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포스터

<도둑들> 포스터 ⓒ 쇼박스

오랜만에 1000만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도둑들>입니다. '어랏?!' 하는 사이에 1100만을 찍더니 <실미도>(1108만) 요원들을 다시 섬으로 보내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습니다. 그 기세로 <해운대>(1145만)로 온 쓰나미를 태평양으로 돌려보내고 4위에 안착했습니다. 이러다가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 깃발을 내리고 3위 메달권, 그리고 <왕의 남자>(1230만)도 퇴근시키고 2위가 될지 모르겠습니다.(영화진흥위원회 24일 집계 기준)

이 글이 결과론적으로 쓰는 글이기에 <도둑들>의 매력을 분석하지만, 고백하자면 솔직히 이전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습니다. 한편으론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특히 <타짜>에서 보여주었던 장점인 '관객을 빨아먹는 순간 연출'을 찾아보기 힘들어 그런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속고 속이는 환상과 매력적 주인공의 활극 

흔히 최동훈 감독을 "충무로의 이야기꾼"이라고 수식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탄탄한 내러티브를 댑니다. 하지만 그의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을 제외하면 내러티브에 기댄 작품들이 없습니다. <타짜>는 '고니'라는 인물의 전기(傳記)이며 <도둑들>은 10명의 캐릭터를 조율하기 위해서 답답할 정도로 인위적입니다. 여기에 <전우치>에서 내러티브를 운운하자면 정말로 민망할 정도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가 그런 수식어를 받은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전우치>라는 잠깐의 외도가 있었지만 최동훈 감독은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범죄의 성공이 아닌 형, 스승, 아버지 같은 상징적 아버지의 복수를 목표로 삼습니다. 그 복수가 범죄자들(등장인물) 중에서 덜 나쁜 범죄자(주인공)와 악질 범죄자(적대자)를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주인공은 복수의 수단으로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범죄의 재구성>과 <도둑들>은 범죄 속에 배신을 숨기고, <타짜>는 화투로, <전우치>는 도술로 속입니다. 그의 영화에서 이 복수를 위한 속임수가 판타지를 만들어내고, 관객들은 이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복수에 성공한 결말은 그 바닥에서 떠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이 주인공들은 츠카사 호죠 원작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처럼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에서 벗어난 '쿨'한 영웅의 모습입니다. 섹시한 젊은 남자로, 매사에 건들거리고, 여자들에게 추근댑니다. 반사회적 인물까지는 아니어도 악동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이고, 재능 있으며, 천재적입니다. 이런 주인공들은 갈등을 액션으로 풀어내고, 그 과정에 밀고 당기는 로맨스를 녹여 대중이 좋아하는 주인공으로 만들어집니다. 오락영화로서 속고 속이는 환상과 매력적인 주인공의 활극이 최동훈 영화의 장점입니다.

최동훈의 판타지와 '케이퍼 무비'의 조합

<타짜> 최동훈 영화의 주인공 고니

▲ <타짜> 최동훈 영화의 주인공 고니 ⓒ CJ 엔터테인먼트


그런데 <도둑들>의 주인공인 마카오 박(김윤석)은 이전 최동훈의 남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입니다. 우선적으로 섹스어필을 할 만한 젊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추근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팹시(김혜수)와 다시 만나는 순애보를 그립니다. 또 악동 이미지가 아닌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무겁고 점잖은 성격이며, 후반 와이어 액션을 제외하곤 적대자와 합을 맞추는 액션도 없습니다.

마카오 박은 주인공의 역할보다는 그동안 최동훈 영화에 쭉 나왔던 백윤식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최동훈이 그렸던 주인공의 모습은 예니콜(전지현)과 첸(임달화)에게 부여되었습니다. 때문에 메인 플롯인 마카오 박-팹시-뽀빠이(이정재)가 3막(부산)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영화가 산만해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헌데 예상과는 달리 <도둑들>이 1000만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최대(어쩌면 유일한) 수혜자가 조연인 '전지현'이라는 점에서 최동훈의 캐릭터가 시나리오의 단점을 덮을 만큼 관객들에게 매력 있게 해석되었다고 보입니다.

1000만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관통하는 어떤 정서가 내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한국영화는 역사적 아픔을 바탕으로 한 민족성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도둑놈들의 '한 탕'이라는 '범죄'에 1000만이 넘는 관객들이 열망했습니다. 최동훈의 판타지와 케이퍼 무비(Caper movie :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조합은 엄청난 폭탄이었던 겁니다.

케이퍼 무비 속 심리는 법이라는 강력한 규제를 무시하고 물질적 욕망을 채우는 것에 있습니다. 특히 돈이라는 것은 사회제도가 만들어낸 것으로 그 어떤 욕망보다 강력한 제제가 걸려있고, 그 규범을 깨려는 욕구도 막강합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부자만 되면 그만이라는 우리의 과오가 만들어낸 현 사회에는 수많은 경제사범들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이 경제사범에 무능력한 국가, 아니 오히려 범죄를 장려(?)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자경단으로 대변되는 정의(<다크나이트 라이즈>)로 극복하려는 의지보다 허무와 포기 속에서 똑같은 범죄(<도둑들>)를 저지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케이퍼 무비가 묘사하는 범행과정에 최동훈의 판타지를 녹임으로써 관객은 덜 나쁜 범죄자(주인공)이 되어 더 악질인 범죄자를 응징한다는 당위성에 동화합니다. 가벼운 웃음에 따라 웃고 응징을 향한 속임수와 액션에 희열을 느낍니다. 즉 그 범죄를 한번쯤 밟아도 괜찮은 욕망으로 만들어줍니다.

감독의 '신의 한 수'... 전지현과 임달화

<도둑들> 한 장면 주인공인 김혜수를 압도하는 전지현의 인기

▲ <도둑들> 한 장면 주인공인 김혜수를 압도하는 전지현의 인기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또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기 위해서는 40대 이상이 반드시 봐야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40대 이상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는가를 찾아봐야 합니다. 저는 예니콜과 챈, 즉 전지현과 임달화가 40대 이상 관객들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고 봅니다.

1997년에 데뷔한 전지현은 한 프린터 광고에서 테크노 춤을 추며 대중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 후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스타덤에 오릅니다. 테크노 춤을 추던 섹시함과 긴 생머리로 대변되는 청순함이 공존하는 배우로서 전지현은 유명해집니다. 그리고 전지현은 신비주의로 컨셉을 잡습니다. 하지만 거듭되는 흥행부진과 신비주의가 만나면서 온갖 설에 시달리고, 급기에 핸드폰 복제사건으로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맡은 배역인 <도둑들>의 예니콜은 극의 활극을 넣는 코믹 캐릭터로서,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 이미지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결혼 후 새댁 이미지가 더해져 친근한 대중적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미지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향수와 '새댁'의 만남으로 만들어낸 친근한 이미지의 반전은 주인공인 김혜수를 이길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임달화와 그가 맡은 '챈'의 만남은 홍콩 전성기인 느와르 영화의 회귀였습니다. 악당으로서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임달화는 늘 거친 액션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아직도 임달화와 주윤발 하면 회자되는 <협도고비>는 임달화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기존 최동훈의 주인공이 갖고 있던 액션과 멜로를 부여받은 조연, '챈'을 임달화가 맡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총을 쏘는 남자의 모습이 40대 이상 남성관객들에게 '바바리코트'와 쌍권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범죄의 재구성> 때는 몰랐으나 이번 <도둑들>의 1000만 관객 동원 흥행을 보며, 최동훈 감독은 케이퍼 무비에 최적화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특징인 속고 속이는 과정에서 그리는 판타지는 케이퍼 무비 속에서 최고로 꽃피우기 좋은 씨앗이며, 탈영웅적인 그의 주인공은 가볍게 보는 오락영화에서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번 <도둑들>에서 주인공의 특징을 찢어서 조연인 예니콜과 챈에게 부여, 그 배역을 각각 전지현과 임달화에게 준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고 봅니다.

적수 없는 <도둑들>, <괴물> 기록 넘어설까

<도둑들>의 한 장면 홍콩 느와르를 생각나게 하는 임달화

▲ <도둑들>의 한 장면 홍콩 느와르를 생각나게 하는 임달화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그 외에도 영화 외적으로 보자면 여름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부재와 킬러 타이틀로 기대되었던 <토탈리콜>과 <알투비 : 리턴투베이스>의 부진을 위시로 딱히 <도둑들>을 잡을 영화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다음 주에 개봉할 <공모자들>과 <링컨 : 뱀파이어 헌터> 역시 18세 등급으로 개봉예정이라 여전히 <도둑들>이 우세할 것 같습니다.

벌써 개봉 1달째가 되어갑니다. 뒷심이 빠질 만도 한데 아직도 예매율 약 2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대로 추석까지 간다면 <도둑들>이 <괴물>의 기록인 1300만을 뚫고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하는 것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그 후 상상이 감히 되지 않을 만큼 대한민국 영화판도가 크게 변할 것입니다. 민족적 알고리즘을 부여하지 않은 최초의 오락영화가 1위를 했다는 점, 포스트 트로이카 감독으로 기대되었던 최동훈 감독의 재평가, 케이퍼 무비 장르의 가능성 등….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될지, 기대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hoohoot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둑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