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일드라마 <그대없인 못살아>에 출연하는 배우 김해숙

MBC 일일드라마 <그대없인 못살아>에 출연한 배우 김해숙 ⓒ MBC


110부작 MBC 일일 드라마 <그대없인 못살아>가 16일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김해숙의 눈물없인 볼 수 없었던 치매 연기에, 특별 출연에 가까웠던 황인영, 소유진을 무개념의 악녀로 둔갑시켜 시청률을 견인 한때는 시청률표의 수위를 차지하며 10% 중반대로 고군분투했지만, MBC 뉴스 시간대의 변경으로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작가의 노선 변경도 무색하게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한 채 조용히 종영을 맞이하였다.

1. 애초의 기획의도를 잊었던 작가..'막장'을 훈훈한 가족애로 '급봉합'

항간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에 <그대없인 못살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거기에 대한 답은 바로 패티 김, 이은하 등 쟁쟁한 중견 가수들의 고급스런 OST와, 김해숙의 연기다.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보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형편상 모시지 못하는 자식들의 이야기라고 나와 있듯이 <그대없인 못살아>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 김해숙의 이야기가 중심 줄거리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 드라마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자식들의 사정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한 중년 여성 어머니를 '치매'에 걸리게끔 몰아가는 자식들의 이야기같았다.

가지 많은 집 바람잘 날없다지만, 장인자 여사네 가족들만큼 아버지에서 아들에 이르기까지 토네이도급으로 어머니를 몰아 부친 가족이 또 있을까. 문제는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자식들의 문제라는 것이 보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욕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멀쩡하던 큰 아들은 하루 아침에 '첫사랑을 못잊네' 하며 돌변하며 세상에 둘도 없는 파렴치범이 된다든가, 그가 사랑하는 첫사랑은 첫사랑이라기엔 똑부러지다 못해 개념 따윈 밥 말아 먹은 행동을 일삼는다던가, 멀쩡하게 살림 잘 하던 그 집의 맏며느리는 하루 아침에 그 집안에서 떨어져 나와 친엄마를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며 또 다른 막장급의 악녀를 만나 뇌진탕을 일으키는 사건 속에 홀로 내팽겨쳐치는데...

 배우 박은혜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중국팬 미팅행사에 참석하기에 앞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배우와 엄마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박은혜 ⓒ 이정민


마지막까지 이 드라마를 놓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고생만 하며 살아온 엄마의 치매라는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아프고, 그러기에 훈훈하게 만들 수 있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시청률이 뭐길래, 중반부에 큰 아들의 불륜이 등장한 이후 상승하는 시청률 상승세에 그만 아름다운 가족 드라마는 '그대때문에 못살아'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 몇 회를 남기고, 그래도 이 드라마가 가족 드라마라는 것을 새삼 자각한 작가가 그동안 무개념의 상징이었던 맏며느리에게 급작스럽게 반성과 개념을 장착시켜주고, 등장 인물에 나오지도 않는 감옥으로 직행해야 마땅한 현태의 전 부인에게는 마지막 변명과 사과까지 하게 만드는 급화해모드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간의 막장급 악행을 잊지 못한 시청자들이 그걸 보고 지을 수 있는 건 씁쓸한 실소 뿐이었다.

이런 막장급 전개 덕분에 등장 인물 표에 대기하고 있던 남지현 등의 배우는 등장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뻔히 한 집에 살던 시어머니 김지영 등은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아들 치도와 도희는 리액션 담당의 엑스트라급 연기만 하다 종영을 맞이하게 되었다.

애초에 기획 의도를 잊지 않은 작가가 가족들의 화해와 반성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편안하게 여생을 마무리 하는 김해숙의 나레이션으로 드라마를 마무리 했다. 하지만 '훈훈한 가족애'라기 보단 엊그제까지 다신 서로 안볼듯이 막말로 으르렁거리던 가족들의 어설픈 봉합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가슴 아픈 이야기조차도 눈물을 흘리기게 민망해진 드라마로 끝나서 속이 시원한 드라마로 남겨지게 되었다.

2. <리플리>의 복제? '새어머니의 숨겨진 딸과 의붓 아들의 사랑'
 MBC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그대없인못살아> 한 장면. 극 중 민도역을 맡은 박유환(오른쪽)은 결혼과 함께 처가로 들어가 살게 된다. 자신을 못마땅해 하던 장모와 갈등을 보이기도 한다.

MBC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그대없인못살아> 한 장면. ⓒ MBC


<그대없인 못살아>는 큰아들 상도의 이혼 이후, 마치 두 개의 드라마를 보는 듯 장인자씨네 가족 이야기와 맏며느리 인혜의 홀로서기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 다른 길로 흘러들어갔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인혜의 친엄마 찾기가 낯설지 않았다. 바로 작가의 전작 <미스 리플리>에서 써먹었던 설정이 그대로 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전작 <미스 리플리>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는 상대방 남자들을 거침없이 이용하는 희대의 악녀인 장미리(이다해 분) 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그녀를 사랑하는 몬도 그룹의 후계자 송유현(박유천 분)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다해는 송유현의 아버지가 들인 후처 이화(최명길 분)의 딸이었다. 송유현의 아버지와 결혼하기 위해 이화는 자신의 딸을 버렸고, 그 딸인 장미리는 고생 끝에 일본 술집으로 흘러 들어가기까지 했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남자를 갈아타고, 친구의 신분을 도용하는 나쁜 여자가 되어 버렸었다.

<그대없인 못살아>도 마찬가지다. 단지 고아인 인혜가 세상에 없는 천사표인 것만 다를 뿐 인혜를 사랑하는 현태의 어머니는 새어머니이고, 그녀 역시 미혼모 시절에 낳은 인혜를 버렸다. 그리고 인혜와 현태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미스 리플리>처럼, 혈연이 아닌, 애꿎은 가족 관계로 인한 오누이가 되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MBC 일일드라마 <그대없인 못살아>에 출연하는 배우 박유환

MBC 일일드라마 <그대없인 못살아>에 출연하는 배우 박유환 ⓒ MBC


과연 이런 새어머니의 숨겨진 딸과 의붓 아들의 사랑이란 설정이 그렇게 작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해서 쉽게 '리바이벌'할 내용일까? 전작 <미스 리플리> 역시 애초의 작품 의도와 달리, 극단적 설정에 '갑툭튀'한 등장 인물의 과도한 비중으로 인해, 제법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두고 두고 혹평에 시달린 작품이었는데, 다시 한 번 이런 설정을 차용하는 것은 <미스 리플리>에서 다하지 못한 인연을 풀어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시청률 상승을 위한 편한 장치라 쉽게 다시 한번 써먹은 것인가.

다하지 못한 인연이라기엔, <미스 리플리>와 다르지 않게, 두고 두고 애닳아 하던 인혜와 현태의 사랑을 무자비하게 그래도 오누이라며 현태의 미국행으로 단칼에 끝내버리는 허무한 결론에 이르른 것을 보면 시청자들을 그저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장치 그 이상으로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또 보진 않으리라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꺼니깐 내 맘대로 '복제'해도 된다는 것일까? 작가의 속내가 궁금하다.

전작 <미스 리플리>에는 박유천이, <그대없인 못살아>에는 그 동생 박유환이 출연해, 김선영 작가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미스 리플리>의 송본부장 박유천은 사람들에게 '괜찮아요 미리씨'라는 대사만을 기억시킨 만만한 '호구'요, <그대없인 못살아>의 민도, 박유환은 중반 이후 늘 찡그리고 울기만 하다 사라지는 거 같으니 이 두 형제의 작가와의 인연은 '악연'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말도 안되는 스토리 속에서도 굳굳하게 심지 굳은 송유현을 연기한 박유천과 정말 아들같고 동생같았던 박유환의 호소력 짙은 연기로 보면 '형제는 용감했다', 그래도 좋은 연기자는 남는다고 해야 하는 건지.

좋은 배우들이 아깝고, 애초의 선한 기획 의도가 아쉬운 <그대없인 못살아>. 욕하면서도 중년 어머니의 애닯은 치매 연기가 안타까워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시청자들이 있었다.
 MBC 일일드라마 <그대없인 못살아>에서 로맨스 연기를 펼치게 된 배우 남지현(왼쪽)과 도지한

MBC 일일드라마 <그대없인 못살아>에서 로맨스 연기를 펼친 배우 남지현(왼쪽)과 도지한 ⓒ MBC



그대없인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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