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좀 젊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청년은 아닌 '로저'는, 부유한 집에서 나고 자라 외국 유학을 다녀 왔으며 지금은 유명한 영화제작자이다. 독신에 다른 가족들은 다 외국에 살고 있지만 생활에 별다른 불편이 없다. 태어나기 전부터 집안일을 해온 '아타오'가 모든 것을 돌봐주기 때문이다.

이제 칠십 줄에 들어선 '아타오'는 평생을 이 집의 가정부로 살아왔다. 선대로부터 시작해 동갑인 로저의 어머니, 로저의 형제들, 그 아래 로저의 조카들까지 손수 길렀고 이제는 그 조카 대에서 낳은 아기, 즉 5대까지 보는 것이 소원이다. 평생을 해온 집안일이 진력날 법도 하지만 그 손길과 솜씨는 여전하다.

영화 <심플 라이프>  포스터

▲ 영화 <심플 라이프> 포스터 ⓒ (주)미로비젼


그러던 어느 날, 아타오가 중풍으로 쓰러진다. 출장이 잦은 로저가 돌봐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타오 또한 로저에게 폐 끼치기를 원치 않아 요양병원에 들어가기로 한다. 영화는 아타오를 비롯해 요양병원에 사는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과 병원 안팎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로저와 아타오의 모습을 요란스럽지 않게 보여준다.

월급을 주는 주인과 가정부 사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늘 함께였던 아타오를 보는 로저의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아들처럼 기르고 돌봐온 로저를 보는 아타오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 병원에 드나들며 이것 저것 챙겼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로저는 아타오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록새록 알아간다.

어머니를 입원 시켜 놓고 연락을 끊어버린 아들, 그런 오빠를 욕하며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딸. 늘 음식을 흘리는 노인, 그런 노인에게 호통을 쳐대는 또 다른 노인. 틈만 나면 돈을 빌려서 젊은 여자에게 달려가는 노인. 하루종일 휠체어에 앉아 비몽사몽 꿈 속을 헤매는 노인.

이런 노인들 틈에서 꾸준히 찾아오는 '양아들'을 둔 아타오는 행복한 편이다. 비록 몸이 점점 나빠져 지팡이에서 네 발 보행기로, 보행기에서 휠체어로 바뀌기는 해도 두 사람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여 한 없이 편하고 한 없이 애틋하다. 별달리 하는 일 없는 단순한 만남이지만 진심이 통하는 그 자리에는 잔잔한 평화가 있다.

영화 <심플 라이프>의 한 장면   아타오 할머니와 로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 영화 <심플 라이프>의 한 장면 아타오 할머니와 로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 (주)미로비젼


함께 병원 근처를 산책하고 몸이 좋아졌을 때는 잠시 집으로 와서 묵은 짐을 정리하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영화 시사회에 초대하기도 한다. 새로운 가정부를 구하기 위해 아타오가 나서서 면담을 하지만 눈에 차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이 모든 장면에서 때론 웃음이 때론 코끝이 찡하다.

놀라운 것은 로저역의 배우 '유덕화'다. 중년에 이른 배우의 깊은 멋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눈물 한 줄기 흘리지 않고 관객을 울린다. 친구들과 예전의 아타오 이야기를 하며 마른 세수를 하는 모습, 아타오를 바라보며 슬며시 붉어지는 눈시울, 아타오를 바라보다 뒤돌아설 때 살짝 기울어지는 어깨...       

결국 아타오에게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로저는 더 이상의 무의미한 치료를 하지 말고 보내드리자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장례식. 아타오가 곁에 있어주었음을 감사하는 로저의 마지막 인사.

예전에 로저가 수술을 했을 때도, 로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아타오는 최선을 다해 돌봐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로저가 아타오를 돌본 것은 아니다. 직접 낳은 엄마와 아들을 넘어서는 소중한 오고감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기에 진심을 다해 끝까지 곁을 지킨 것이리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한 사람의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돌보고 서로 진심을 나누며 헤어지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왠지 자신이 없다. 아마도 바쁘다는 핑계로 건성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자꾸만 뒤로 미루기 때문이 아닐까. 내 곁에, 그리고 그 사람 곁에 서로가 끝까지 진심을 다해 머물 수 있으려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지... 

덧붙이는 글 <심플 라이프(桃姐, A Simple Life / 홍콩, 2011)>(감독 : 허안화 / 출연 : 유덕화, 엽덕한 등)
심플 라이프 노년 요양병원 노인 유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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