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이란 키워드는 그 무엇보다 스릴러라는 영화 장르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손에 땀 나도록 긴장감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관객 역시 사건에 동참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스릴러라는 외피를 입고 만들어진 일련의 최근 영화들을 살펴보면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이 사라지거나 죽어나가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실종된 인물을 찾는 행위 자체가 범인을 잡아가는 형사의 추척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대분분의 결론점엔 사건이 미궁에 빠지거나 실종된 인물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채로 종결된다.

 실종된 아내를 찾아나서는 문호

실종된 아내를 찾아나서는 문호 ⓒ 영화사 보임


하지만 <화차>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결말로 이야기의 마침표를 채워 나간다. 어둠에 가리워져 있던 인물을 '보여주기' 방식으로 부각시킨며 더 나아가서 보이지 않았던 진실마저 들추어 낸다.

개인적으로 난 <화차>의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숨기지 않는 방식과 실타래 풀듯 이야기를 개연적으로 풀어 헤치는 서사가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화차>는 긴장감으로 두 시간여를 달려가지만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처럼 이상하게 남는 것 없다. 휴게소에서 홀연히 사라진 선영(경선)처럼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기억속에서 삭제되어졌다. 칭찬하고 싶지만 딱히 할 말이 없고, 하나 하나 가지를 관찰해 보면 쳐야할 게 너무 많은 작품. 그것이 변영주의 <화차>이다.

<화차>에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인물들의 관계 맺음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는 다분히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극영화에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친 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우선 문호와 선영의 만남이 그렇다. 문호가 운영하는 동물병원 앞을 배회하는 선영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문호는 어느 날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대뜸 아이스크림을 권한다. 외형적인 보이는 둘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를 통해서 점점 둘의 감정이 발전되었다는 것을 읽어 내려가기 위해서는 높은 도약이 필요하다. 선영의 태도 또한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그녀는 이성과 동성과의 관계에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행동한다. 그것이 비록 고의인지 타의인지는 복잡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여성들에 비해서 남성들과의 관계에서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첫 번째 결혼을 통해서 만난 남자에게나 문호에게 보이는 그녀의 태도는 지극히 여성적이며 소극적이다. 물론 그녀가 처한 현실의 무게가 그녀를 짓누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돌변하기까지의 과정이 앞서 언급한 문호와의 만남처럼 많은 부분 생략되어 비약이 심해 보인다.

 감정의 이중잣대를 보이는 선영 혹은 경선

감정의 이중잣대를 보이는 선영 혹은 경선 ⓒ 영화사 보임


그리고 연기자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중요한 부분으로 다룬 용산역 장면이 내겐 좀 사족처럼 느껴졌다. 문호가 선영을 다시 찾고 숨겨진 진실, 진심으로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을 던질 때까지는 훌륭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장면들은 좀 부연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히 선영이 빌딩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철도 위에 쓰러져 있는 장면은 CG처리가 부자연스러워 갑자기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문호에 대한 마음까지 고백하고 난 후 파국으로 치닫는 선영의 행위들이 쉽게 동요되지 못하고 철도로의 '낙하'처럼 부유하고 어디론가 떠도는 느낌이 강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내고 있는 사채, 인신매매, 스토커에서 더 나아가서 자살까지 이르는 사건의 맥락들이 불편하게 보이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사족처럼 느껴지는 용산역 장면

사족처럼 느껴지는 용산역 장면 ⓒ 영화사 보임


마지막으로 영화 내내 거슬렸던 것은 문호를 연기한 이선균의 목소리(말투)였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인정받는 이선균은 <화차>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발성때문인지 사운드 문제 때문인지 몰라도 대사 자체가 소 모는 소리처럼 불분명해서 몇몇 장면에서는 답답하기까지 하였다. 캐릭터는 딱 맞아 떨어졌을지 몰라도 대사 전달력이 많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 평론가들이 새로운 연기자의 발견으로 내세웠던 김민희는 과찬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고요가 심하고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기한 것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연기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 아니면 한국에 있는 다른 여배우의 선영(경선)을 상상할 수 없을까?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배두나나 실제의 차경선을 연기한 차수연이 그 역할을 맡았어도 충분히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김민희의 연기가 좋았지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재차 말하고 싶다.

처음 극장문을 빠져나왔을 때는 <화차>가 오랜만에 만난 흥미진진한 드라마였으며 생각할 거리도 충분하다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되뇌이면 되뇌일수록, 말을 하면 말을 할수록 아쉬운 점이 발견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꼭 지나치지 않고 싶었다. 아쉬운 것을 토로하는 것도 하나의 애정표현의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변영주의 <밀애>를 보고 그 전의 멜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를 향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남해를 간 것도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발레 교습소>에 이어서 <화차>를 내놓은 감독의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다음 작품은 보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향을 풍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화차 이선균 김민희 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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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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