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의 '기막힌 조합'이 또 한 번 통했다.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년특집이었다.
2일 방영된 <라스>는 계사년 새해를 맞아 홍석천, 염경환, 숀리, 윤성호를 게스트로 섭외, 민머리 특집을 마련했다. 한명 한명 놓고 보면 그다지 토크쇼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연예인들이었지만 이들 4명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민머리 덕분에 이날 방송은 시종일관 유쾌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새해 일출을 못 본 시청자를 위해 4명의 민머리 연예인을 게스트로 섭외했다고 밝힌 <라스>는 겉으로는 신년 특집을 내세웠지만, 토크의 주제만 놓고 보자면 '탈모특집'이 더 어울릴 정도로 이날 이야기는 게스트들의 '머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알고 보니 새해 초에 특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섭외를 마치고 기다렸다고 한다. (2012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황선영 작가의 재치와 노련미가 돋보이는 게스트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를 맞아 '민머리 특집'을 선보인 2일 방영 <라디오스타>.

새해를 맞아 '민머리 특집'을 선보인 2일 방영 <라디오스타>. ⓒ mbc


우리가 몰랐던 민머리의 세계?

공통점이라고는 민머리밖에 찾아볼 수 없는 이날 게스트들은 시작부터 아웅다웅하며 팀킬을 이어갔다. 시청자가 볼 때는 똑같이 머리가 없는데 서로 더 머리숱이 많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민머리계의 1인자는 구준엽이라고 합의(?)를 보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을 패러디하며 서로 더 자기가 잘생겼다고 주장하는 모습에서는 이들이 '탈모'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매우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의 민머리와 과거 탈모 경험을 유머코드로 활용하며 때로는 자학적인 개그를 펼치기도 했지만, 토크 중간에 탈모관리법을 상세히 이야기하며 탈모를 단순히 희화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침방송 못지않은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

<라스> 특유의 삼천포 토크도 빛을 발했다. MC 윤종신이 던진 탈모와 정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게스트는 열띤 토론을 이어갔고, '대머리는 정력이 좋다'는 속설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흘렀다. 특히 숀리는 "난10대 수준"이라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이에 질세라 엄경환은 "내 별명은 고등학생"이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여기에 윤종신이 "고등학생이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씀인가요?"라고 말하며 주워 먹기에 성공, 느닷없는 19금 토크의 아슬아슬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시청자가 몰랐던 민머리의 세계를 낱낱히 밝힌 <라디오스타> 게스트.

시청자가 몰랐던 민머리의 세계를 낱낱히 밝힌 <라디오스타> 게스트. ⓒ mbc


소수에 대한 차별을 말하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날 MC들은 4명의 민머리 게스트를 공격하고, 탈모를 소재로 유머를 이어나가면서도 탈모로 고생하는 분들을 희화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님을 여러 차례 밝혔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민머리를 하나의 개성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민머리는 소수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당하는 차별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라스>는 소수자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를 되짚으며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4명의 게스트만 있는 곳에 김국진이 오면 바로 김국진이 소수자가 된다고 밝힌 것이다. 풍성한 머리숱을 가진 김국진도 상황에 따라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개념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이므로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또 차 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더해진 김국진의 멘트를 화룡점정을 자랑했다.

"차별받기는 싫어하면서, 차별하기는 좋아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김국진의 이 멘트는 지난 2000년 커밍아웃을 통해 연예계 왕따가 되었던 홍석천의 경험담과 더해지면서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자아냈다. 홍석천은 이날 "커밍아웃한 후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나갔다. 방송을 3년 쉬면서 빈털터리가 됐고, 아무것도 없이 지냈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밝혔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대중의 비난 역시 소수라는 것을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분명 지금처럼 선을 그어놓고 바라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홍석천의 모습과 이날 <라스>가 전한 메시지는 소수에 대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낸다면 역시 <라스>가 아니다. 홍석천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유머코드로 활용하여 시종일관 규현에게 장난을 쳤고, 또 자신은 후각을 잃었다면 4MC의 냄새를 맡고 싶다는 발언 등으로 현장을 뒤집었다. <라스>이기에 가능했던, 또 <라스>이기에 거부감이 없었던 유머였던 셈이다.

신년 특집을 빙자한 민머리 특집. 비록 머리숱은 없을지언정, 예능감만은 풍성했던 4명의 게스트 덕에 정초부터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머리숱 없다고 놀리면 아니아니 아니되어~! 이래뵈도 머리 말고 다른 곳은 수북하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개인블로그(이카루스의 리뷰토이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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