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망루

불타는 망루 ⓒ 연분홍치마


영화 <두 개의 문> 개봉 시점이 절묘하다. 자본주의 모순이 곪을대로 곪아  공황을 겪고 있는 이때 정갈한 역사 기록물이 개봉됐다. 영화는 2009년 1월 20일 추운 겨울날 용산 남일당 망루에서 시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불에 타서 죽은 용산참사와 재판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 긴박했던 날이 영상으로 잘 기록되어 있고 영화로 정리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영화는 참사가 일어난 원인이 경찰에게 있는지 시위자들에게 있는지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물론 지금으로선 밝힐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재판 과정의 경찰 진술을 사건 현장을 촬영한 사람들과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을 추적할 뿐이다. 경찰도 그날 참사의 희생자로 보기 때문이다. 참사 희생자들에게는 죄송스런 말일 수 있으나 그것이 좀더 넓은 시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아마도 답답함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 것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땅에서 건물 꼭대기 위 망루에 올라간 시민들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의 충돌 속에 훨훨 뻘건 불길이 치솟는데, 망루 안의 상황은 전혀 모르면서 아주 사무적이고 메마르고 느긋한 목소리로 지휘관이 명령하는 확성기 소리가 연출하는 광경이었다. 아! 망루가 불타는데, 그 메마르고 느긋한 목소리. 아! 자신도 정신적 공황상태를 경험하면서 생지옥이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진압이라는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암흑으로 뛰어들었던, 망루로 뛰어 들었던 경찰 특공대. 아! 시민의 안전을 위해 출동했다는 경찰 앞에서 불타 죽어간 시민 5명과 특공대 1명. 그야말로 대한민국 사회의 본질을 보여준 참사를 영화는 잘 담고 있었다.

 공황상태로 진압작전을 펼치는 경찰특공대

공황상태로 진압작전을 펼치는 경찰특공대 ⓒ 연분홍치마


감독들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해한 내용을 생각하면 그들은 참사가 왜 생겨났는지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날카로운 시각을 지녔다. 영화 내용에 담긴 것을 보면 이렇다. 용산 개발지역에서 쫓겨나게 생긴 사람들과 그들의 생존권 투쟁을 연대하러 온 사람들이 망루에 올라간다. 경찰은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과 다르게 망루 설치 하루 만에 특공대를 투입한다. 고위 간부들은 망루에 위험물질이 있는 줄 알면서도 특공대에는 알리지 않는다.

테러진압을 위해 특수훈련을 받은 특공대는 자신들도 위험한 상황임을 인지하면서도 진압을 계속한다. 명령이니까. 무리한 진압에 사람들이 불타 죽는다. 무리한 진압의 비난 때문에 정권의 존립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원군 검찰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가족의 동의도 없이 후딱 부검을 하고는 망루 안 상황과 경찰의 그날 작전수행이 담긴 수사기록 열람과 등사를 거부한다.

청와대는 성난 민심과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군산 연쇄살인 사건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지침을 내린다. 검찰은 생존권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폭도로 몰고 징역형을 구형한다. 법원도 검찰의 구형을 그대로 받아서 선고한다. 너무나 신속하고 너무나 잘 짜여진 매끄러운 사건 해결의 모습 아닌가? 우리는 용산참사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무엇을 위해 망나니의 칼을 휘두르는가?

용산개발사업은 삼성, 롯데, 코레일, SH공사, 국민은행, 미래에셋 등 대한민국의 온갖 대자본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21세기형 엔클로저 운동의 결과가 바로 용산참사였던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는 장소에 시민들이 생존권 운운하며 깔짝대는 모습을 국가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고도로 훈련된 대테러 부대를 출동시켜서 진압한 것이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 두 명.

'시민의 안전'을 위해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 두 명. ⓒ 연분홍치마


김대중 대통령 때도 노무현 대통령 때도 그랬다. '시민의 안전'이 아니라 '자본 이윤추구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노조 농성장에, 생존권 투쟁현장에 투입되는 경찰특공대 자신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사실은 '자본 이윤추구 특공대'인 것이다. 그래서 자본의 이윤 추구에 거슬리는 집단행동을 보이는 곳에 출동하는 것이며, 그들을 테러범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을 영화는 이해할 수 있도록 신문기사들과 영상들을 배치하고있다는데 훌륭함이 있다. 단지 김석기의 과잉충성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라서 일어난 참사는 아닌 것이다.

그럼 용산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해결책은 무엇인가? 영화는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진 않으나 행간에 숨겨놓고 있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이 위협당하고 터전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기에, 국가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경찰을 동원하여 진압하고 검찰 법원 등 사법기관을 통해 형벌을 집행할 것이기에, 해답은 오직 '하나의 문'만 있다.자본주의를 뒤엎는 것. 이런 잔인한 엔클로저 운동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두 개의 문 용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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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사회주의)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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