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의 공식 포스터

<똥파리>의 공식 포스터 ⓒ (주)영화사 진진

2009년, 세계 여러나라의 영화제 수상소식을 알리며 한국을 깜짝 놀라게 만든 독립영화가 한 편 있었다. 각본도 직접 쓰고, 주연인 용역깡패 상훈역을 직접 맡아 열연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라는 저예산 독립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 대한민국 용역깡패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대학생들이 집회를 열고 있는 와중에, 때맞춰 도착한 승합차에서 검은 옷 사내들 여러명이 우르르 내려 학생들에게 다가온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은 소위 말하는 '용역깡패'들이고, 집회에 참가중인 사람들을 위협하고 폭력을 휘둘러 해산시키는 게 목적이다. 주먹과 발로 사람들을 때리고 짓밟아 집회를 무산시킨 이들은,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낸 대가로 거액의 수고비를 챙긴다.

영화는 단순히 용역깡패의 무자비한 폭력만을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용역업계에서 경험이 많은 상훈과 돈을 벌기 위해 발을 들인 젊은 청년 영재(이환 분)가 집에 돌아가 겪는 일상까지 비추면서, 그들이 행사하는 폭력이 단순한 일회성이 아님을 보여준다.

상훈은 어릴적부터 만취한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해 가족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이를 못이긴 어머니가 끝내 세상을 떠나는 모습도 지켜봐야만 했다. 수십년 뒤 아버지가 출소한 후에도 상훈은 그를 용서하지 못했고, 결국 그에게 또 다른 폭력을 휘두른다. 그에게 다 풀지못한 분노는 용역깡패 일을 하면서 세상에 쏟아낸다.

용역깡패 일을 배우기 시작한 신참 영재는 상훈에게 맞기 일쑤다. 영재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집에 돌아가 가족인 누나 연희(김꽃비 분)에게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풀어낸다. 사회의 약자들이 끝없이 서로에게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인 것이다.

용역업체 폭력실태,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냐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진진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용역깡패인 주인공 상훈이 등록금 문제로 집회중인 대학생들에게 해산할 것을 강요하며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용역깡패인 주인공 상훈이 등록금 문제로 집회중인 대학생들에게 해산할 것을 강요하며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 (주)영화사 진진


영화 <똥파리>는 가정폭력에 찌든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용역깡패가 된  모습을 그려냈다. 돈을 벌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수많은 일자리 중에서, 폭력이 일상인 그들에게 용역깡패 일이란 늘 해오던 주먹질을 조금 더 의무적인 것으로 직업화한 연장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똥파리'는 더러운 오물에 꼬여들어 그걸 먹고사는 존재들이다. 대한민국에서 폭력은 사라져야 할 '악'이지만, 용역업체는 그런 사회의 부패한 단면, 폭력을 이용하고 그 덕분에 살아가는 신세임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야기가 분명한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게 된다. 브라운관을 벗어난 우리네 현실, 대한민국에서도 영화 <똥파리>에서 목격했던 용역업체들의 잔인한 실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말로만 무성하던 용역업체의 폭력진압이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만도·SJM 등의 공장에서 농성중이던 노조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용역업체의 실태가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의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적나라하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컨택터스, CJ시큐리티로 대표되는 이들 용역업체들은 단순한 농성진압 뿐만 아니라 노조 해체도 전담, 활동하면서 헬멧·방패·곤봉과 물대포를 탑재한 특수차량 등 사설군사단체를 방불케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사태가 커지기 전에는 그들은 누리집에 히틀러 경비견으로 유명한 대형경비견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SJM 사태 당시 촬영되었던 컨택터스의 잔혹한 진압장면은 <뉴스타파> 등의 매체를 통해 세상에 폭로되었고, 이를 보고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폭력진압이 문제가 되어 사업 허가가 취소되었지만 이들 용역업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사태 이후 그들의 누리집에 올린 해명글은 사과와 반성은 커녕 되레 언론과 누리꾼의 비판을 조롱하는 투였다. 또한 기사에 따르면 그들이 투입되어 벌어들이는 금액 역시도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고, 이러한 높은 임금의 유혹에 대학생들마저도 용역업체에 지원하고 있다.

영화 <똥파리>와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보도한 용역업체 근무경력자의 인터뷰기사가 보여주는 슬픈 공통점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 취재한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그들에게도 각자의 삶과 용역업체 일을 해야만 했던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돈을 벌어야 하는 같은 처지, 노동자인 국민들끼리 서로 원하지도 않은 싸움을 해야만 하는 현실인 것이다.

공권력이 버젓이 존재하는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용역업체가 지난 몇 년간 기형적으로 급성장한 것에는 우리가 마주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을 내포되어 있는 듯 보인다. 영화에서 말하는 용역깡패의 탄생배경은 가정폭력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이번 용역업체 폭력사태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이 사람들을 잔인한 용역업체의 세계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의 다양한 병폐 한 번에 드러낸 '용역폭력 사태'

 2일 오후 직장폐쇄된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용역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이 정문에서 근무 교대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일 오후 직장폐쇄된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용역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이 정문에서 근무 교대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던 SJM 사태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진압의 무자비한 폭력성 때문이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영상과 사진들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이 순식간에 공장안으로 난입해 무거운 철제 제품들을 집어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조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에 맞아 치아가 함몰되고, 입술과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공장 창문을 열고 바깥에 대기중이던 경찰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상당한 노조원이 소리쳤지만, 경찰측은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장안으로 병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태가 드러낸 문제는 용역업체의 폭력이라는 단편적인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외에도 사측에 의한 직장폐쇄로 이루어지는 노조 해체, 용역업체를 방관하는 경찰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공권력의 추락, 등록금 대출에 시달리다가 임금이 센 용역업체에 지원하는 대학생들이 말하는 등록금과 일자리문제에 이르기까지… 드러난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사설 용역업체의 노조원 무력진압이라는 한가지 사건을 들추었을 뿐인데, 사회 각계의 문제점들이 줄줄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은 어제, 오늘이 아닌 지난 몇 년간 긴 시간동안 곪아있다가 한순간에 터져버린 대한민국의 병든 부분들이 이제서야 뒤늦게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고쳐나가야 할 때다. 병들어 아픈 부위가 발견되었다면, 그 증상에 따라 진단을 내리고 치료법을 찾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잘 치료해낸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테지만, 그저 임시방편으로 진통만 가라앉힌 채로 지나친다면 이 사회를 좀먹는 병을 더욱 키우는 꼴이 될 것이다.

뒤틀린 사회구조가 낳은 대한민국의 병을 고칠 의사는 정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국민들인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용역업체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 용역업체의 지나친 폭력을 막기 위한 법적제도 마련, 일자리 문제와 대학생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국가에서 추진해야 마땅할 것이다.

부당한 처우에 대해 파업과 집회를 열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가 지켜지는 세상, 문제해결을 위해 용역업체 동원이 아니라 공권력의 적법한 집행이 이루어지는 국가, 위험하고 폭력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고 일자리가 충분한 사회.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사람이 '똥파리'가 아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국가와 정부의 몫이자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똥파리 용역업체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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