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스 공격진의 주축 타자들을 살펴보면 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이대형, 오지환 등 대부분이 좌타자들이다. 우타자 중에는 정성훈 정도가 꾸준히 기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상대팀은 트윈스와의 경기에 전략적으로 좌완 선발투수를 내세웠고, 대부분 짭짤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류현진, 차우찬, 김광현, 장원준, 장원삼 등 리그에 내노라 하는 에이스급 좌완투수들한테는 속된 말로 '밥'이었다.

2010년 류현진이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17개)을 수립한 상대도 LG 트윈스였다. 극단적인 플래툰 시스템을 써봐도 별무소득이었다. 그래서 올 시즌을 앞두고 FA 이택근을 잡지 않고 보냈을 당시만 해도 가뜩이나 우타자 라인업이 허약한데 과연 무슨 의도로 잡을 의지를 보이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웠다. 심지어는 10년이 넘도록 안방을 지켜온 조인성마저 내보냈다. 전력보강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무엇을 믿고 선수들을 줄줄이 보내는지에 대해 팬들 사이에선 논란이 일어났다.

새로 부임한 김기태 감독은 외부에서 더 이상 전력보강을 하지 않고 내부에서 경쟁을 유도하여 많은 선수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전력 구상을 공공연히 내비쳤다.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다 보니 내부에 있는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박탈감을 안겨준다는 부작용을 더 중시하여 내린 결단이었다. 대신에 트윈스는 코칭스태프 및 전력분석팀에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하였다.

우선 롯데를 리그 최강의 공격력의 팀으로 일구어낸 '공부하는 코치' 김무관 코치를 타격코치로 영입하였다. 또한 다른 팀에는 없는 팀배팅 코치직을 신설하여 최태원 코치를 새로 영입하였다. 보다 세밀한 야구를 추구하겠다는 의지인데, 전력분석팀에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했던 노석기 SK코디네이션 코치를 다시 영입하였다. 노석기 전력분석원은 김정준 현 SBS 해설위원과 함께 LG, SK의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팀의 호성적에 보이지 않는 공헌을 한 '마이더스의 눈'이었다.

또한 내야수들에게 2루, 유격수, 3루 등의 멀티포지션을 맡겼던 시스템을 버리고, 선수당 1포지션 체제로 변화를 꾀하였다. 수비는 유지현 코치에게 전담하여 집중 조련을 맡겼다.

올 시즌을 앞두고 단행한 조치들을 통해 김기태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의 방향을 요약하자면, 내부 선수들의 잠재력 극대화, 보다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 부여를 통한 경쟁유도, 전력분석을 통한 세밀한 야구 등을 꼽을 수 있다. 시즌 초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트윈스는 하위권은 맡아 놓은 당상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2일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는 김기태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트윈스의 오랜 천적으로 군림해온 리그 최고의 좌완 류현진을 상대로 트윈스는 변칙 라인업을 내세웠다. 정의윤, 김재율, 최동수 등 우타자들을 극단적으로 배치하여 류현진 공략에 나선 것이다. 단순히 좌투수에 우타자 기용을 넘어서 김기태 감독은 김무관 코치와 협의하여 류현진의 공을 잘 공략할 수 있는 스윙궤적을 지닌 타자들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하였다.

1회말 공격부터 트윈스 타자들은 류현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나온 듯 보였다. 최대한 많은 투구를 유도하기 위한 작전은 먹혀들었고, 제구력 난조로 애를 먹은 류현진은 결국 정성훈, 정의윤에게 연달아 적시타를 내준다. 그리고 프로 2년차 김재율에게 데뷔 첫 홈런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지난 시즌 김남석에서 올 시즌 새로 개명한 김재율은 자신의 프로 1군 첫 홈런을 리그 최고 투수로부터 뽑는 감격을 누린다. 개명한 효과를 톡톡히 본듯 싶다.

LG트윈스 신인 좌완투수 최성훈 리그 최고 투수 류현진과 맞대결을 펼쳐 데뷔 첫 선발승을 따낸 LG트윈스 최성훈.

▲ LG트윈스 신인 좌완투수 최성훈 리그 최고 투수 류현진과 맞대결을 펼쳐 데뷔 첫 선발승을 따낸 LG트윈스 최성훈. ⓒ LG트윈스


1회말부터 5점을 뽑아냈는데, 다른 투수도 아닌 리그 최고투수 류현진으로 뽑아낸 점수였기에, 이글스가 느끼는 충격과 부담감은 한층 더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도 상대해 보지 못한 신인 좌완투수 최성훈을 공략하는데 실패한 이글스 타선은 모처럼 마련한 찬스에서도 병살타로 자멸하고 말았다. 한 경기에서 무려 병살타를 4개나 쳤으니, 그러고도 이기기를 바란다면 상당히 염치 없는 욕심일 것이다.

전체적인 경기 내용을 본다면 트윈스는 천적 류현진을 무너뜨리기 위해 라인업 변경, 투구스타일 분석 등 다양한 전략을 가동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신인투수 최성훈도 자신의 1군 첫 등판에서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공을 뿌렸는데 사전에 전력분석팀을 통해 이글스 타자들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에서 등판하지 않았나 싶다.

올 시즌 트윈스는 고질적으로 괴롭혀온 좌완 투수 징크스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천적 류현진, 차우찬, 장원삼 등을 차례로 무너뜨리면서 자신감 상승에도 큰 플러스 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아직은 시즌 초반이라 LG트윈스의 올 시즌 전망에 대해 속된 말로 '설레발'을 칠 상황은 아니다. 작년에도 5월까지만 해도 트윈스는 5016일만에 리그 1위에 올라서는 상승세를 보였지만, 전반기 막판부터 하락세를 거듭한 끝에 결국 가을 잔치의 이방인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해보다 희망적인 부분은 트윈스의 플레이가 훨씬 세밀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유격수 오지환의 환골탈태한 수비는 트윈스의 센터라인을 보다 두텁게 하고 있다. 또한 명확한 명분이 있는 라인업 구성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깜짝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훨씬 높다. 지명타자 출신임에도 세밀한 야구를 추구하고 있는 김기태 감독의 트윈스가 어떤 행보를 펼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이버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LG트윈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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