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주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들어 사회적 이슈가 된 '강정' 외에 '올레길', '유채밭', '돌하르방', '신혼여행', '귤', '해녀', '삼다도', '수학여행'과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의 조합이었다. 적어도 내게 제주는 그랬다. 이 영화 <비념(JeJu prayer)>을 보기 전까지.

지난 4일 막을 내린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많은 작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임흥순 감독의 <비념>을 꼽고 싶다. 제주 4·3항쟁에서부터 최근 강정마을의 해군 군사기지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제주의 현대사를 조명한다는 작품 해설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줄 충격과 감동을 예견하지 못했다.

영화는 제주 4·3 항쟁 당시 살아남은 주민과 유가족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제는 고령이 되어버린 그들의 기억 속에 4·3항쟁은 아직도 평생 잊지 못할 푸른 멍으로 남아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여인네들,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 생명들. '빨갱이'란 이름으로 무참히 죽어간 수많은 영혼…. 영화 <비념>은 살아남은 자들의 음성을 빌어 당시의 비극 속으로 들어간다.

살아남은 자의 음성 빌어, 비극 속으로 들어간다

 한라산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강상희씨. 강상희씨는 <비념>의 프로듀셔인 김민경씨의 외할머니다. 제주 4·3항쟁에서 남편 김봉수씨를 잃었다. 당시 김봉수씨의 나이 23, 강상희씨는 25세였다.

한라산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강상희씨. 강상희씨는 <비념>의 프로듀셔인 김민경씨의 외할머니다. 제주 4·3항쟁에서 남편 김봉수씨를 잃었다. 당시 김봉수씨의 나이 23, 강상희씨는 25세였다. ⓒ 임흥순


이 영화가 제주 4·3항쟁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그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무참히 희생돼버린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할머니 중엔 제주 4·3항쟁 당시, 일본으로 피난갔다 그곳에서 뿌리내린 할머니도 등장한다. 그녀들은 '고향이 타향이 되고, 타향이 고향이 됐다'고 말하고는 이제는 자신에게 더 익숙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 장면이 참 오래도록 아팠다. 

또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한신화 할머니는 제주 4·3항쟁 당시 피범벅이 된 채 '뭍'으로 피난을 갔다가 자신의 처지와는 너무 다른 뭍사람의 현실을 보고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뭍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한신화 할머니가 다시 제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후였다. 이런 얘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자분자분한 음성에 소담스럽게 펑펑 눈 내리는 제주의 풍경이 오버랩 된다. 하얀 눈이 억겁에 쌓이고 또 쌓여도 할머니의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절제된 인터뷰, 내레이션과 함께 제주도의 아름다운 비경이 번갈아가며 조화를 이룬다. 허나 그 '비경'이라는 곳도 알고 보면 4·3항쟁의 가슴 아픈 순간을 안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다. 온통 주민이 처형당했거나, 묻힌 곳이다. 모르고 보면 제주의 풍경 중 하나였을테지만, 알고 보니 가슴이 시리다.

제주 4·3항쟁 & 강정마을 해군기지... 소름이 돋다

여기에 최근 발생한 강정마을 구럼비 폭파 현장이 이어지면 묘하게 '평행이론'이 떠오른다. 제주 4·3항쟁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약 반세기를 두고 일어난 이 두 사건에 공통으로 얽혀있는 미국의 권력게임, 주민을 향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이 어쩜 그리도 닮아있는지 영화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역사는 진보하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것일까.  

이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두 사건이 주축을 이루고 있음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 광기보다는 서글픔, 깊은 슬픔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소식을 전하는 기자의 호들갑스런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지만 정작 이를 보고 있는 할머니는 말이 없다. 제주 4·3항쟁 위령제를 보도하는 뉴스 화면 위로 제주 4·3항쟁 당시 처형당한 김봉수 할아버지의 영정이 거울을 통해 비춘다. 여기에 무심한 듯 펼쳐져 있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처연한 슬픔이 되어 관객에게 돌아온다.

 강상희 할머니 댁 마당에 떨어져있던 귤. 주황색도 녹색도 아닌 이 귤을 보면서 임흥순 감독은 제주4·3항쟁 당시 생존자인 김성주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임 감독이 <비념>을 만들게 된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고한다.

강상희 할머니 댁 마당에 떨어져있던 귤. 주황색도 녹색도 아닌 이 귤을 보면서 임흥순 감독은 제주4·3항쟁 당시 생존자인 김성주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임 감독이 <비념>을 만들게 된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고한다. ⓒ 임흥순


그리고 동양화의 여백처럼 영상을 채우고 있는 제주의 자연환경과 바람소리, 그리고 거미, 게, 새와 같은 생명은 마치 세상을 이미 떠난 자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이런 빼어난 영상미와 은유, 상징이 있기에 <비념>은 '작품'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제주의 잔인한 역사를 고통스럽게 주입하지 않고, 슬픔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 상영 중 중간중간에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할머니의 인터뷰가 나올 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제주를 지금껏 '평화의 섬' '경관이 빼어난 휴식처'로만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 옆좌석에 앉아 간혹 땅이 커져라 한숨을 쉬던 한 남성 관객은 "제주도의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라는 얘길 듣고 일부러 보러왔는데, 이 정도로 잘 표현한 작품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온 한 여성 관객은 "4·3항쟁에 대해서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영화로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제주를 바라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소감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 중의 하나는 제주의 민간 '굿' 중의 하나인 '귀향풀이' 장면이었다. 망자를 위한 장례절차 중 마지막 날에 치러지는 의식이라는데, 요즘 제주도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의식이라고 한다. 주로 여성이 모여서 망자를 위해 노잣돈을 주고 마지막 음식을 대접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데, 제주도의 무속신앙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강상희 할머니가 자택 귤밭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들은 <비념>의 기초작업이 되었던 전시회 <비는 마음>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이다.

강상희 할머니가 자택 귤밭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들은 <비념>의 기초작업이 되었던 전시회 <비는 마음>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이다. ⓒ 임흥순


제주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굿과 무속 신앙이 존재한다고 한다. 험난하고 척박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염원이라는 이유 외에 한 가지를 더 든다면, 아마도 파란 많은 제주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념'은 제주도 말로 '작은 굿'을 의미한다.

"<비념>은 이념 영화가 아니다"
[인터뷰] <비념>의 임흥순 감독
임흥순 감독과의 인터뷰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전주국제영화제 측에서 배포한 게스트 일정표에 따르면 내가 영화를 보았던 5월 2일엔 임흥순 감독은 이미 전주를 떠난 상태였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영화제 측에 연락을 했고, 다행히도 임 감독이 아직 전주에 체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임 감독은 한두 가지 일정을 소화한 뒤, 그날 전주를 떠날 예정이었다.

다음은 5월 2일 전주 영화의 거리의 한 카페에서 나눈 임흥순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비념>의 임흥순 감독

<비념>의 임흥순 감독 ⓒ 안소민


- 영화 무척 잘 봤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함께 작업하는 친구 중에 김민경씨가 있다(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김민경씨의 외가가 제주도다. 작업하는 동료들과 2009년에 제주도로 여행 갔다가 김민경씨의 외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강상희' 할머니가 김민경씨의 외할머니고 제주 4·3 당시 처형당한 '김봉수'씨가 김민경씨의 외할아버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2009년 12월에 시작해서 2012년 3월까지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촬영했다. 약 30여 차례 제주도를 드나들었다. 길게는 한두 달씩 묵으면서 현장을 답사하고, 유가족들과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당시 생존자가 대부분 고령일 텐데, 인터뷰는 순조로웠나?
"영화에 나오는 분들은 그래도 말씀을 잘 해주신 분들이다. 아예 언급을 피하신 분도 계셨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 당시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 '제주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수학여행', '올레길' 등이다. 그러다 최근 '강정 구럼비'를 통해 제주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됐다. 영화를 보며 제주도 곳곳에 그렇게 많은 4.3항쟁의 역사적 현장이 많다는 걸 새로 알게 됐다.
"제주도 전체가 하나의 무덤이라고 보면 된다. 제주도에 첫발을 내딛는 공항부터, 성산일출봉, 천지연 등도 모두 4·3항쟁 당시 처형지였다. 유해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아스팔트 밑에서는 발굴되지 못한 유해들이 많을 것이다." 

- 4·3항쟁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건이 겹친다. 일부러 의도한 것이었나?
"해군기지를 둘러싼 충돌을 찍을 때는 일부러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었고 알아야 했다. 그래서 찍었는데 강정마을 주민도 다 그렇게 얘기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제2의 4·3항쟁이라고." 

- 감독도 원래 제주 4·3항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나?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은가?
"역사에 관심은 많은 편이지만 나도 이번에 작업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됐다. 내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라고 하면 대개 거시적인 것을 떠올리지만 내 경우에는 우리 가족을 보니 역사가 보이더라. 우리 부모의 직업, 우리 가족의 주거환경... 이런 걸 따져보니 역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역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가 원래 기득권, 승자의 역사 아닌가. 승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눈에서 바라본 기록, 자취가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이번 작업도 그런 의미에서 이뤄졌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고립된 곳이었다. 유배를 보낼 때도 제주로 보냈다. 지형적 특징에서 비롯된 소외감이 옛날부터 존재했다."

- 영화 속에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비롯한 바람, 촛불, 바위 등 제주의 이미지가 자주 나온다. 특별히 의도한 까닭이 있나?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보다는 좀 더 다른 표현으로 얘기하고 싶다. 예를 들어, 해군기지건설을 둘러싼 현실을 나타날 때, 해경과 주민이 무력으로 충돌하는 직접적인 화면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다. 너무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은 뉴스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나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이 영화 속에 자연환경이나 동물, 곤충 등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이 망자들의 이야기를 듣길 바랬다. 망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를." 

-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감독의 궁극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제주 4·3항쟁을 이념전쟁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그건 역사적인 문제나,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개인의 문제다. 영화도중에서도 나오지만 희생당한 3만여 명의 주민들은 빨갱이가 뭔지도 몰랐고 공산주의가 뭔지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는 제주 4.3항쟁의 시비를 따지는 영화가 아니다. 이념 영화도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제주도에는 올레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가슴 아픈 일도 있었구나'라고 느낀 관객이 있다면, 그때 돌아가신 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가 생긴다면 영화를 만든 보람이 있겠다."

- 앞으로 계획하고있는 작업이 있나?
"어떤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 징조를 제주도 말로 '숭시'라고 한다. 제주 4.3항쟁이 일어나기 전, 제주에는 이 '대량학살'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 이런 '숭시'들이 보였다고 한다. 샛별이 두 개 떠오르거나, 올챙이들이 허옇게 떼죽음을 당하는 일 등인데. 이런 '숭시'에 제주 여성 4명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올해나 내년 정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가 작업하고 있는 공간인 서울시 금천구의 '구로공단'에 대한 이야기도 구상 중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제주4.3항쟁 비념 임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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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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