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텔레토비'의 한 장면

'여의도 텔레토비'의 한 장면 ⓒ tvN


[기사수정 2일 오후 2시 5분]

"박근혜 후보로 분한 출연자가 유독 욕설과 폭력이 아주 심하다. 안철수 후보는 아주 점잖게 폭력도 없고 아주 순하게 얻어맞기만 한다. 이런 폭력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서 새누리당 홍지만(대구 달서구갑) 의원은 박만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tvN < SNL 코리아 > 중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를 자료로 상영했다.

홍 의원은 "욕설, 선정성, 폭력과 같은 부분은 표현의 자유가 많이 보장되고 있다는 미국에서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고, 엄청난 제재가 가해진다. 이 (< SNL 코리아 >의 제재) 부분에 대해 꼭 챙겨 달라"고 압박했다.

< SNL 코리아 >가 1975년부터 방영된 미국의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의 포맷을 수입했다는 점을 '뿔난' 홍 의원은 알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방송이나 창작물에서 정치 풍자나 패러디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반박하자 홍 의원은 "이런 프로그램은 어린아이도 볼 수 있다"며 "정치 풍자는 오히려 재밌고 당연하지만 편향성은 약간 문제가 있다"고 재차 지적했다.  

자, 그러니까 홍지만 의원에게는 20일 방송에서 편집 시 실수로 무음 처리가 잘못돼 욕설이 조금 들렸던 것이 문제였을까, 새누리당을 패러디한 텔레토비 캐릭터 '또'가 과격하고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풍자 사라진 브라운관에서 고군분투하는 < SNL 코리아 >

정치권이나 대선주자도 불사하는 패러디 정신으로 무장한 < SNL 코리아 >의 수난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9월 22일 SBS는 < SNL 코리아 > 시즌2의 '짝' 재소자 특집이 "출연자의 등장, 자기소개, 도시락 선택 등 '짝'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포맷을 모방했고, 영상제작물의 창작 표현을 원고의 동의 없이 이용했다"며 CJ E&M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1억 50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냈다. 이에 대한 < SNL 코리아 >의 대응은 정면돌파였다.

< SNL 코리아 >는 지난 6일 방송에서 재소자 특집과 동일한 포맷의 '짝' 메디컬 특집을 내보내는 용기를 선보였다. 이어진 '위크앤드 업데이트' 코너에서 장진 감독은 "시즌제로 시작한 후 지금까지 40개 프로그램을 패러디했고 60회 방송했다"며 "그 중 유일하게 (SBS가)소송을 걸어주셨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영국 BBC의 소송을 기대했지만 가망이 없다"며 SBS의 소송을 비꼬기도 했다. 현재 < SNL 코리아 > 측은 소장을 검토 중이며 원만한 해결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SNL 코리아 > '쨕' 재소자 특집에 출연한 개그맨 신동엽

< SNL 코리아 > '쨕' 재소자 특집에 출연한 개그맨 신동엽 ⓒ tvN


패러디는 < SNL 코리아 >의 근간이다. 최근 방송에서 가수 손담비는 자신의 히트곡 '토요일 밤에' '미쳤어'로 신동엽과 함께 영화 <원초적 본능>의 유명한 취조신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대선후보 박근혜를 패러디인 '박그네' 캐릭터는 거의 매회 콩트 중간중간 출연, 웃음을 유발한다.

각종 CF, 영화, 방송이 등장하는 것은 기본이요, 매주 출연하는 유명 호스트는 자신의 작품이나 이미지를 스스로 희화화한다. <후궁:제왕의 첩> 개봉 전 출연한 조여정이 '섹시 요가'를 선보였던 것이나 영화 <친구>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희화화했던 유오성이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4.11 총선 즈음엔 새누리당 이재오,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이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풍자와 패러디는 '표현의 자유'를 가늠하는 잣대

< SNL 코리아 >에 가해진 원투펀치를 우려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현재 정치풍자를 포함해 패러디 정신을 활발하고 뚝심 있게 지켜내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바로 < SNL 코리아 >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2012년을 한 달 앞두고 < SNL 코리아 > 시즌1의 방영과 맞물려 지상파와 종편에서도 풍자 코미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던 것을 잊으면 안 된다. SBS <개그 투나잇>과 MBN <개그 공화국>, MBC <웃고 또 웃고>가 일제히 정치시사 풍자 개그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강용석 전 국회의원이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하기 전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만큼 통쾌한 시사 개그는 또 없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이러한 트렌드가 자취를 감췄다. 프로그램이 폐지된 MBN과 MBC는 차치하더라도, <개그콘서트>에서 사회풍자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나 "국회의원은 뭐하나" 수준의 포퓰리즘에 기반한 '용감한 녀석들'의 발언은 깊이나 재미가 떨어진다. MB를 패러디한 'K잡스타'나 종편과 방송계를 풍자했던 'TV와의 전쟁'은 2~3회 만에 막을 내렸다.

더욱이 패러디와 풍자는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일 수밖에 없다. 강용석 전 의원의 고소 사건이나 < SNL 코리아 >에 대한 새누리당의 제재 요구에서 보듯, 표현의 자유는 그 주체가 개인이냐 정당이냐의 여부를 떠나 개인의 입맛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훼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MBC <무한도전> 역시 <짝>을 패러디했던 만큼, SBS <짝>과 < SNL 코리아 >의 송사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 박선이 위원장은 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의 두 번에 걸친 제한상영가 처분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자가당착>이라는 영화는 표현정도가 매우 높아서 일반적인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부여하여서 일반인에게 상영하기 어려운 정도의 과도한 신체훼손이나 잔혹묘사, 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대통령, 정치인들의 대한 풍자라면 얼마든지 일반적인 상영등급으로 분류 받았을 텐데요, 영상표현에 있어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입니다. 마네킹에 두 사람 사진을 붙여놓고 두 사람의 목을 동시에 날리는 건 풍자의 정도를 넘어섰고 굉장히 모욕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예술 작품에서, 대중 예술에서 풍자가 과도하면 국가의 제재를 받는 '표현의 자유' 부족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새누리당으로부터 제재 요구를 받은 방통위가 < SNL 코리아 >에 과연 어떤 처분을 내릴지 지켜보자.

SNL코리아 여의도텔레토비 개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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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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