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 내 손에 꼭 쥐여준 너의 전화카드 한 장을 /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 중에서)

1993년 대학 새내기 시절, 뭣 모르는 선배의 뒤를 따라 광주 망월동 묘지를 갔다 온 것이 떠오릅니다. 당시 묘역은 수풀 하나, 나무 하나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던 황무지 돌 땅이었던지라 나무 십자가로 가득한 황량한 풍경은 그야말로 참혹의 묵시록 그 자체였습니다.

수많은 민주열사 앞에서 선배 손에 이끌려 팔뚝질을 하고 민중가요를 부르며 처절하게 울부짖던 추억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추모식을 마치고 뒤풀이에선 못 마시는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통한을 달랬던 장면도 선합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카드를 매개로 좋아하는 선배에게 마음을 위로받으며 들었던 가수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이 다시금 듣고 싶은 요즘입니다. 그만큼 당시 전화카드는 청춘이 지녀야 할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습니다.

가수 H.O.T를 '핫(hot)'으로 소개...돌 맞아 죽을 뻔도

이런 이유로 최근 집안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박스들을 모조리 쏟아내어 옛 물건과 손 편지, 구식 가요 테이프를 오랜만에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앳된 스타들의 프로필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격세지감'이라 했듯 세월이 참 많이 흘러가는 느낌에 피식 웃음도 났습니다.

 핑클, 터보, HOT 등의 모델 사진이 담긴 최신가요 콜렉션 테이프와 가수 이승철씨의 데뷔시절 가요 테이프 자켓 사진.

핑클, 터보, HOT 등의 모델 사진이 담긴 최신가요 콜렉션 테이프와 가수 이승철씨의 데뷔시절 가요 테이프 자켓 사진. ⓒ 이정민


낡은 테이프에서 발견한 요정가수 핑클. 데뷔 초기라 풋풋한 걸그룹 느낌 그대로입니다. 당시 최고의 유행을 이끌었지만, 어느새 촌티나는 '구식'으로 퇴색된 패션과 헤어 스타일도 눈에 띄었습니다.

핑클 밑을 장식하고 있는 터보 김종국. 당시 랩을 맡았던 마이키의 사진도 보이는군요. '회상' '검은 고양이 네로' '생일축하송' '러브 이즈' '트위스트 킹' 등이 많은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소라의 그레이트 히트 테이프 낡은 테이프 속 빛바랜 사진이 더욱 그녀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 이소라의 그레이트 히트 테이프 낡은 테이프 속 빛바랜 사진이 더욱 그녀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 이정민

맨 하단과 오른쪽에는 영예의 가수인 H.O.T와 이승철씨가 눈에 띕니다. 그야말로 추억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 멋진 프로필 사진이네요. 1993년 당시 동아리 축제 사회자로 나섰던 저는 최고의 인기 아이돌 H.O.T(High Five of Teenagers: 십대들의 우상)의 카피 댄스팀을 '핫(hot)'으로 소개했다가 돌 맞은 기억도 있습니다.

이어 두말할 필요 없는 영원한 록발라드 가수 이승철.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학생 스타일로, 지금과 전혀 비길 데 없는 순수했던 시절입니다. '희야' '마지막 콘서트'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마지막 나의 모습' '사랑하고 싶어'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등 1989년에 나왔던 1집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두 번째 테이프 표제 사진인 가수 이소라씨는 당시 '믿음' '난 행복해' '기억해줘' 등으로 인기를 날렸지요. 얼마 전 <나는 가수다>에서 삭발 투혼으로 시청자를 울렸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사진입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네요.(웃음)

이번엔 탤런트 이영애씨의 모습이네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1980~90년대엔 탤런트들이 홍보를 위해 가수들의 재킷 사진이나 베스트 앨범에 더러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쌍둥이 엄마가 돈 이영애씨의 옛날 모습이 참으로 매혹적입니다.

이영애의 '애수' 빛바랜 테이프 속의 여제로 빛을 발하고 있는 탤런트 이영애씨의 모습이 이채롭다.

▲ 이영애의 '애수' 빛바랜 테이프 속의 여제로 빛을 발하고 있는 탤런트 이영애씨의 모습이 이채롭다. ⓒ 이정민


낡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오래된 정원을 밝히다

1980년대 최고 하이틴 영화였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심금을 울렸던 영화배우 이미연씨. 저는 당시 이 영화를 10번이나 돌려보며 이미연씨를 향한 짝사랑으로 사춘기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이 영화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인기를 얻은 김민종씨와 영화 <투캅스>로 혜성럼 등장한 의리파 액션배우 김보성씨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토이를 기억하는가 1994년 1집 '내마음속에'라는 타이틀로 테이프를 발표했던 가수 토이는 2집(오른쪽)과 5집 'Fermata'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가수 부활에 성공한다. 가수 유희열씨는 보컬, 키보드, 작곡 등 다방면에서 뛰어나 음악의 천재라고도 불리워지곤 했다.

▲ 토이를 기억하는가 1994년 1집 '내마음속에'라는 타이틀로 테이프를 발표했던 가수 토이는 2집(오른쪽)과 5집 'Fermata'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가수 부활에 성공한다. 가수 유희열씨는 보컬, 키보드, 작곡 등 다방면에서 뛰어나 음악의 천재라고도 불리워지곤 했다. ⓒ 이정민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사랑받는 가수 유희열씨의 낡은 테이프 재킷 사진도 있습니다. 세 장의 앨범에 담긴 유희열씨의 사연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서울대 작곡가 출신 유희열씨는 당시 서울대 출신의 015B 장호일 정석원, 연세대 원주 출신 윤종신 등과 절친한 관계로, '엘리트 가수'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탤런트 최지우씨는 공중전화 카드에 등장했습니다. 어색한 미소가 그 시대를 담아내는 듯합니다. 특히 최지우씨는 많은 남자 연예인들과의 공개 연애로 온갖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신인 시절의 모습은 풋풋하네요,

 왼쪽부터 탤런트 이미연씨의 모습, 탤런트 김지호씨의 전화카드 공익광고 모델 사진, 1994년 '슈퍼맨의 비야'로 데뷔한 악동 DJ DOC, 탤런트 최지우씨의 전화카드 모델 사진

왼쪽부터 탤런트 이미연씨의 모습, 탤런트 김지호씨의 전화카드 공익광고 모델 사진, 1994년 '슈퍼맨의 비야'로 데뷔한 악동 DJ DOC, 탤런트 최지우씨의 전화카드 모델 사진 ⓒ 이정민


마지막은 탤런트 김호진씨와 닭살커플로 잘 알려진 김지호씨와 '괴물 아이돌'로 유명세를 치른 가수 DJ DOC입니다. 김지호씨는 마치 1990년대 하이틴 영화 주인공 같은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DJ DOC 김창렬·이하늘·정재용씨는 그야말로 악동이네요.

가수 이재훈의 노래 중 '추억이란 간직해야 아름다운 건가봐'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남들은 결혼, 이사 등 이런저런 이유로 추억의 테이프와 손 편지, 사진 등을 모두 버린다고 하지만 전 아직 노총각 신세라 추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가 봅니다. 가끔 비 오는 날 술 한 잔 걸치고 챙겨보는 옛날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제게는 영원히 간직해야 할 아름다운 보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화카드 한 장 가요 테이프 머스트해브 새내기 8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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