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방송된 SBS <패션왕> 마지막 회는 강영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22일 방송된 SBS <패션왕> 마지막 회는 강영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 sbs


<패션왕>의 마지막 장면. 위용을 자랑하는 크고 흰 모피 차림의 영걸이 뉴욕의 밤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수영장 안에 몸을 담그고 있다. 오른쪽 화면 끝에 괴한이 등장했다. 총을 꺼냈다. 설마, 이렇게 죽는 건가. '패션왕'이 될 줄 알았던 남자가 누가 쐈는지도 모를 총에 허망하게 고꾸라지자, SNS 타임라인의 분노 게이지는 순간적으로 상승했다. 누군가 말했다. 유아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드라마 종영 후,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그 죽음에 대해 수차례 설명하고 때로는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을 유아인은 초연한 '멘탈붕괴' 상담 전문의처럼 보였다. 장면마다의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부분과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좀 더 명확해진다고 했다.

유아인이 <패션왕>과 강영걸이라는 인물의 큰 틀에 대해 이해하고 만족하는 지점은 작품을 선택할 때부터 큰 변함이 없었다. 동대문에서 닳고 닳은 남자가 돈과 성공을 향해 달려 나가지만, 결국 빈껍데기뿐인 성공을 끌어안고 허망하게 죽는 것. 그래서 전작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처럼 멋있는 남자 역할을 답습하지 않고, 당황스러울 법한 인물을 연기한 것 자체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히 시청자를 설득하고픈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틀을 채운 과정에 있어서는 묻는 사람도, 배우도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하고 어색해졌다. 이를 테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물이라고 이해했던 강영걸에게 사랑 비슷한 이야기가 끼어든 것. 유아인 역시 공감하는 지적이기에, 더욱 <패션왕>을 '밀당(밀고 당기기)'하다가 끝난 멜로드라마로 '퉁'쳐 버리는 비난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SBS 드라마 <패션왕> 강영걸 역의 배우 유아인

SBS 드라마 <패션왕> 강영걸 역의 배우 유아인 ⓒ Star-K Entertainment


"우리는 미니시리즈의 '멜로'에 너무 중독돼 있다"

- 아무래도 <패션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제빵왕> 같은 성공스토리를 기대하게 되잖아요.
"그런 기대에 대한 배신이 컸던 것 같아요.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패션왕>이라는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패셔너블한 모습과 화려한 패션 세계를 기대했을 텐데, 나오자마자 구질구질한 옷을 입고 원양어선 탔으니까. 또, 악역은 틀림없이 아닌데 멀쩡한 남자 주인공의 행실이 곱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던 것 같고요. <패션왕>은 그런 선입견들과 싸우는 과정이었어요.

물론 드라마가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짜임새 있게 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저는 크게 드릴 말씀이 없어요.(웃음) 저 또한 아쉬움이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깨고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재밌었던 것 같아요."

- 뉴욕에서 죽는 마지막 장면을 이미 초반에 촬영하고 나서, 뒷이야기를 이끌어가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그 엔딩 지점에 도달할 것이냐는 의문은 있었죠. 무엇보다 영걸에게 사랑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정의 실체를 모르는 인물로 설정했죠. 안나는 화려함에 대한 동경과 그런 여자가 보여주는 빈틈 때문에 끌렸다면, 가영이에게서는 여동생 같으면서도 동질감, 연민의 마음을 느꼈다고. 그렇게 완벽하게 감정을 마감한 채 연기를 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재혁이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었어요. 그게 영걸이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었으니까. 동대문에서 쳇바퀴를 굴리던 애가 동창을 만났을 때의 자극이 계속되면서 돈과 성공을 갈망하게 되는 것. 제2의 재혁이가 되기 위한 과정들이었죠.

그래서 중간에 가영이와의 멜로가 잠깐 그려졌을 때, 전 그게 더 당황스러웠어요. 여론을 의식한 것일 수도, 풀어나가는 변화의 과정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걸로 인해 인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원래 영걸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마지막까지 갔다가 가진 것들의 허망함을 느끼고, 자신의 빈자리가 가영이었다는 걸 알고 고백하지만 죽어버리는 비극적 인물이었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짚었지만, 또 짚지 못한 부분들이 있죠."

- 멜로가 '잠깐' 그려졌다고 표현했지만, 시청자들은 <패션왕>을 사랑에 천착하다가 끝난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나요?
"패션을 빙자, 사랑을 했다고 하는데 영걸이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요. 패션보다는 비즈니스에 집착했죠. 패션에 대한 순수함이나 열정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집착. 어떤 남자 주인공보다 사랑을 안 했는데, '사랑놀음'을 했다고 하는 게 아쉬워요.

물론 만드는 사람들의 오류일 수 있지만, 너무 미니시리즈의 멜로에 중독돼 있는 것 같아요. 병원에서 사랑 이야기, 학교에서 사랑 이야기(웃음), 모든 걸 멜로로 연관 지어서 생각하곤 하잖아요. 재혁이가 가영이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가영이를 소유해야겠다는 영걸이의 마음이 드러나는데, 이건 소유욕이지 멜로적인 감성이 아니에요. 이 감정선 자체가 난해하고 낯설죠. 그러니까 남들이 다 하는 걸 안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 작가들과 소통한 적이 있나요?
"작가님과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작품은 별로 없어요. 그나마 감독님을 통해 제 캐릭터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린 게 전부였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고 굉장히 조심했죠. 그게 어려워요. 배우로서의 역할이 틀림 없이 있고, 그걸 벗어날 때 어디까지가 건방이 아니고 월권이 아닌가에 대해서. 감독님께 가장 강하게 얘기했던 건, '시청자의 의견에 흔들리지 말자, 그럼 더 어설퍼질 것이다, 각오한대로 밀고 나가자, 어차피 사랑 받으려 했던 캐릭터가 아니지 않냐'는 것이었어요.

시청자들의 반응은 흡수해야할 것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할 것이 있는데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시청률이 잘 나왔다면 또 다른 이야기겠죠. 계속 다른 방법들로 시청률 반등을 노린 것이 오히려 기회를 차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히 실패도, 만족할 만한 수준도 아닌 시청률 10%는 시청자들이 주는 '기회'였거든요. 근데 결국 10%로 끝났죠."

"영걸이가 허망함 깨닫고, 스스로 죽음 선택하길 바랐지만"

처음, 유아인은 영걸이 자살하길 바랐단다. 돈과 성공을 향해 달려왔지만, 목적지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허망한 삶의 막을 내리는 최소한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길 바랐던 인간으로서의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작가들이 영걸의 성격에 대해 정곡을 짚었을 때, 그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이고, 성공은 뭐고, 돈은 뭐고... 영걸이가 스스로 이해하기를 바랐어요. 왜냐면, 제가 거기에 더 가까워서 그래요. 저도 삶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요. 그래서 영걸이가 빈 깡통을 향해 달려왔다는 회의를 느끼고 죽기를 바랐어요. 작가님과의 첫 미팅 때, '영걸이가 자살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영걸이는 자살할 애가 아냐, 어떻게든 살겠지, 죽는다면 남의 손에 죽어야지'라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굉장히 동의했어요. 이 캐릭터로서가 아니라 사람인 나의 희망사항이 있었던 거죠."

- 그럼 원래 누구한테 죽임을 당한다는 설정은 있었나요?
"원래는 있었어요. 아주 사소한, 아무 사연이 없는 사람에게 죽는 것. 그게 더 허무하니까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내 사람은 없는 휘황찬란한 파티장에서 시비가 붙어 죽게 되는 장면이 대본에는 나와 있었죠. 

작가님들이 굉장히 고약한 성미가 있어요. 전 그걸 되게 좋아해요. 이를 테면, 재혁이 엄마인 향숙이가 식탁 위에서 '여자에 목매는 자식이나, 그런 여자를 데려간 놈이나, 그런 애들 데려다 놓고 사업 얘기하는 남편이나 다 똑같다'고 남자들을 '입으로 패는 장면'. 원래 대사는 더 셌어요. '등신들' 같이 18회까지 온 남자들의 찌질함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패션왕>은 의도적으로 '찌질한 걸 하고 있는' 드라마인데 그걸 다 설명하지 않으니까, 마치 '멋있게 그리고 싶었는데 찌질하게 끝난 것'처럼 되어버린 거죠."

- 보는 사람들은 주인공의 찌질함보다는, 처음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인물들의 행동이 끝에 가서는 증발해버린 것에 반감을 가진 게 아닐까요?
"그게 작가님이 하고 싶었던 얘기인 것 같아요. 작품이 허망한 것을 그릴 수도 있죠. 그동안 희망차고 계몽적인 드라마는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봤을 때 허망함에 더 가깝지 않나요? 왕자님이 찾아오고 일이 막 술술 잘 풀리고 대단한 성공을 누리는 것보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경우가 많죠. <패션왕>의 가치는 그런 이야기를 답습하지 않으려 애쓴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판타지를 쏟아내는 드라마 사이에서 그나마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았나. 물론! 희망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웃음)

호기롭게 시작했죠. 그런데 세상 살면서 그런 게 지켜지냐고~ 목적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 목적이 되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돈, 돈, 돈! 저는 그렇게 세속적인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 영걸이가 너무 좋았어요."   

* 인터뷰 2편이 이어집니다.

유아인 패션왕 강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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