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서석원 시민기자는 가수 이름을 외우며 한글을 깨쳤고 소년기 한 때 피아노를 쳤으나 장래 아들이 배를 곯을까 염려한 어머니의 결단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며 지금은 평범한 전방위 리스너로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음악 애호가입니다. 현재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필생의 저작을 꿈꾸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양양 정규앨범 2집 '사랑의 노래' 앨범재킷

▲ 양양 정규앨범 2집 '사랑의 노래' 앨범재킷 ⓒ 물고기뮤직


어느덧 여름도 막바지다. 이번 여름은 일일 최고 기온 섭씨 35도를 훌쩍 넘기는 나날이 지속되고, 푸르렀던 강물이 곳곳에서 독소와 녹색으로 뒤덮이는 등 생태적으로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났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과연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될지, 앞으로 해마다 겪게 될 일의 전조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인간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경고가 담긴 현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자연이 뭇 생명들의 '어머니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바야흐로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고사를 떠올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른바 '자연주의' 기운이 충만한 노래들을 불러온 싱어 송 라이터 양양이 최근 두 번째 정규앨범 <사랑의 노래>를 발표했다. 첫 번째 정규앨범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후  2년 8개월 여만에 낸 음반이다.

총 11곡이 실렸다. 자연에 대한 사랑, 챙기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 버리거나 잊혀질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착, 길 위에서 피워 올린 인생에 관한 사유 등이 다분히 '양양'스러운 관조적이고 사색적인 노랫말과 편한 사운드로 표현됐다.

관조와 사색적인 노랫말 그리고 편한 사운드...바로 '양양'스러움

'같이 살자'는 자연과 뭇 생명들에 대한 소중함을 노래한 곡이다. 화자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같이 살자고 이야기한다. 이는 "같이 살자는 건 미안했다는 내 사과야", "숨을 쉬면서도 고마운 줄을 몰랐어" 등의 노랫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그동안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막가파' 개발에 대한 반성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메시지는 "사람들아 잊지를 말자 우리를 키워준 어릴 적 그 동산 꽃과 나무와 바람"이라는 노랫말에 직접 드러난다. 친근한 멜로디와 순한 노랫말로 구성된 이 곡이 억울하게 간 넋들을 위로하는 노래로 읽히는 이유다.

'축배'는 긴 슬픔의 나날을 보낸 후에 얻은 깨달음과 치유에 관한 노래다. "수많은 밤들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아침을 맞이하네"라는 노랫말처럼, 화자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로 인생의 비의(秘意)를 전하고 있다. 즉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인생을 살면서 느끼게 되는 슬픔이나 눈물 역시 예외는 아니라는 얘기다.

곡 중간 중간 출몰하는 이른바 '깡깡이' 연주가 인상적인데, 그 양가적인 소리는 슬픔을 유쾌함으로 승화시키는 어릿광대의 몸짓을 닮았다. 기타와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비트는 정겹고, 하모니카 소리도 좋다. 전반적으로 흡사 모닥불을 피워 놓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작은 음악회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곡이다.

'엄마, 아름다운'은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다. 화자는, "강물 같은 깊은 사랑 마음에 흘러 넘쳐서". "아늑한 겨울 이불 같이 날 감싸주는" 등의 노랫말로 '엄마'의 내리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다분히 진부한 수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림이 있는 건,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관조적인 노랫말에 부응하듯 사운드는 느리고 무겁다. 한때 소녀였을 '엄마'의 모습과, '나'를 위해 '당신 인생'을 양보한 지금 '엄마'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느꼈을 화자의 먹먹한 마음이 반영된 탓일 게다. 특히 감정을 절제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보컬과 낮게 깔리며 심금을 파고드는 첼로 소리가 속을 아리게 만든다.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녀들의 엄마 앞에서 이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여행자'는 여행에 대한 상념을 담은 곡이다. 화자는 걷고 또 걸으면서 푸른 바다와 수줍던 강과 화자를 보며 웃어주던 사람과 말이 없던 새벽을 만난다. 하지만 이 모든 만남은 결국 "지도에는 없는" 또 다른 자신의 마음을 찾아가는 길로 통한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얻은 것은 "돌고 또 돌아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게 되는 게 살아가는 거라는" 깨달음이다.

기타와 첼로가 빚어내는 따뜻한 사운드는 단순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눈을 감고 들으면 목가적인 분위기 물씬한 오솔길을 호젓하게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바야흐로 걷는 여행이 각광을 받는 시대인 만큼 햇빛 맑고 바람 신선한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들으면 좋을 만한 곡이다.

'정답은 사랑'은 차갑고도 외로운 심장들에게 사랑하며 살자고 이야기하는 곡이다. "차갑고도 외로운 심장"이란 "서로를 보지 못해서 연약하고 서글픈 사람"들, 즉 "아무 것도 나눌 수 없어서 어리석고 서툰 우리들"을 가리킨다. 화자는 이런 순간에 필요한 것이 사랑이고 노래고 '시'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결국 양양이 추구하는 노래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드럼과 키보드가 쓰인 밴드 사운드는 산뜻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데, 여기 실린 첼로 연주가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랑은 애틋한 눈길로 모든 걸 보는 거야"라는 노랫말이 강한 임팩트를 남긴다.

'이렇게 흘러가네요'는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은 없는지 지긋이 묻는 곡이다. 화자는 "하루하루 이렇게 살다보니" 소중한 것들을 무심코 흘려버리거나 자꾸 잊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노랫말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여기서 "이렇게 살다보니"란, 아마도 필요 이상 바쁘고 필요 이상 많이 일하는 지금 한국인의 평균적인 삶을 가리키는 말일 듯하다.

양양은 "잊고 있던 너의 노래를 들려주세요 흘려버린 그대 기억을 얘기해봐요"라며, 청자에게 삶이 흐르는 너머로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찾아볼 것을 권유한다.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피아노가 끌고 기타가 받쳐주는 곡 전개는 잔잔하고 느리다. "이렇게 흘러가네요 잊고 또 흘러가"라는 읊조림으로 노래를 마무리짓는 양양의 보컬이 장탄식처럼 다가오는 곡이다.

'단풍'은 단풍의 유래에 관한 우화를 담은 곡이다. 화자는 때묻지 않은 아이의 눈으로 본 단풍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구가 없어서 슬펐던 나무를 비가 안아주자 나무가 너무 기쁜 나머지 볼이 빨개져서 단풍이 되었다는 천진한 상상력이 사랑스럽다.

사운드에서는 멜로디언과 우쿨렐레 소리가 눈길을 끈다. 물방울처럼 정겹게 튕기는 우쿨렐레 소리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정겨운 멜로디언 소리는 이미 어른이 된 이들에게 여남은 살 무렵 향수를 선사할 듯하다.

한편 곡 전반부에 삽입된 여자 어린이의 가창 부분은, 이 곡을 김창완의 '꼬마야', 예민의 '아에이오우' 등의 노래와 같은 이른바 '성인을 위한 동요'의 맥락에 놓게 만든다.

'오늘의 주제는'은 '사람'이라는 말에 대한 단상을 담은 곡이다. 화자는 "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고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서로 "잡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는 우리는 별처럼 멀리" 떨어져 존재하고, 또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비트와 정유종의 코러스는 흡사 과거 민중가요 시대의 구전가요 같은 느낌을 주고, 양양의 보컬과 일렉트로닉 기타가 빚어내는 구성지면서도 끈끈한 분위기는 블루스의 느낌을 준다. 한편 "오늘의 주제는 사람 사람입니다"라는 노랫말이 이 곡을 열고 닫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데. 양양은 소재만 바꿔서 '오늘의 주제는 ㅇㅇ입니다' 라는 식으로 연작을 이어가도 좋을 것 같다.

'사랑의 노래'는 사랑에 관한 아포리즘을 담은 곡이다. 화자는 "말보단 하나의 웃음", "말보단 하나의 몸짓", "답이 없는데 절로 고개 끄덕여지는 마음", "길을 몰라도 흘러서 만나는 마음의 바다" 등 노랫말을 통해 나름대로 사랑을 '정의'하고 있다.

이는 필시 화자가 사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로 보이는데, 이를 종합해보면 그가 바라는 사랑은 '이심전심'(以心傳心)에 가까운 것이다. 기타와 플루트가 사용된 사운드는 평화롭고, 사랑에 취한 듯 나른한 양양의 보컬은 편안함을 자아낸다.

'길'은 길 위에서 피워 올린 인생에 관한 상념을 담은 곡이다. 화자는 "바람 부는 대로 상념 흘러가는 대로" "인생의 길 위를 걸어가고 있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랫말과는 달리 그는 온전하게 본능과 직관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는 노랫말에 담긴 이 곡의 주제가 본능과 직관보다는 이성 및 당위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람 부는 대로 상념 흘러가는 대로 걷는 인생이란 화자의 희망사항인지도 모르겠다. 기타와 키보드를 쓴 사운드는 단조로운 편이고, 양양의 보컬은 독백에 가깝다.

'잊지마 널 응원해'는 외롭다고 슬프다고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을 위한 곡이다. 화자는 말한다. 비가 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새들, 마침 불어오는 바람 등이 "온 우주"가 우리들을 감싸주고 또 위로해 주고 있다는 증거라고.

그래서일까?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슴에 멍이 하나씩은 들었을 거라고, 또 가슴에 구멍이 하나씩은 생겼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화자의 태도가 '쿨'하게 느껴진다. 경쾌한 록 사운드가 이런 노랫말과 잘 어울리는데,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 중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다.

이번 앨범은 지난 1집과 비교했을 때, 보컬과 악기 구성 등 사운드 색깔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축배', '엄마, 아름다운', '단풍', '오늘의 주제는' 등에서 볼 수 있듯 개성 있는 멜로디의 곡들이 늘었다.

노랫말 역시 자연, 어린이, 길, 여행, 사랑, 인생 등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1집에서 보여주었던 관심사와 큰 차이가 없지만, 그동안 쌓인 연륜 탓인지 인생에 대한 사유에서는 변화가 읽힌다.

이를테면, 청자를 향해 시련이 있어도 "가슴 펴고 일어서자"거나 "다시" "씩씩하게 시작하자"며 같이 '으쌰으쌰' 했던 분위기(1집, '위풍당당')가 2집에서는 '잊지 마 널 응원해'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전하는 위로로 바뀌었다.

또,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바라는 건 뭘까"('길 위에서') 등 1집에서 '물음표'로 종결됐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2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돌고 또 돌아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게 된단 걸 떠나보니 알게 되었지"('여행자') 등의 노랫말이 그것들이다.

양양의 슬로 라이프를 체험할 수 있는 노래들...사회에 대한 냉소도 담겨

1집과 2집 사이를 통과하는 시간 동안 양양은 분명히 성숙해졌고, 딱 그만큼 기운이 빠진 것처럼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인간 사회에 대한 냉소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그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확히 알 길은 없으나 막연하게나마 상상할 수는 있다. 첫 번째 트랙 '같이 살자'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4대강 사업 등 대형 토목공사 때문에 사라진 무수한 자연과 생명들을 떠올리게 되고, 두 번째 트랙 '축배'에서는 "말로는 달랠 수가 없었기에 침묵"했다거나 "침묵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노랫말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시의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쨌든 양양의 노래를 듣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위로를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된다. 어휘력이나 표현력은 다소 평범하고 심심하지만, 그녀가 직접 쓰고 부른 노래를 듣다 보면 그녀의 '슬로 라이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소중히 여기고 또한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보편적인 인간 내면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별 차이가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양양의 강점은 이렇듯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과 사유를 멋 부리지 않고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데 있다.

양양 사랑의 노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