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코너가 있었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전유성을 일반 사람들이 웃기는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코너. 참가자들은 전유성을 웃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막말을 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자신을 아낌없이 '망가뜨린다'. 그런데 전유성은 웃지 않는다. '쟤 지금 뭐하고 있냐'라는 표정만 짓는다. 망가진 참가자가 안쓰러울 정도.

그런데 간혹 전유성이 웃음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정말로 전유성이 재미가 있어서 웃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웃음은 정말로 웃기다기보다는 '어이없음'이 담긴 웃음이었다. 자신을 웃기려고 갖은 짓을 다하는 참가자를 안쓰러워하며 '그래, 좋다'식으로 씩 웃어준 것이다. 어쨌든 그 참가자는 '웃지 않는 전유성을 웃긴' 사람이 된다. 실소면 어떤가, 웃긴 건 웃긴 거 아닌가!

박진영의 영화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은 <5백만불의 사나이>를 보는 내내 나는 이 영화가 마치 '전유성을 웃겨라!'에 등장하는 참가자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어떻게든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웃음이 나올 타이밍을 스스로 끊어버리면서 결국 '실소'로 마무리 짓게 만든다.

설마 관객의 '실소'도 웃음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든 것일까. 어쨌든 웃긴 건 웃긴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긴장감 넘치는 코믹 추적극을 표방한 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로 영화에 데뷔한 박진영

<5백만불의 사나이>로 영화에 데뷔한 박진영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돈 5백만 불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추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상사 한상무(조성하 분)의 명령을 받고 로비자금 5백만 불을 운반하던 대기업 부장 최영인(박진영 분)은 괴한의 습격을 받고 간신히 살아남는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한상무가 괴한을 시켜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것을 알게 된 최영인은 5백만 불이 든 돈가방을 들고 도망치게 된다.

한상무는 조폭 두목 조 사장(조희봉 분)과 함께 영인을 잡으려 한다. 영인은 우연히 고등학생 미리(민효린 분)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데, 미리는 원조교제를 하려는 깡패 필수(오정세 분)의 돈과 소지품을 훔쳐 달아나던 중이었다. 그 소지품 속에는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었고 필수는 미리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영인은 조폭과 깡패들, 그리고 경찰들에게까지 쫓기게 된다.

줄거리를 대충 살펴봐도 이 영화는 긴장감 넘치는 코믹 추적극을 표방한다. 서로가 서로를 쫓아다니고 각각의 그들이 어느 순간에 하나가 되면서 난장판이 벌어진다. 그 상황에서 주인공은 여러 가지 위기를 맞이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묘한 기지로 위기를 벗어나고 끝내 추격과 난투극 끝에 사건이 마무리되는, 추적극의 공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영화가 <5백만불의 사나이>다.

여기에 코믹이 들어간다. 엉뚱한 해프닝이 벌어지고 그 상황에서 등장인물이 날리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웃음을 계속 유발한다. 그게 우리가 바라던 <5백만불의 사나이>였다.

재능있는 배우들, 괜찮았던 박진영, 그런데...

 조희봉(왼쪽)과 조성하의 연기도 괜찮았다.

조희봉(왼쪽)과 조성하의 연기도 괜찮았다. ⓒ CJ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우려했던 박진영의 연기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물론 어색한 부분이 군데군데 나오기는 했지만 첫 영화 데뷔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어색함은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 박진영은 다행히 괜찮았다.

따뜻함과 비열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조성하, 무서운 두목이지만 '허당'의 풍모를 보이는 조희봉, 어떻게든 '가오'를 잡으려고 촐싹대는 오정세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만 보면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충분히 그 재능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웃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억지로 전유성을 웃기려는 참가자의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불행히도 영화는 상황극의 공식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고 말로만 웃기려는 우를 범했다.

상황극은 이름 그대로 '상황'으로 극을 이끌어야 한다. 상황 자체가 극의 긴장감을 줘야 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웃음을 유도해야 한다. 헌데 <5백만불의 사나이>는 이런 긴장감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도망가고, 쫓는 것에 연속일 뿐이다.

대사로, 그리고 박진영의 캐릭터만으로 웃음을 지나치게 유도하는 것도 이 영화의 큰 단점이다. 이 영화에서는 박진영의 외모를 가지고 웃음을 유도하려는 대사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국적 외모의 박진영을 보고 '외국인 노동자'로 취급하고 경찰에 돈 가방을 가지고 오는 그에게 한 경찰관이 "싸와띠깝?"이라고 인사하는 장면 등으로 영화는 어떻게든 관객을 웃기려 한다.

"나 원래 가수였어?" 이건 갑자기 왜 나와?

 깡패 필수 역의 오정세(오른쪽)

깡패 필수 역의 오정세(오른쪽) ⓒ CJ엔터테인먼트


가장 황당한 것은 미리에게 최영인이 하는 대사다.

"나 원래 가수였어."

물론 박진영이 맡은 배역이기에 이 대사가 나온 것이겠지만 영화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아무런 복선도 제공하지 않는 무의미한 대사를 영화에 넣은 점은 이 영화가 이렇게라도 관객을 웃기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우려를 확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5백만불의 사나이>는 정말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었다. 박진영이라는 이슈 메이커, 조성하-조희봉-오정세로 이어지는 연기파 배우들의 포진, 5백만 불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한바탕 승부라는 스토리까지. 하지만 영화 속 내내 보이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이 정도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웃겠지'라는 안일함이 이 좋은 재료를 망친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요즘은 꼭 전유성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도 웃기기가 쉽지 않다. 세파에 웃음을 잃었다기보다도 이전에 본 식상한 개그 코드로는 더 이상 웃음을 유도하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개그맨들이 머리를 쥐어짜는 이유도 바로 새로운 개그 코드를 찾기 위해 고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영의 외모를 운운하는 '안일한' 방식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영화에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할 수 있을까? 코믹 상황극이라는 장르에 충실하지 못하고 결국 엇박자를 낸 <5백만불의 사나이>. 배우들의 연기력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가 될 듯하다.

5백만불의 사나이 박진영 조성하 조희봉 오정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