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은 공식석상에서 '복수'라고 말했다. 이 복수는 배우 이정재에 대한 복수였다. 당시 이정재가 최동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재구성>을 거절했다는 이유였다.

영화 <도둑들> 인터뷰 자리에서 이정재는 "실은 처음에 약간 주저했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물론 최동훈 감독과 영화를 꼭 하고 싶었다는 바람은 있었다고 했다. 이 고민은 다름 아닌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뽀빠이 역을 바라보면서 캐릭터가 뭔가 모자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좀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한 번 더 읽으면서 '뽀빠이는 굉장히 과한 인간의 욕심이 담긴 인물이구나' 하고 느꼈죠. 물욕이 굉장히 큰 인물이죠. 요즘 다들 힘들게 사는 상황에서 이 캐릭터가 맞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느낌을 극대화 시켜서 하면 재미있을 수 있겠더라고요."

'도둑들'의 반전은 뽀빠이로부터 출발했다


분명 뽀빠이는 영화 속 다른 캐릭터에 비교해보면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있다. 팀의 리더라고는 하지만 마카오 박(김윤석 분)에겐 열등감이 있고, 잠파노(김수현 분)처럼 어리고 매력적인 청년도 아니며, 펩시(김혜수 분)와 예니콜(전지현 분)과 같이 섹시하고 개성 강한 인물도 아니다.

이정재는 나름의 복안이 있었다. 최동훈 감독과의 대화에서도 그랬고 뽀빠이라는 도둑의 특징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였다. 영화 초반과 중반까지 뽀빠이는 의리파 도둑인지 혹은 배신의 아이콘인지 분간이 안 되게 묘사된다. 여기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분명 뽀빠이의 배신자 같은 면은 연출자 입장에선 다 알고 있으니 처음부터 의도를 해놓고 썼겠지만 전 그걸 뒤에 놓게 됐어요. 그러니까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배신을 할 수 있는 인물인 거지 처음부터 배신을 염두하고 보이려고 하지 않은 거죠. 욕망에 근거해서 나온 게 배신이겠구나 생각했죠."

이정재식으로 해석한 뽀빠이는 노력파 도둑이었다. 비교하자면 반에서 1등은 하고 싶은데 공부 방법을 잘 몰라 시간에 비해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 이런 말을 하니 이정재는 "머리는 나쁜데 굉장히 집중력이 있는 남자"라고 답했다. 그렇다. 어찌 보면 뽀빠이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인물일 법 하다. 나쁜 놈 뷰류에 속하지만 왠지 주변에 가장 많을 것 같은 나쁜 놈 정도 되겠다.

최동훈 감독이 신뢰받는 이유..."그는 준비하는 남자다"


캐릭터 얘기만 해도 몇 시간은 함께 보낼 수 있을 법했다. 고민의 지점을 얘기하면서도 일관된 점이 있었다면 바로 최동훈 감독에 대한 신뢰였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톱 배우들이 하나같이 최동훈 감독을 신뢰했고 현장 분위기 또한 그만큼 좋았다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심지어 전지현은 최동훈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배우 입장에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걸 편하게 생각해요. 방향성을 지정해주면 우린 거기에 집중할 수 있죠.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감독이 '이 감정도 맞고 저 감정도 맞고 적당히 해주세요' 이러면 배우 입장에선 힘들 수 있거든요.

근데 최동훈 감독은 '딱 이 느낌이에요. 시나리오 쓸 때 이렇게 썼어요!' 이렇게 말하죠.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느낌을 딱 알고 잘 써놓았고 촬영해 나가면서 그걸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죠. 그래서 배우도 연기하는데 자신감도 생기고 에너지가 좀 더 세질 수 있어요."

어디 시나리오뿐이겠는가. 이정재가 바라본 최동훈 감독은 캐릭터에 맞는 캐스팅을 할 줄 아는 감독이었다. 또한 스태프나 다른 배우들이 불필요한 일을 덜하게끔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스타일이란다.


"사전 기획 단계에서 준비를 굉장히 꼼꼼하게 잘하더라고요. 준비한 대로 찍으면 되니 스태프와 배우도 좋은 거죠. 예산도 정해진 선에서 맞춰 찍을 수 있고. 본인이 준비한 걸 일사불란 하게 잘 찍기도 하고, 후반 작업에서는 또 귀를 열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요.

참 뭐라고 할까. 저 역시 영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감독의 저런 방식을 연기에 차용할 수 있지 않나 생각도 해요. 저도 물론 매번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방법론에서 틀릴 때도 있거든요. 그 열심히라는 한계를 넘어가야 하는데 앞으로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감독은 좋은 배우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이정재의 말을 통해 본 최동훈 감독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출자였다. 동시에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이정재 역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로 느껴졌다. 영화 <도둑들>을 처음 본 순간 강력한 캐릭터들에 눈에 확 들어오는 배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 이상 보면 아마 이정재의 뽀빠이가 눈에 크게 다가올 것이다. 이건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