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

김수현 작가 ⓒ SBS


JTBC <무자식 상팔자>가 순항 중이다. 김수현 작가, 정을영 피디 콤비의 관록이 빛을 발한 가운데 베테랑 배우들의 호연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이른바 '김수현 사단'으로 통칭 되는 이들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는 단골배우들이다. 드라마작가 김수현의 선택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김수현 사단, 지금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나.

김수현의 페르소나, 누가 있었나

김수현의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여배우들을 위한 드라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서 언제나 주축이 되는 것은 '여자'다. 김수현 드라마의 여자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온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남자는 쉽게 찾기 힘들지만 매력적인 여자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이른바 김수현 사단의 대부분은 여배우들로 구성된다. 이른바 김수현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배우들의 모임이 '김수현 사단' 의 실체다. 그렇다면 김수현 드라마에 가장 많이 출연한 여배우는 누굴까. 많은 사람들이 김수현하면 윤여정을 떠올리지만 윤여정보다 김수현 드라마에 더 자주 얼굴을 비친 배우는 중견배우 김혜자다.

김혜자는 1972년 김수현의 데뷔작 <무지개>와 출세작 <새엄마>에 연거푸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무지개><후회합니다><행복을 팝니다><엄마 아빠 좋아><사랑의 굴레><사랑합시다><어제 그리고 내일><모래성><사랑이 뭐길래><두 여자><홍소장의 가을><엄마가 뿔났다>까지 35년 동안 총 16번이나 김수현과 호흡을 맞춰왔다. 김혜자의 대표 히트작 대부분이 김수현에게서 나온 것이다.

 김수현 사단이 총출동한 JTBC 주말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김수현 사단이 총출동한 JTBC 주말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 JTBC


김혜자의 뒤를 이어 윤여정은 총 12편의 드라마를 김수현과 함께 했다. 김수현의 절친으로 알려진 그녀는 <무지개><새엄마>로 김수현 사단에 합류한 이래 <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목욕탕집 남자들><내사랑 누굴까> 등 김수현의 빅히트작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90년대 언론에서는 윤여정을 김수현 사단의 '사단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정혜선, 강부자, 김용림, 나문희, 서우림, 전양자, 정재순, 김영애, 김해숙, 장미희, 임예진, 견미리 등의 중견 여배우들은 번갈아 가며 김수현 드라마에 출연하는 '김수현 사단' 의 최측근들이다. <무자식 상팔자>에 서우림, 전양자, 김해숙, 견미리, 임예진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중견 배우들이 전면에 포진해 있는 것은 이들이 가장 안정적으로 드라마를 이끌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수현의 드라마를 적어도 10편 가까이 소화해 낸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다.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 장면들. 장미희 씨가 맡은 역할 '은아'는 부르주아를 대변한다. 김수현 작가는 그동안 작품을 통해 부르주아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다. ⓒKBS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 장면들. ⓒ KBS


김수현 사단의 계보는 어디까지 이어지나

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김수현 사단의 '사단장'이 윤여정이였다면, 2000년대 김수현 사단의 상징은 김희애다. <완전한 사랑><부모님 전 상서><내 남자의 여자> 까지 연거푸 김수현 드라마에 출연한 김희애는 윤여정의 뒤를 잇는 김수현 사단의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 했다. "김수현-김희애 조합이라면 감사하다고 큰 절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던 말은 방송 관계자라면 웃어넘기기 힘든 뼈 있는 농담이다.

김희애가 30대 후반의 나이에 김수현 드라마에 출연했다면 20대의 이유리, 김민경은 다소 일찍 김수현 사단에 합류한 케이스다. <부모님 전상서><사랑과 야망><엄마가 뿔났다>의 이유리와 <부모님 전상서><엄마가 뿔났다><무자식 상팔자>에 연속 출연한 김민경은 김수현의 돈독한 사랑을 받는 젊은 여배우들이다. 특히 이유리는 김수현 드라마 출연을 위해 예정되어 있던 영화 출연을 포기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희애, 이유리 뿐 아니라 2000년대 김수현 사단에 합류해 맹위를 떨치는 배우는 하유미다. '국민 언니'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내 남자의 여자>를 비롯해 <사랑과 야망><엄마가 뿔났다>까지 연속 출연한 그녀는 날카롭고 깍쟁이 같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유미가 김수현 드라마의 영원한 언니라면, 김나운은 김수현 드라마의 영원한 친구다. <청춘의 덫>부터 <엄마가 뿔났다>까지 10년 동안 총 8편의 김수현 드라마에 출연한 김나운은 주연은 아니지만 빼 놓을 수 없는 조연이나 감초로 자주 김수현과 인연을 맺었다. 김수현 작가는 그녀에 대해 "출연 분량이 적은데도 항상 열심히 해줘서 미안하고 고맙다. 성실하고 똑똑한 친구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김나운은 늦깎이로 김수현 사단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연 작품은 강부자나 김영애에 비할 만큼 많다.

 김수현 작가 드라마의 히로인 김희애, 심은하와 <천일의 약속> 여주인공 수애.

김수현 작가 드라마의 히로인 김희애, 심은하와 <천일의 약속> 여주인공 수애. ⓒ 드라마 공식홈페이지


한국 드라마의 산증인, 김수현 사단은 어디로 가고 있나

이렇듯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생겨난 '김수현 사단' 이라는 말은 이제 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접하는 용어가 됐다. 김수현 드라마에 김수현 사단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필수조건이자 충분조건인 셈이다.

<무자식 상팔자> 출연 배우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그렇다. 엄지원, 하석진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배우들은 김수현 드라마에 최소 두 편 이상 얼굴을 내민 배우들이다. 특별출연한 이상우 배우조차 김수현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천일의 약속>에 출연했다.

김수현 사단에 들어가기 위해선 적어도 그녀의 드라마에 2번 이상 연속적으로 출연하거나, 혹은 김수현의 끊임없는 캐스팅 제의를 받아야 한다. 이 까다로운 가입조건 때문인지 김수현 드라마는 소수의 정예 멤버들이 번갈아 가며 출연한다.

김수현 사단의 강점은 기본적으로 안정감과 편안함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TV를 볼 때 연기 걱정을 하며 볼 필요가 없다는 건 당연하지만 참 신나는 일이다. 자타공인 베테랑들의 연기는 보고 즐기면 된다. 그러나 너무 익숙한 나머지 면면에서 느껴지는 역동성이나 신선함이 거세된다는 건 약점이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김수현 사단은 본질적으로 완전한 새 판을 짤 수 없는 치명적 한계를 전제하고 시작한다.

SBS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가 쓴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속에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일 것만 같은 제주도에서 여행이나 휴식 등의 일상탈출이 아닌 실제 ‘삶’ 자체를 당연한 듯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 SBS콘텐츠허브


일례로 김수현-김희애 조합은 분명 매력적인 흥행 카드지만 또한 식상함과 지겨움을 동반한다. <완전한 사랑>에서 <내 남자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김희애는 다양한 캐릭터로 시청자를 만났음에도 결국은 김수현 드라마라는 굴레를 벗어나진 못했다. 원로배우 이순재 또한 <사랑이 뭐길래>부터 <무자식 상팔자>까지 비슷한 캐릭터를 똑같이 연기하고 있다. 김수현 사단의 '소수 정예'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1970~1990년대 김수현 사단은 청춘스타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누리고 싶은 영광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의 김수현 사단은 신인들의 필수 코스에서 벗어난 과거의 유물이다. "배우가 되려면 김수현 사단에 들어가야겠지만 스타가 되려면 김수현 드라마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어떤 관계자의 말은 김수현 사단 자체가 젊은 세대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과 김헌식은 "김수현 드라마가 아무리 시청률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없었다. 이미 미드에 빠진 젊은 층들은 한국드라마의 시청권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러한 면에서는 김수현은 한국 드라마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사위어가는 모닥불" 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김수현은 여전히 방송 드라마 시스템 면에서 중추이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수현의 장르와 김수현의 선택이 곧 한국 드라마의 장르이자 선택이었음을 부정할 이유는 많지 않다.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갔든 그것은 김수현이기에 가능했고, 김수현 사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가능성과 업적조차도 과거의 영광에 기댄 식으로 퇴보하고 있다. 우린 이 현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늙어가는 노작가의 옆에 같이 늙어가는 김수현 사단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김수현은 늙어 가더라도 김수현 사단은 늙지 말아야 한다. 한국 드라마 50년사 중 44년을 함께 한 일흔의 노작가와 그의 배우들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김수현 사단의 외연 확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때다.


김수현 김수현 사단 무자식 상팔자 윤여정 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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