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덕 피디

▲ 한재덕 피디 ⓒ 사나이 픽쳐스


한국 스태프들에 대한 경외감, 그는 분명 경외감이라고 표현했다. "에이 매번은 아니고"라며 넉살좋게 웃는 모습에서 호쾌한 성격의 동네 형 같은 모습이 엿보였다. 그만큼 그는 현장 스태프의 노고와 실력을 잘 아는 피디였다.

<범죄와의 전쟁> 한재덕 피디는 말 그대로 온몸으로 부딪히며 영화판에서 '굴렀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열정만으로 영화를 시작한 이후 그는 영화 <올드보이> 제작 실장을 거쳐 류승완 감독과 <주먹이 운다> <부당거래>로 호흡을 맞췄다. 그 사이 숱한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영화를 쉬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영화판이었다.

매번 그에겐 벼랑 끝 도전이었다고 한다. 영화 제작 전반의 과정을 관리해야 하는 게 피디의 일이니 만큼 준비 과정부터 편집까지 무엇 하나 신경을 끌 수 없는 셈이다. 특히나 큰 고충은 예산 문제. <범죄와의 전쟁> 역시 '예산과의 전쟁'이었을 법 했다. 이번 영화의 흥행은 매번 죽겠다는 심정으로 한 결과물이었다.

 촬영 현장에서의 한재덕 피디 모습

촬영 현장에서의 한재덕 피디 모습 ⓒ 사나이 픽쳐스


영화 <베를린> <신세계>까지...이 사람 범상치 않다

굵직한 지난 결과물 외에도 그를 주목할 이유는 더 있다. 바로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까지 제작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신세계는 한재덕 피디가 직접 총괄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두 영화 모두 초호화 캐스팅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작품이다. <베를린>은 한석규, 류승범, 하정우, 전지현이 참여하기로 했다. 류승완 감독과 한재덕 피디가 다시 한 번 손을 잡는다는 의의도 있다. 또한 <신세계> 역시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의 캐스팅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영화는 아직 투자 부분과 촬영 일정 등 많은 부분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보통 투자나 배급, 촬영 일정이 정리가 돼도 배우 캐스팅이 쉽지 않은 게 일반적인데 보란 듯이 두 작품엔 가히 톱이라 할 만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좋은 콘텐츠죠.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아무리 난관이 있어도 다 되게 돼있습니다. 좋은 각본엔 좋은 배우가 붙게 돼 있고, 투자가 되게 돼 있어요. 각본이 배우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이죠. 소재가 진부하든 새롭든 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각본이 최고입니다."

한재덕 피디는 각본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했다. 여기에 하나 더, 피디로서의 역량도 분명 있을 법했다. 아무리 좋은 각본이라지만 그것을 만들어 낼 스태프의 면모도 충분히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피디의 기본은 예산과 스케줄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감독과 배우가 작업하기 최대한 편하게 해주는 역할도 있죠. 이 모든 걸 부드럽게 지키는 게 최고죠. 헌데 현장 여건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감독이 찍고 싶어 하는 것과 여건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기본적으로는 예산과 스케줄을 지키면서 사전 제작 단계 때 합의된 내용을 구현하게 해주는 게 피디 역할입니다. 또한 촬영하면서 감독에게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도 하고요. 대본에서보다 작품이 훌륭하게 나와야 하니까요."

 한재덕 피디

▲ 한재덕 피디 ⓒ 사나이 픽쳐스


비빌 언덕 없는 게 영화계..."모두가 외롭다"

그의 작품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 한재덕 피디는 류승완 감독관 각별한 인연이다. 그 스스로도 류승완 감독에 있어선 "최소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만나진 않는"사이라고 말했다.

"<주먹이 운다> 시작할 때 처음 알게 됐어요. 제가 또 솔직한 편이라 제작과정에서 부딪히면서 더 친해졌죠. 이후 감독님이 <다찌마와 리>도 찍었고 전 함께 일하면서 우정 출연을 하기도 했는데 영화가 빛을 못 봤어요. 이후 그에게 액션영화 투자가 안 이뤄졌죠. <부당거래>는 그래서 위기의식이 있었어요.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사이가 나빠지진 않았죠. (웃음)"

한재덕 피디는 이후 류승완 감독과 고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동체 의식이 없는 요즘 영화판 분위기에 다들 비빌 언덕이 없다"면서 영화인들의 외로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재덕 피디는 함께 하는 배우들에 대한 무한 신뢰도 드러냈다. 이걸 바꿔 말하면 배우가 한 피디에게 지닌 신뢰감일 수도 있었다.

"비 오던 날이었는데 밤 12시 반이었어요. 황정민씨가 대본을 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눈물이 핑 돌았어요. '드디어 최민식과 황정민을 한 앵글에 담게 됐다!' 고 소리쳤죠. 어떻게 이들을 가지고 돈을 생각하겠어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죠. 언제 다시 이 배우들이 또 한 영화에 뭉칠 수 있을까요? <베를린> <신세계> 이후 두 번 다시 모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허투루 할 수가 없죠."

함께 할 배우생각에 잠이 안 올 정도란다. 한국 영화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도 내놓던 그였다. 배우 최민식과는 벌써 네 번째 작업이란다. 이에 더해 진짜 사나이 같은 황정민과 괴물 하정우의 미덕을 언급하던 그에게서 배우와 피디 관계 이상의 유대감이 느껴졌다.

유대감이자 신뢰감이었다. 영화 관계자에겐 처음 주는 선물이라며 배우 류승범이 이탈리아에서 사 온 정장과 스웨터를 한 피디는 고이 간직하고 있다며 자랑 아닌 자랑도 했다. 선물이 아닌 신뢰를 받은 것 같아서였다고.  

한재덕 피디는 "영화 관계자들이 돈을 중심으로 기회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고민 한다"는 말을 인터뷰 말미에 언급했다. 스스로 주류가 아니라면서 돈이 아닌 작품, 그리고 신뢰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느리지만 그게 자신에겐 맞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뒤통수가 멋진 사람이랄까요. 할아버지가 돼서도 피디로 인정받는 사람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작 피디로 존경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작품으로 본이 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작품으로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죠. 영화를 하면서 스스로 쪽 팔리지 않는 미덕이 되는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름 하여 '사나이 픽쳐스'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 이름이다. 사나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대로 그렇게 곧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한재덕 피디를 기대해 보자.

한재덕 최민식 황정민 하정우 범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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