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 오프 4차전 롯데와 두산의 경기에서 롯데가 연장 10회말 두산의 잇따른 송구 실책으로 2루에 있던 박준서가 홈으로 들어와 결승점을 뽑자 롯데 선수들이 달려들어 엉기고 있다.

12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 오프 4차전 롯데와 두산의 경기에서 롯데가 연장 10회말 두산의 잇따른 송구 실책으로 2루에 있던 박준서가 홈으로 들어와 결승점을 뽑자 롯데 선수들이 달려들어 엉기고 있다. ⓒ 연합뉴스


야신으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고양원더스)의 좌우명은 '일구이무(一球二無)'다. '공 하나에 승부를 걸 뿐 다음은 없다.'는 말뒤에는, 항상 매순간을 벼랑끝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것이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살아가야하는 남자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치열했던 롯데와 두산의 준PO 운명을 가른 것도 이 '절박함'에 있었다.  4차전이 시작되기 전에 시리즈 전적에 뒤져있던 쪽은 두산이었지만 마치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끝까지 더 악착같이 승리를 향해 매달린 쪽은 오히려 롯데였다. 때로는 작은 생각이나 정신력의 차이가 더 큰 나비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절박함의 롯데, 샴페인 일찍 터뜨린 두산

준PO내내 롯데가 선취점을 낸 경우는 1차전 한 번 뿐이었다. 시리즈 4경기 모두 중반인 6회까지 리드를 유지한 팀은 두산이었다. 하지만 롯데는 3차전을 제외하고 7-8회 이후  모두 경기를 동점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결국 3승을 모두 역전승으로 따내며 시리즈를 마감했다. 그중 두 번은 연장접전이었다. 경기 종반 1점차 박빙의 승부에서 롯데의 뒷심이 오히려 두산을 압도했음을 보여준다.

승부는 결국 불펜싸움과 경험, 수비력에서 갈렸다. 두산이 비록 이번 준PO에서 김동주, 손시헌, 정수빈, 임태훈, 고영민, 이종욱 등이 연어이 부상과 슬럼프에 허덕이며 정상적인 전력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롯데도 전력누수는 분명히 있었다. 실제로 경기흐름을 가른 것은 양팀의 전력차보다는 승부처에서의 집중력이었다.

양떼 불펜을 앞세운 롯데가 경기후반 추가실점을 최소화하며 추격의 빌미를 마련한 것과 달리, 두산은 시리즈 내내 홍상삼 카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화를 자초했다. 쓸 만한 불펜자원이 부족한 두산에 홍상삼이 구위나 경험에서 가장 믿을 만한 카드임에는 분명했지만 투수 한 명에게 지나친 부담을 준 것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홍상삼은 1,2,4차전에서 모두 팀이 리드하고 있는 상황을 지키지 못하고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며 이번 시리즈의 최대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홍상삼의 잘못보다 김진욱 감독의 '오기'에 가까운 무리한 투수운용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시리즈 내내 논란을 빚어온 김진욱 감독의 용병술은 결국 4차전에서 돌이킬 수 있는 파국을 초래했다. 8회초까지 선발 김선우의 호투와 윤석민의 홈런 등에 힘입어 3-0으로 벌여놓으며 승리를 눈앞에 뒀던 경기는, 8회말부터 니퍼트-홍상삼-프록터로 이어지는 의문의 투수교체 타이밍으로 결국 대역전쇼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김진욱 감독, 자만과 오기가 불러온 재앙

이날 양팀은 나란히 선발요원이던 송승준과 니퍼트를 불펜에서 대기시키며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투수교체 당시의 상황이나 활용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양승호 롯데 감독은 선발투수로 나선 고원준이 초반 2실점으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2.1이닝만에 강판시키고 1차전 선발이었던 송승준을 투입했다. 이날 경기에 지더라도 5차전이 있었지만 뒤를 보지않고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결과적으로 송승준은 4⅓이닝 동안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치며 자신의 임무를 100% 완수했고, 이어 이명우-김사율-김성배-정대현이 버틴 불펜이 총동원되어 두산 타선을 단 1점으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반면 김진욱 감독은 3-0으로 앞선 8회 선발 니퍼트를 셋업맨으로 출격시켰다. 8회초 1점을 추가하며 점수가 3점차로 벌어지자 김진욱 감독은 이미 5차전 선발로 노경은을 낙점한 상황에서 에이스를 니퍼트를 중간계투로 실험하려는 의도였다. 롯데가 송승준을 투입하며 에이스를 활용하려던 방식과 타이밍의 차이는 여기에 있었다. 이 시점에서 김진욱 감독이 눈앞의 승부를 잡았다고 방심하고 벌써 다음 경기를 생각하려던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그러나 3점차는 안심할 수 있는 점수차가 아니었고, 압박감이 큰 포스트시즌은 제아무리 에이스라도 검증안된 낯선 보직을 실험할 만큼 여유있는 무대도 아니었다. 니퍼트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네 타자 연속 안타를 내주며 역전의 빌미를 허용했다.

김진욱 감독의 실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니퍼트가 실점을 내주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교체하는 타이밍도 나빴지만 내일이 없는 승부에서 그가 택한 카드는 또 홍상삼이었다. 1,2차전에서 홈런 트라우마에 빠졌던 홍상삼은 이날도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니퍼트가 내보낸 주자들을 불러들이며 결국 동점을 허용했다.

기세가 오른 롯데가 정대현을 내면서 승부의 흐름은 급격히 기울었다. 두산 타자들은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정대현의 공을 공략하지 못했다. 반면 두산은 연장 10회까지 홍상삼 카드를 밀어붙이다가 다시 1사 2루의 위기 상황이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인 프록터를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프록터 역시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낸 상황에서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폭투를 저질렀다. 이때 서두르던 포수  양의지가 3루 쪽으로 던진 공이 실책 송구가 되면서 2루주자 박준서가 홈까지 쇄도했고 결국 승부는 허무하게 끝났다.

공식적으로는 프록터와 양의지의 연이은 실책이 경기를 끝낸 셈이지만 이 상황까지 치닫게된 것은 김진욱 감독의 판단 미스와 두산의 뒷심-경험 부족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한 순간이 잘못된 판단이 계속 물고물리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면서 결국 승부의 운명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이다.

롯데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끝에 6전 7기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롯데가 PS 시리즈 대결에서 승리하여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것은 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이후 13년 만이고 역대 PS 시리즈 전적에서 6연패만에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두산을 상대로는 역대 4번째 가을잔치 맞대결에서 첫 승리다. 2008년부터 지난 4년간 번번이 가을잔치에서 좌절의 경험을 맛봐야했던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굶주림과 절실함이야말로 이번 PS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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