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빠르다. 1초에 30만km를 가는데 그 빛이 일 년을 가면 자그마치 약 9조4500억km를 간다. 그것이 1광년이다. 영화 초입, 지구로부터 330조km 거리에 있는 우주선 프로메테우스를 보여주는데, 이는 대략 지구로부터 40광년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까지의 통설로 되어 있는 우주의 반지름(우주를 구형으로 가정했을 때)인 137억 광년을 생각해보면 이 거리는 너무나 작아 아직도 지구가 포함된 은하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창조론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그 신은 누구로부터 창조되었을까? 성경에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설명하지만 신앙인이 아닌 보통의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그 조물주에 대한 인간들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고대문명의 미스터리를 인류기원 외계인설로 연결시킨 영화적 수사는 진지한 면은 없지 않았으나 매우 허약하다. 하기야 그 많은 고대문명에 포함된 외계인 이야기를 모두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불확실하고 허약한 근거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인류기원을 탐구하기 위해 우주여행을 그것도 지구로부터 40광년을 여행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어설프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중요한 모멘트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인조인간 데이빗 냉소적이며 무표정하고 때로 음울한 그리고 인간의 속성을 너무 많이 닮은 인조인간

▲ 인조인간 데이빗 냉소적이며 무표정하고 때로 음울한 그리고 인간의 속성을 너무 많이 닮은 인조인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안드로이드(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인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 분)의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일 수 있다.

"인간들은 왜 우리를 만들었나요?"

만약에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했고 그를 만났다면 우리가 조물주에게 물어 볼 첫 번째 질문이 아마 이것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서 데이빗은 인간에 대한 냉소와 동시에 인간의 저급한 속성을 그대로 가지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목이 떨어진 상태에서 주인공 쇼(누미 라파스 분)에게 연락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려 자신을 복구하려는 노력을 보면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과 너무 닮아 있다.

여자 주인공 쇼 인류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원인을 제공한 여자 과학자 엘리자베스 쇼

▲ 여자 주인공 쇼 인류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원인을 제공한 여자 과학자 엘리자베스 쇼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주인공 엘리자베스 쇼는 에이리언의 리플리(시고니 위버)와 별 차이 없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신선함이 떨어진다. 배속에 외계생명 설정조차 너무 비슷해서 에이리언 속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에이리언의 프리퀄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안에서의 시간배경은 이 영화가 더 과거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류기원을 밝히기 위해 우주를 향한 그녀의 노력은 허망하게 무너지는데 이것은 사실, 관객들이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고 과연 그녀가 그 과정에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혼자 살아남아 에이리언의 '리플리' 대사와 별 반 차이가 없는 인류의 창조자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나겠다는 말로 영화를 끝내고 있다. 인류의 기원을 찾아 다시 여행을 떠나는 설정은 리들리 스콧 감독 자신이 인류 창조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창조와 멸망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창조한(정확하게는 복제한) 인류를 다시 멸망시키려 하는데 영화 안에서 창조자가 태도를 바꿔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이유를 꼭 찾아낸다면 그것은 아마 억만장자이며 이 우주여행을 기획한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 분)로 대표되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저주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류보편이다. 이 보편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반드시 죽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억만장자 웨이랜드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해 광막한 우주에서 인류를 창조한 이들을 찾았지만 거기가 그의 무덤이 되고 마는 아이러니를 겪게 된다.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그 예상을 감독은 영화적 수사로 풀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를 피력한다.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이 가지는 명성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영화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에 대한 묘사는 매우 정형적이어서 진부한 느낌을 준다. 인종의 다양함은 있었지만 성격유형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나친 불안과 공포, 불필요한 만용으로 죽음을 자초하는 인간형과 반대로 의외로 담담하고 이유 없는 정의감이 충만한 인간형이 그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그 이유 없는 정의감이 인류를 살리지만 정확하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득 그것이 인간이 창조된 원인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거대한 얼굴상 티탄(거인)족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얼굴상. 기괴하고 음울하다.

▲ 거대한 얼굴상 티탄(거인)족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얼굴상. 기괴하고 음울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미장센

리들리 스콧의 미래관은 확연히 디스토피아적이다.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영화의 미장센 역시 디스토피아적 음울함이 묻어난다. 21세기 후반부의 뛰어난 과학기술로 창조된 각종 기계와 장비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미래가 무대인 SF영화와는 달리 어떤 화려함도 없다. 인조인간 데이빗의 알 수 없는 우울한 표정과 배우들의 무표정과 불안함에서 우리는 희망의 미래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계에서 발견한 거대한 얼굴상은 이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티탄족(거인족) '프로메테우스'를 연상하게 하는데 그 역시 어두운 조명으로 기괴하고 암울하다.  

사족

우주선 프로메테우스의 총지휘자를 연기하고 있는 샤를리즈 테론(비커스 역)은 영화 내내 이렇다 할 역할 없이 우주선 안을 서성이다 끝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배우 샤를리즈 테론도 아깝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의 역할도 몹시 안타깝다.

우주괴물의 동일한 포맷 역시 이제는 너무 진부하다. 두족류를 상상하게 하는 형태부터 에이리언의 괴물까지 더 이상 새로운 괴물은 없어 보인다.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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