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제왕>의 한 장면. 드라마를 찍은 테이프를 배달하던 오토바이가 사고를 당하며 운전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한 남자가 피칠갑을 한 운전자의 손을 뿌리치며 그의 품 안에 테이프를 챙긴다. 그는 '작품을 위해서는 아버지도 버려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 앤서니 김, '드라마의 제왕'이다.

SBS 새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연출 홍성창·극본 장항준, 이지효)은 제목 그대로 드라마 제작환경을 담은 작품이다. 인간애를 믿지 않는 앤서니김(김명민 분)과 '드라마는 인간애'라고 외치는 보조작가 이고은(정려원 분)을 통해 드라마를 향한 꿈과 야망을 그린다.

이 드라마에서 동력을 얻은 단어로 '꿈'과 '100억'을 꼽은 홍성창 감독은 "나도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꿈을 좇는 건지 드라마판 자본주의의 허상을 좇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며 "시청자들도 순수한 꿈과 목적 있는 야망 중 무엇을 택할지 판단하면 재밌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싸인>을 통해 영화감독에서 드라마 작가로 변신한 장항준 감독은 "영화판이 전쟁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판은 정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싸우는 백병전이더라"며 "돈 때문인지, 욕망 때문인지 모르며 살아가는 이 바닥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극중 정려원이 맡은 보조작가 이고은의 실제 모델은 <드라마의 제왕>으로 데뷔한 이지효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지효 작가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채플린의 말로 이번 작품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다. 장항준 감독은 함께 대본을 집필하는 이지효 작가에 대해 "안정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며 "난 놀면서 일하자는 주의인데, 쉬지 않고 소처럼 일한다"고 표현하며 여전한 입담을 과시했다.

험난한 드라마판, 그래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



김명민이 연기하는 앤서니김은 기시감이 들 수 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똥덩어리!"라고 독설을 날리던 강마에가 떠오르기 때문. 김명민은 "강마에는 고전주의 시대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왔다면, 앤서니김은 전형적인 이 시대 사람"이라며 "둘 다 음악과 드라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지만, 강마에와 달리 자기편이 없고 모두가 적인 앤서니는 목적의식이 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성장해 가는 이고은 역의 정려원은 잔심부름부터 시작하는 보조작가들을 관찰하며 성향을 연구했다고 한다. 험난한 드라마 바닥에서 가장 고생길이 훤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정려원의 독기도 만만치 않았다. 극중 이고은이 악랄한 앤서니 때문에 잠시 일을 관두는 상황을 두고 정려원은 "나를 찍어 내리던 사람과 일을 한 적이 있었다"며 "등을 돌리는 게 복수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게 내 차원에서 승자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일을 할 거다"라고 강조했다.

톱스타 강현민으로 출연하는 최시원은 "나와 성격이 정반대"라고 연이어 강조했다. 강현민이 대외적으로는 젠틀하지만, 실제로는 까칠한데다가 머리도 나쁘고 타협을 모르는 안하무인의 배우이기 때문. 과장된 대사와 표정에서 웃음 코드를 읽을 수 있는 강현민을 택한 이유에 대해 최시원은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최시원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가벼워지고 싶었다"며 "사는 것도 일하는 것도 힘들 때, 시청자들이 일 끝나고 지친 하루를 유쾌하게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답했다.



강현민과 드라마 속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는 도도한 톱스타 성민아 역의 오지은은 지금까지 보여준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오지은은 "이 역할을 통해서 나 역시 대한민국 여배우로서의 성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연기 변신에도 도움이 돼서 한 단계 올라서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지은과 최시원은 톱배우 간의 기싸움과 갈등 등 현실적인 부분을 보여줄 일도 기대하고 있었다.

'제왕'이자 '악의 축'인 앤서니 역의 김명민은 연기하며 그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단다. 그는 "이런 사람이 있기에 대중들이 드라마를 보고 감동 받고 눈물 흘리지 않나 싶다"고 답했다. 이처럼 <드라마의 제왕>은 어쩌면 드라마를 만드는 게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의 명암을 여실히 보여줄 예정이다. 11월 5일 밤 9시 55분 첫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