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1만득점 달성에 성공한 추승균

통산 1만득점 달성에 성공한 추승균 ⓒ KBL

2009년 5월 1일. 경기 버저가 울리고 축포가 체육관을 뒤덮자 그는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221cm의 거구가 천진난만하게 달려와 그를 힘껏 들어올렸고, 그는 오른손은 뱅뱅돌리며 포효했다.

네 번째 우승반지. 하지만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의 첫 번째 우승. 그의 포효에서 그동안 2인자였다는 설움아닌 설움과 첫 번째 주연으로써의 부담감을 떨쳐내는듯한 쾌감이 느껴졌다. 평소 좀처럼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그였기에 더욱 극적이었다. '소리 없이 강한 남자'가 아니었는가.

2년 뒤 또 한 번의 우승으로 다섯 손가락을 우승반지로 꽉 채운 유일한 남자 추승균. 그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소리 없이 강했고, 조용했지만 뜨거웠던 그의 농구인생이 만들어낸 스스로에게 보답한 선물이었다.

'소리 없이 강한남자' 전주 KCC의 추승균이 서장훈(LG)에 이어 KBL 통산 두 번째 '1만 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이날 경기 전까지 통산 9990점을 기록중이던 추승균은 26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의 경기에서 2쿼터 종료 2분여께 자신의 주특기인 미들라인 점프슛으로 이날 10점째이자 통산 1만득점을 만들어내며 대위업을 달성했다.

'이조추'의 마지막 남자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에 '허동택' 트리오가 있었다면, 프로농구 출범 이후 가장 강력했던 트리오는 대전 현대와 전주 KCC를 아우르던 '이조추' 트리오였다. 이조추의 마지막 남자였던 추승균은 항상 2인자 내지 3인자였다.

한양대를 졸업한 뒤 1997~1998시즌 대전 현대에 입단한 추승균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곱상한 외모 덕분에 '산소같은 남자'라는 별명으로 수많은 여성팬의 환호를 받은 이상민은 날카로운 패스능력으로 코트를 휘저었고, 캥거루 슈터 조성원은 4쿼터만 되면 화려한 3점슛을 꽂아넣으며 '클러치 슈터'라는 별칭을 얻으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반면 추승균은 묵묵히 시종일관 코트를 뛰어다닐 뿐이었다.

그에겐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세리머니도 없었고, 화려한 패스와 폭발적인 3점슛 능력도 없었다. 대신 정확한 미들라인 점프슛과 자유투, 견고한 수비로 자신의 가치를 갈고 닦았다. 

마지막 남은 '이조추'의 추승균

추승균의 가장 큰 강점은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소리 없이 강한남자'라는 그의 별명과 맥락을 갖이한다. 그는 데뷔 이후 지난 2008~2009시즌까지 12년 연속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했다. 그가 데뷔에서 은퇴를 앞둔 이 시점까지 15년동안 한 팀에서만 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이조추의 3인자였지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게 된 건 결국 추승균이었다. 조성원은 상대적으로 작은 신장에 수비가 약했다. 다시 KCC로 돌아와 은퇴하긴 했지만 2000년대 초반 LG와 SK를 거친 그였다. 또한 KCC의 영원한 포인트가드이자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것으로 보였던 이상민은 농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FA사건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던 팀의 최고 라이벌인 삼성으로 이적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본의 아니게 KBL 최고 스타인 이상민을 삼성으로 보낸 KCC는 팬들로부터 엄청난 후폭풍을 맞았다. KCC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으며, KCC의 상징인 이상민을 과연 삼성이 데려가겠냐는 안일한 생각과 당시 FA로 포인트가드 임재현을 데리고 온 것도 이상민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시킨 이유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추승균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상민과 추승균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던 KCC는 당시 부상이 잦았던 이상민에 비해 공수에서 꾸준했던 추승균이 팀에서 이탈했을 시 팀 전력의 누수가 심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결국 추승균의 꾸준함은 자신을 KCC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게 만들어준 가장 큰 자산이었다.

그리고 추승균은 이상민과 조성원이 떠난 뒤 자신이 직접 팀을 이끌며, 하승진·강병현 등 후배들을 이끌고 2008~2009시즌 자신이 직접 주연을 맡은 우승 드라마를 쓰는데 성공한다. 네 번째 우승 만에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MVP도 손에 거머 쥐게 된다.

유종의 미를 바라는 추승균

통산 10000득점과 다섯 개의 우승반지. 통산 플레이오프 출전 1위(106경기)와 챔피언 결정전 출전 1위(47경기). 개인적으로나 팀 적으로 역사상 추승균보다 나은 커리어를 가진 선수는 없다. 하지만 욕심많은 추승균은 이제 마지막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 시즌 후 FA가 되는 추승균의 향후 행보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올 시즌이 추승균에게 주어진 마지막 우승기회라는 점이다. 올 시즌 후 KCC는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 하승진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에 입대하며, 전태풍은 혼혈인 드래프트규정에 따라 팀을 떠나야만 한다. 올 시즌 쏠쏠한 활약을 했던 신인 정민수 역시 군에 입대할 예정이며, 상무에서 활약학 있는 강병현은 내년 시즌 막판에야 복귀가 가능하다.

따라서 KCC는 향후 2년간은 '영원한 우승후보'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팀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추승균이 은퇴쪽으로 마음을 굳힐 가능성이 큰 요인으로 조심스레 예측할 수 있다.

지난 시즌 다섯 번째 우승 당시 부상으로 챔피언결정전을 벤치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추승균. 다시 한 번 후배들을 이끌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이제 전설로 남게 된 추승균의 소리없이 강한 마지막 질주가 계속 되고 있다.

추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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