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객 수가 2011년보다 많이 늘었다. 영진위가 내놓은 통계도, 기자가 느끼는 체감 관객 수도 그렇다. 평일에도 극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불황이라고 하지만 개봉하는 영화 편수는 줄어들 줄 모른다. 한마디로 요즘 세상은 '무료함과의 전쟁: 영화관람 전성시대' 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하다. 그런데 그게 또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감독이랑 제작사랑 대화 좀 하란 말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는듯 보인다. 물론 전혀 그런 장면은 아니겠지만. (<지.아이.조.2> 스틸 컷 중에서)

"감독이랑 제작사랑 대화 좀 하란 말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는듯 보인다. 물론 전혀 그런 장면은 아니겠지만. (<지.아이.조.2> 스틸 컷 중에서) ⓒ 파라마운트 픽쳐스


1. <지.아이.조 2> 개봉 연기 사태

스톰 쉐도우의 비중이 더 커졌다고 했다. 이병헌을 칭찬한 브루스 윌리스는 오랜만에 멋진 모습을 선보인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한다고 했고, 관객들은 기대감에 차있었다. 이병헌이 <레드2>에 출연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고, 국내 모 자동차 회사는 새 프로모션 광고의 내레이터로 이병헌을 캐스팅했다. 올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우리 배우의 활약이 있어 남의 나라 잔치 같지만은 않아 좋았다. 

그랬는데 하루아침에 개봉이 연기되었다. 이유는 3D로 개봉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나. 제작사는 별다른 사과도 하지 않은 듯하다. 영화계가 전 세계적으로 재미의 한계와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리고 있기에 제작사에서도 홍보사에서도 어떻게든 관객의 좋은 반응을 얻어 흥행하자 하는 열망이 더 커졌다. 수익성을 위해서다. <지.아이.조 2>도 마찬가지다. 2D보다 3D가 더 관객 수입을 올려 잡을 수 있다. 영화가 재미난 볼거리이자 문화체험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관객들에게 3D만큼 흥미로운 것도 별로 없다.

문제는 전부터 <지.아이.조 2>를 3D로 개봉하자는 의견이 제작진 측 내부에서 있었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존 추 감독은 제작사에 "3D로 개봉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하필 우리나라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하기로 한 다음에야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제작사와 감독 간의, 홍보사와 제작사 간의 소통 부재는 차치하더라도 제작사와 관객 간의 소통 부재가 가장 안타깝다.

2.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해임 사태

 예향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해임사태. 저 나비가 그 사실을 알면 떠나고 싶지않겠습니까

예향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해임사태. 저 나비가 그 사실을 알면 떠나고 싶지않겠습니까 ⓒ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메이저급 국제영화제(기자 주-광주국제영화제가 있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세 영화제가 좀 더 먼저 시작되었다)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팬들은 가을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여름에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기 전에, 봄에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잊지 않았다. 전주는 맛있는 음식과 탁 트인 시야, 여유로운 옛사람의 정취를 느끼며 모처럼 휴식을 취하기에 충분한 곳. 그런 전주를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주국제영화제였다. 

그런데 갑자기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해임됐단다. 영화제에 부대행사가 부족하다는 지역 의견에 "영화제는 영화가 부대행사보다 메인에 놓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해임시켰단다. 영화제에서 영화가 중심에 서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영화제 측은 그 프로그래머를 해임시키고 해임 사유 또한 쉬쉬하고 있다. 

한 언론의 보도를 보니 그 프로그래머가 전주 지역 언론에 밉보여서 해임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듯하다. 언론에 밉보여서?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언론과 그 언론을 움직이는 지역 권력자에게 밉보여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주국제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비해 상영되는 작품의 화제성이나 개성이 조금 약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좋은 영화를 초청해 올 수 있는 감각을 지닌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역민들과 소통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지역민의 전폭적인 응원인데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그 사실을 진정 모르는 것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언론이 자신들에게 밉보였다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해임시켰다면 이는 케케묵은 언론 권력의 횡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문화계 쪽만이라도 언론의 횡포에 의해 피해 입는 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은 기자에게만 있는 것일까.

3. 개봉하는 영화는 많은데, 왜 볼만한 영화는 별로 없을까

 이렇게 기대를 하고 오건만...

이렇게 기대를 하고 오건만... ⓒ 서상훈




요즘 관객들은 "볼 영화가 없다"고 한다. 매주 신작 영화가 넘쳐나는데 왜 그럴까.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의 7월 개봉 소식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영화가 재미없거나 좋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다. 다만 '또 실망하면 어쩌나' 일말의 불안감이 있어서다. 세월과 자본의 힘이 영화 제작자도, 감독도 재미없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선보이는 영화마다 도전적이고 참신하기보다 안정을 추구하고 어떻게든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는 아무래도 불경기에 성장 피로감 때문에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대중 때문일 공산이 크다. 제작진 측도, 관객 측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개봉하는 영화 중에 신인 감독의 영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국영화 스타 감독인 봉준호, 박찬욱, 장진의 장편 데뷔작은 시원찮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들은 전작의 불명예를 극복하고 두 번째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요즘 영화계 분위기로는 이런 사례가 잘 나오지 못할 듯하다. 독립영화계라면 몰라도 이제 영화에 유입되는 자본은 도전보다는 검증된 감독의 신작을 선호하고 있다. 적지 않은 한국영화가 정부 기관으로부터 지원받아 제작되고 개봉되는 건 그만큼 민간 자본이 여간해선 다양한 영화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돈과 권력, 결국 그거다. 안전하게 투자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영화가 주로 개봉되고, 관객도 관람료를 버리지 않을 영화만 찾아서 본다. 전작으로 유명해져 대중의 사랑이라는 일종의 '권력'을 얻게 된 감독과 배우의 영화가 상영관 대부분을 채워간다. 이는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쁜 것도 아니다. 좋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려스럽기도 하다. 신인이 데뷔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건 아닌가 해서, 그러면 우리 영화계가 점점 더 발전이 더뎌지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다. 2012년 화제를 모은 <어벤져스>는 <미녀와 뱀파이어>라는 TV 시리즈를 연출했던 조스 웨던 감독의 연출작이다(기자 주-물론 <미녀와 뱀파이어>가 조스 웨던 감독 혼자만의 작품은 아니다). 6월 개봉을 앞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500일의 썸머>라는 귀여운 느낌의 로맨스 영화를 연출했던 마크 웹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500일의 썸머>의 제작비 차이는 1억 달러가 넘는다. '이 영화는 이 감독이 해야 한다'는 일종의 법칙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유능한 감독이라면 언제든지 기용하는 것이 할리우드다. 이는 검증된 감독을 선호하는 경향이 할리우드에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꼭 신인 감독이 등장하라는 법은 없다. 꼭 신인 배우가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 가면서 영화계 내부에 더 이상 도전 정신이 발붙일 자리가 없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인 감독의 화제작이 다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재발견되는 배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 나오고 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영화를 만나면 기대치를 낮추면 된다. 전에는 일부러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 영화가 많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어느새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 다행인 것은 내 기대치를 내가 낮추는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기대하지 않고 영화를 보면 실망스러울 일이 없는, 진정한 '관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화계 이슈 지아이조2 이병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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