 지금껏 해왔던 작업방식과 지켜왔던 가치는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니 말이다.

베를린 신세계 한재덕 류승완 박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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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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