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조연', 언제부턴가 연기 잘 하는 조연배우들을 수식어가 된 그 이름. 허나 배우들을 직접 만나보면, 하나 같이 손사래를 치는 단어가 바로 명품조연이다. 분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만의 캐릭터를 성실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있어 '조연'이란 한계를 먼저 지우는 것은 분명 야속한 일일 게다.

2012년 여름, 브라운관이 완성도 있는 드라마들로 떠들썩한 가운데 '원톱'은 아니지만 극을 떠받치는 연기력으로 그 존재감을 짙게 드리운 배우들 또한 풍성해졌다. 4회를 넘긴 <골든타임>과 섬뜩한 리얼리티로 사랑받는 <유령>, 30%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국민드라마로 승승장구 중인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종영 이후 더 큰 반향을 일으킨 <추격자>까지.

정치를 경유한 정통 드라마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를 연상시키는 의학드라마, 현실 반영적인 스릴러와 정치를 경유한 정통 드라마와 웃음과 눈물을 '동시상영'하는 가족극까지 성찬을 이룬 장르에서 주목해야 할 이름들은 바로 이성민·곽도원·이희준·조재윤이다.

이름이 낯설다고? 혹여 이름보다 얼굴이 친숙할 수 있는 이 배우들은 이미 다수의 시청자들은 물론 관계자들에게까지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개성 넘치는 연기력'과 '연극'이란 공통분모를 지닌 이들을 이제 '대세배우'라 불러보자.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BC월화미니시리즈 <골든타임>제작발표회에서 외상외과 교수 최인혁 역의 배우 이성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MBC월화미니시리즈 <골든타임>제작발표회에서 외상외과 교수 최인혁 역의 배우 이성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드라마 세 편으로 주연까지, 2012년의 배우 이성민

2012년을 장식한 <브레인>과 <더킹 투 하츠>, 그리고 <골든타임>의 공통점은?

해를 넘겨 방영된 <브레인>과 20부작 <더킹 투 하츠>에서 얄미운 의사 고재혁과 입헌군주제 산하 대한민국의 인간미 넘치는 국왕을 연기한 이성민이 그 주인공. 고작 두 달 만에 그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골든타임>에서 그는 응급 수술로 사람을 살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최인혁 역할로 생애 첫 미니시리즈 주인공이라는 영애를 안았다.

2006년, 조촐한 성적을 거둔  독립영화 <비단구두>가 공개됐을 때, 가장 빛났던 배우 역시  이성민이었다. 극단 차이무 출신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한 이 작품에서 이성민은 인간적인 조폭 성철을 연기하며 연극에서 영화와 브라운관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연극에서 영화로 넘어온 실질적인 데뷔작에서 맛깔 나는 대사처리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선보인 이성민은 빠르게 < Mr. 로빈 꼬시기> 등에 캐스팅 됐고, 특히나 1998년 <고고70>의 팝칼럼니스 역을 맡아 '신스틸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TV 활동도 병행한 그는 <대왕세종> <트리플> <온에어> 등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비췄고, <파스타>의 얄미우면서도 귀여운 사장 설준석 역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과 같은 의미 작품은 물론 <보통의 연애> <동일범>과 같은 KBS 단만극, <늘근도둑이야기>와 < B언소 >와 같은 연극무대에도 부지런히 출연한 그는 아마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 1월, 영화 <범죄와의 전쟁> 개봉 직전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한 곽도원.

지난 1월, 영화 <범죄와의 전쟁> 개봉 직전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한 곽도원. ⓒ 이정민


검사에서 형사로, 소지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곽도원

대선배 최민식이 "소주 7병을 마시는, 그저 연기 잘하는 연극배우"인줄 알았다는 곽도원. 그에게 있어 2012년 500만 명을 동원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야 말로 인생의 전환점이 아닐 수 없을 터. 관객들이 "진짜 검사 아니냐"며 수근 댔던 이 39살 배우는 그러나 일찌감치 연희단 거리패에 몸담으며 연기를 갈고 닦았다.

유명 연극 연출자인 이윤택 선생이 메가폰을 잡은 <오구>에 조영진을 비롯해 연극판 동료들과 출연한 것이 2003년. <좋은 놈 나쁨 놈 이상한 놈> <마더> <아저씨> 등에서 배역 만으로는 가물가물한 단역을 거친 그는 <황해>에서 하정우에게 살해당하는 교수 역을 거쳐 <범죄와의 전쟁>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드라마 <유령>이 왔다. "통잔 잔고보다 인지도가 절실했다"는 곽도원에게 <유령>의 '미친소' 권혁주  캐릭터는 톱스타 소지섭과 나란히 설 운명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소지섭도 웃기는 애드립을 탑재한 이 곽도원이야 말로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에서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많은 여백의 배우다. <시실리 2km> <차우> 신정원 감독의 차기작 <점쟁이들>에서 심인 스님 역할로 웃음을 예고한 곽도원을 기대하는 이유, 명백하지 않은가.

 지난 3월 말 영화 <화차>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오마이스타와 만난 이희준.

지난 3월 말 영화 <화차>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오마이스타와 만난 이희준. ⓒ 이정민


'드라마스페셜'의 남자에서 '대세남'으로, 이희준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톱스타에 올라서기 전, 이선균은 KBS와 MBC 단막극의 단골배우였다. 원톱 주연이 된 이후에도 그는 <조금 야한 우리 연애>로 2010년 재개된 KBS 드라마스페셜의 첫 테이프를 끊기도 했다. 이선균의 한국예술종합학교 후배인 이희준 역시 2011년에만 <완벽한 스파이>, <큐피드 팩토리>, <동일범>에 연이어 출연하며 "드라마스페셜의 발견"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무뚝뚝 순정남 천재용을 통해 미혼여성들의 '대세남'으로 떠올랐다. 이미 판박이와도 같은 캐릭터인 <큐피드 팩토리>의 작곡가 소준 역을 통해 천재용의 워밍업을 거친 이희준은 2010년 <부당거래>를 출발로 <특수본> <화차> <차형사>에서 작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1979년생인 이희준이 이성민과 곽도원의 후배라는 사실. 대구의 작은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 연희단 거리패와 차이무를 거치며 연기력을 쌓아왔다. 인기의 척도라는 단독 광고까지 찍은 이희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당신' 중 한 자리는 분명 이희준의 몫이다.

 SBS월화드라마 <추적자>에서 박용식 역의 배우 조재윤이 지난 6월 26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공원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SBS월화드라마 <추적자>에서 박용식 역의 배우 조재윤이 지난 6월 26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공원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리고 <추적자>의 '용식이' 조재윤

아직 대세라고 부르기엔 쑥스러운 배우 조재윤. 그의 필모그래피의 팔할은 '조폭'이나 '나쁜 놈'이다. 하지만 <추적자>에서 백홍석을 돕는 용식이는 말 그래도 '착한 조폭'으로 거듭나는 캐릭터다. <맹모삼천지교>에서 손현주의 연기를 패러디해 재해석했다는 그의 전라도 사투리 연기는 분명 진중하기 짝이 없는 <추적자>의 활력소가 자리 매김 했다.

물론 분량이 커지고 '조형사' 박효주와의 러브라인이 생긴 것도 분명 그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작용했을 터. 연기와 더불어 미술을 공부해 무대 미술에 어린이 연극 연출까지 거쳤다는 그의 생활연기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손현주·강신일 등 공인된 연극계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제 몫을 120% 다 해낸 조재윤 역시 동갑내기 곽도원과 함께 2012년 SBS 드라마가 발굴한 배우로 우뚝 섰으니. 설령 차기작에서도 조폭이나 범죄자면 어떠한가. 이제 조재윤의 40대를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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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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