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후 기자의 동시상영관]은 현재 개봉 중이거나 계봉 예정인 영화 한 편을 선정하고, 거기에 함께 연결해서 보면 좋을 만한 다른 영화 한 편을 묶어 소개합니다. 단순히 개봉 영화에 관한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다른 영화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저지 드레드>와 <분노의 13번가> 영화 포스터

▲ <저지 드레드>와 <분노의 13번가> 영화 포스터 ⓒ (주)조이앤컨텐츠그룹


리부트 된 <저지 드레드>

요즘 할리우드는 '슈퍼 히어로 장르의 부흥'과 '리부트의 열풍'이 화두다. 이러한 경향과 조건이 딱 맞아떨어진 탓인지 영화의 역사에서 잠자던 <저지 드레드>는 리부트란 이름 아래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피트 트레비스 감독의 <저지 드레드>는 1995년 작품 <저지 드레드>에서 헬멧 속에 얼굴을 감춘 채로 저음의 목소리를 내던 심판자 '드레드'란 설정만 빌려 왔다. 유전자 조작 프로젝트는 사라졌고, 빈자리는 3D를 강조한 화려한 액션이 대치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만들어진 <저지 드레드>의 설정에서 상당한 것들은 신선하지 않다. 갇힌 건물에서 범죄 조직과 대결을 벌이는 구성은 <레이드: 첫 번째 습격>의 설정과 다르지 않다. 마약 슬로모를 흡입하면 1초의 시간이 100초 같이 느껴진다는 설정을 초고속 카메라로 구현한 장면은 여타 영화에서 이미 보았던 초고속 촬영 장면들과 다를 바 없다.

<저지 드레드> 영화 스틸

▲ <저지 드레드> 영화 스틸 ⓒ (주)조이앤컨텐츠그룹


<저지 드레드>의 폐쇄 공간과 정의

<저지 드레드>는 지구가 방사능으로 폐허가 된 후, 8억 명의 사람들이 메가시티에 모여 산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 총기와 갱단이 지배하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위해 싸우는 존재가 '정의의 전당'에 소속된 '저지'들이다. 그들은 법관이자, 배심원이고, 사형 집행자다.

대부분 사람은 살인에 무관심하고, 정의에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저지들조차 범죄 조직과 은밀한 거래를 하는 상황에서 드레드(칼 어반 분)와 동료 앤더슨(올리비아 썰비 분)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수호자들이다. 저지들조차 두려워하던 범죄 조직의 심장부인 피치트리스 건물에 법을 집행하러 가는 드레드는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정의, 그 자체다.

범죄 조직의 대장 마마(레나 하디 분)가 드레드와 앤더슨에게 원했던 것은 목숨이 아니었다. 마마는 드레드와 앤더슨이 체포한 조직원을 넘기길 원했다. 드레드와 앤더슨은 조직원을 넘기면 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마마의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피치트리스에 갇힌다. 그럼에도 타협하지 않는 드레드와 앤더슨의 모습은 정의가 절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폐쇄된 공간에 갇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렸지만, 결코 마마의 제안에 응하지 않는 드레드와 앤더슨은 존 카펜터 감독의 1976년 작품 <분노의 13번가>의 인물과 설정을 떠올리게 한다.

<분노의 13번가> 영화 스틸

▲ <분노의 13번가> 영화 스틸 ⓒ 존 카펜터


<분노의 13번가>의 폐쇄 공간과 정의

데뷔작 <다크 스타>의 성공에 힘입어 운신의 폭이 넓어졌던 존 카펜터에게 <분노의 13번가>는 다시금 재능을 발휘할 좋은 기회였다. 제한된 예산은 그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도리어 하워드 훅스 감독의 1959년 작품 <리오 브라보>와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 작품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설정을 빌려다 자신만의 색깔이 강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전 예정의 경찰서에 우연히 모이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분노의 13번가>. 다음 날 아침까지 관리하면 되는 경찰서에 갑자기 환자가 발생한 죄인 호송차가 온다. 그리고 딸을 죽인 범죄 조직에 복수를 가했던 남자도 범죄 조직의 추적을 피해 그곳으로 오게 된다. 범죄 조직은 경찰서의 전기와 전화를 끊어 그곳을 외부와 차단한다. 경찰서는 고립된 공간이 된다.

범죄 조직은 경찰서로 도망간 자를 내어주길 원하지만, 경찰서에 있는 자들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경찰서에 온 남자가 어떤 이유로 범죄 조직에 쫓기는지조차 모르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고 지켜준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정의다.

<저지 드레드> 영화 스틸

▲ <저지 드레드> 영화 스틸 ⓒ (주)조이앤컨텐츠그룹


<분노의 13번가>와 <저지 드레드>에서 보인 통합의 의미

<분노의 13번가>에서 경찰서를 지키는 세력은 원래 경찰서에 근무하던 직원들과 경관, 그리고 호송되고 있던 죄수들까지 포함한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범죄 조직에 맞서 경찰서를 지킨다는 설정은 액면 그대로 보면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죄수까지 함께 맞선다는 설정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경찰과 죄수,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라는 협력이 쉽지 않은 계층을 등장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상황을 적극 반영한다. 외부와 맞서 싸워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구성원은 모두 뭉친다. <분노의 13번가>가 만들어진 시기가 1970년대 후반임을 고려한다면 영화에 냉전의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음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구성원 전체가 나서서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공동체의 결집으로 읽힐 대목이다.

반면에 <저지 드레드>는 SF 장르에 걸맞게 종의 통합을 보여준다. 드레드는 과거부터 생존했던 기존의 인류이지만, 동료 앤더슨은 초능력을 가진 새로운 돌연변이 인류다. 서로 다른 종의 두 사람이 함께 도와가면서 마마의 조직에 맞서 싸워간다는 점은 <엑스맨>시리즈가 꾸준히 다루었던 인간과 돌연변이의 공존과 비슷하다.

시대적인 설정도, 장르도 다른 <분노의 13번가>와 <저지 드레드>. 그러나 폐쇄 공간의 위기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정의와 그 과정에서 통합되는 공동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한 가지 더, <저지 드레드>의 여주인공 이름은 앤더슨이다. 그런데 <분노의 13번가>의 경찰서가 있는 거리 이름도 앤더슨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오마주일까?

저지 드레드 피트 트레비스 분노의 13번가 존 카펜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