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내 아내의 모든 것>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CI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영화<내 아내의 모든 것>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CI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인터뷰 말미 이유진 대표가 던진 한 마디의 말이 있었다. "겸손하게 다뤄주세요" 이 말은 인터뷰를 마치고도 이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10년이 넘은 영화제작사라도 큰 흥행작 한두 편이 나올까 말까 하는 게 현실이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자리 잡은 요즘 충무로. 물론 최근엔 영화 제작만으로 회사를 10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졌다는 분위기다.

사실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는 그간 대부분 승승장구해왔다. 기라성 같은 제작사들이 대흥행작을 내놓거나 종종 큰 손해를 볼 때 이유진 대표가 기획, 선택한 영화는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 흔히 말하는 대박과 쪽박 사이인 '중박'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엔 제작자로서 한국 영화를 생각하는 진정성이 담겨있어 보였다. 영화사 집을 설립한 후, <그 놈 목소리> <행복> <전우치> <내 사랑 내 곁에> 등으로 호평을 받아왔고, 최근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크게 터뜨렸다지만 그 혼자서 영화를 해나갔던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이 지난 5월 17일 개봉했고, 7월 현재까지 45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고 있다. 역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흥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개인과 회사의 입장에선 분명 환호할 일이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선 또 생각이 다를 수 있었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영화제작사의 현실 때문이었다.
 영화<내 아내의 모든 것>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자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영화<내 아내의 모든 것>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자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이정민


<내 아내의 모든 것>의 공...한국 영화 관객층 넓혔다

우선 영화에 대한 질문은 피할 순 없었다. 분명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흥행 저력은 관객층을 넓혔다는 데에 있으니까. 영화를 찾은 관객이 20대부터 4, 50대까지 고른 관객 분포였다는 건 한국 영화 전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론 넓힌 거 같아요. 4, 50대 분들도 영화를 찾으실까 사실 걱정했죠. 사랑이야기라는 게 20대 초중반의 아기자기함이 주류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 영화는 결혼 이후 이혼 이야기가 나오고 해서 어떤 관객층을 목표로 삼을지 고민이 컸어요. 일단 제가 봤을 때 재미있었기에 진행을 했고, 로맨틱 코미디(로코물)의 외피를 썼지만 관객 분들도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공감하신 거 같아요. 다행인 거죠.

또 하나는 보통 남성이 로코물에 관심을 안 갖는데 영화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남자 스태프들이 '내 와이프들이 이렇다!'며 반응이 왔었어요. 남자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공동제작한 수필름의 민진수 대표는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영화가 잘 되다 보니 요즘은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고맙다고 말하고픈 심정"이라고 말이다. 이 얘길 전하니 이유진 대표는 영화 <전우치>를 했을 당시 일화를 전했다.

"5년 전 <전우치>를 할 때 기록적인 폭설이 왔어요. 무대인사 때마다 눈이 왔죠. 관객이 많이 떨어지겠다고 생각 했는데 안 떨어지더라고요. 한 명 한 명 절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내 아내...>도 스크린을 확 장악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이게 다 관객의 힘이거든요. 이제 8주차 상영인데 누가 영화를 봤다고 하면 기뻐요. 몇 번을 더 봤는데 좋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고요. 일반인 반응을 보니 이 영화를 15번 본 분도 있더라고요(웃음)."
 영화<내 아내의 모든 것>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자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영화<내 아내의 모든 것>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자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제작 진출?..."특별한 계기보단 무거운 엉덩이!"

이유진 대표는 본래 잘나가던 '광고쟁이'였다. 7년차 광고인이었던 그는 1997년 돌연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단다. 영화에 대한 큰 포부를 가졌던 것도 아니고 단지 변화와 재미에 대한 바람이 있었던 것. IMF 직전 상황에 스물아홉의 유망주였던 그는 돌연 광고일을 포기하고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에게 영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사>라는 영화의 마케팅을 처음에 맡았어요. 완전 다르더라고요. 광고만 해도 나름 전문직이고 분업화 돼서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데 이건 일당백을 해야 했어요. 짐 나르기부터, 카피도 쓰고 콘셉트를 잡아 홍보도 맡았죠. 여기에 예산도 짜야하고 매니저, 기자도 만나야 하고 게다가 성격도 좋아야 하고! (웃음) 전인적인 사람을 원하는 곳이구나 생각했죠.

광고일이란 게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자와 만나게 하는 거라면 영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끝까지 가는 거더라고요. 광고는 한 달이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잖아요. 시나리오 언제 나오는지, 마냥 기다린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 앞에서 무기력함이 컸던 거 같아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영화 제작이라는 게 매일 시간은 투자하지만 무엇이 돼가고 있는지 당장 확인할 수 없었기에 말이다. 또 작품 단위로 시간이 가는 만큼 한 작품을 하면 1년, 2년은 '휙' 하고 가버리는 게 또 영화 일이었다고. 그런지가 벌써 15년이 지나고 있었다.

"제가 엉덩이는 무거워요. 하나를 하면 곁눈질을 잘 안하는 편이죠. 영화 제작의 매력이요? 일을 시작했을 당시엔 너무 힘들었지만 결정적 계기는 성취감이었어요. 광고는 아무리 잘해도 내 것 같지가 않았는데 영화는 '내가 해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성취감은 돈과 상관없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감독님 스태프들도 다 함께한 결과지만서도 해냈다는 그 성취감은 광고와 비교할 수 없었죠. 그걸 맛보니 떠날 수 없던데요. 당시 했던 <정사>라는 영화도 잘됐었어요. 서울극장에 사람들이 줄 서 있던 시절이었죠. 그때 연봉이 제가 광고계 신입사원 할 때 받았던 것 정도였고 그 이후로 2년 이상 변하지 않은 거 같은데 그거랑 상관없이 기쁘고 좋았어요. 관객들의 반응이 오고 곧바로 보람이 왔죠."

그 느낌, 그 기분이 지금까지 이유진 대표가 충무로에 남아있게 하는 이유일 법했다. 안정되고 안주하게 되는 순간 변화를 찾는다는 그의 성격을 미루어 보자. 열정을 쏟고 영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의 모습에서 이 판에서 가야 할 길, 해내야 할일이 많이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유진 대표에게 그간 꾸준한 흥행에 대한 비결을 물었다. "매 작품 마다 배우죠. 반성이든 각오든 간에"라는 답에 우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역시 작품을 할 때마다 힘들고 할 때마다 모르겠고 불안하단다. 불확실성에서 확신을 찾는 과정. 그것이 바로 제작자의 역할이 아닐까.

다음 인터뷰 편에서 이유진 대표와 함께한 더 자세한 영화 제작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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